지난해 10월29일 시작된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는 온 겨울을 불살라 3월10일 마침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이끌어냈고 박근혜호는 침몰했다. 지난 21일 박근혜 씨는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이틀 뒤인 지난 23일, 침몰한지 1073일 만에 세월호가 맹골수도 위로 떠올랐다. 참사 현장에 떠오른 세월호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24일부터 2박3일 동안 사고해역이 보이는 동거차도와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
지난 24일, 다섯 시간을 내리 운전해 도착한 팽목항은 이미 어둠에 잠겨 있었다. 초입의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 옆 공터를 지날 때, 직감적으로 3년 전 임시 시신확인소가 설치됐던 곳임을 알았다. 온몸에서 돋아나는 소름이 거기라고 말해주었다. 까만 밤바다 저편에서 붉은 불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던 하얀 해경P정은 어김없이 몇 구의 시신을 실어 왔고, 부모들은 혹시 내 아이일까 확인하러 하얀 천막으로 줄지어 들어갔다. 그리고 곧 흘러나오던 신음과 오열... 그곳은 지옥이었다.
25일 아침, 일기예보 대로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진도 군청 인근 숙소를 출발해 팽목항으로 다시 가는 길에, 비옷을 입고 노란색 '잊지말자0416' 깃발을 들고 팽목항까지 행진하는 '광주시민상주모임' 행렬을 지나쳤다. 팽목항 여객선매표소에는 주말을 맞아 관매도 등으로 떠나는 단체 여행객들 수십여명과 동거차도로 들어가는 취재진 십여명이 있었다. 9시50분 팽목항을 출발해, 하조도-관사도-소마도-대마도-관매도를 거쳐 동거차도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 동안 2층 객실 TV에서는 위험상황시 대처요령에 대한 영상이 무한반복되고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난 3년 간, 침몰 현장이 보이는 동거차도 능선 위에 천막을 치고, 망원렌즈를 단 카메라로 하루 종일 인양 현장을 감시했다. 주요 방송사 카메라들이 함께 인양 작업을 현장중계 하고 있었다. 25일 반잠수정에 안착한 잭킹바지선은 왠일인지 꾸물거리다가 해 질 때가 돼서야 겨우 분리됐고 세월호를 완전히 부양시키는 작업은 밤새 진행됐다.
그날 밤 세월호에서 쏟아져 나온 기름은 동거차도의 미역양식장을 뒤덮었고 인근 대마도까지 기름띠가 퍼졌다. 26일 오전 미역작업선을 타고 세월호에 근접해 한 바퀴를 돌며 확인한 세월호의 선체는 뻘이 많이 묻은 채 튀어나온 구조물은 대부분 잘려있었고, 세월호 선저는 충돌설의 근거가 될만큼 크게 움푹 파인 곳은 없어보였지만 검은색 긴 자국이 선명했다. 배수를 위해 수많은 구멍이 뚫려있었고, 선미 왼쪽 램프는 절단됐으며, 선수 쪽은 와이어로 인양을 시도했을 때 길게 찢긴 자국이 있었다. 방향타는 오른쪽으로 꺾여 있었다.
진도를 떠나기 전 저녁식사를 먹으러 들른 한 식당 큰 방에서는 한 방송사의 현장중계 취재팀이 회식을 하고 있었다. 반주를 곁들이며 그들은 "박근혜는 지고! 세월호는 뜨고!"라고 외쳤다.
배수와 방제작업이 끝나면 세월호는 30일께 반잠수선에 실려 목포신항으로 이동, 거치되고 미수습자 9명에 대한 수색작업과 침몰 원인 규명 작업이 시작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