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이 탈락점수를 받고도 생명연장이 되면서 방송통신위원회가 ‘봐주기’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재승인 조건이 까다로워졌다곤 하지만 빈틈이 많아 지키지 않아도 재승인 취소가 될 가능성이 낮다. 되풀이되는 ‘깜깜이’ 심사도 문제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24일 전체회의를 마친 후 브리핑에서 ‘봐주기’라는 지적에 관해 “OBS도 1년 재허가가 아니라 3년 재허가를 받았고, 1년 이후 실적을 점검해 위반되면 박탈하는 절차를 거치게 했다”고 말했다. 지상파는 재허가, 종편은 재승인을 받게 되는데 개념은 같다.

앞서 지난해 경인지역 지상파 방송 OBS가 650점 미만의 점수를 받은 후 조건부 재허가를 받은 적 있다. 결과적으로 조건은 비슷하지만 두 방송사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는 지난 24일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TV조선 조건부 재승인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 제공.
▲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는 지난 24일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TV조선 조건부 재승인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 제공.

OBS가 조건부 재허가를 받은 이유는 ‘자본잠식’에 처했기 때문으로 방송의 본질적 측면과는 무관한 사안이다. 재승인 조건도 1년 동안 자본금 30억 원을 증자하는 것이었다. 재허가 심사 당시 직원들이 위기극복을 위해 임금을 반납하고 지역사회에서 OBS 재승인을 요구해온 점도 영향을 미쳤다.

반면 TV조선은 ‘종합편성채널’의 근본적인 정체성인 보도 공정성, 종합적인 편성여부 및 콘텐츠 투자가 문제가 됐다. 시민사회나 여론이 TV조선 재승인 통과를 촉구하는 움직임도 없어 재승인의 당위성이 낮다.

방통위의 조건부 재승인 결정은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무력화한다. 종편 재승인은 지난달 각계각층으로 구성된 외부 심사위원단의 4박5일 합숙심사를 거친 후 방통위가 재승인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구조다. 심사위원회는 650점을 넘겨야 하는 재승인 심사에서 TV조선에 625점이라는 점수를 부여했다.

심사위원회는 총평으로 “TV조선은 오보·막말·편파 방송으로 인한 심의제재 건수가 월등히 많음에도 원인을 찾고 개선방안을 마련하려는 의지 부족하다”면서 “보도 편중이 심해 프로그램 다양성이 보장되지 못한다. 2015년 이후 흑자로 전환됐으나 콘텐츠 투자 실적이 타사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며 향후 5년간 계획도 매우 소극적으로 제시됐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방통위는 청문회 절차를 거치면서 돌연 “TV조선이 청문회 때 추가개선계획을 제출하고 이행의지를 보인 점”을 들어 조건부 재승인을 하겠다고 밝혔다. 심사위원회가 어떤 평가를 내든 ‘의지’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또, 방통위는 “시청권 보호 측면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특정 방송이 사라지면 시청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TV조선의 경우 심사위원회의 평가대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한 점을 고려하면 피해가 크다고 볼 수 없다. ‘시청권 보호’를 고려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재승인 거부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심사기준도 문제다. TV조선이 625점을 받고, 채널A가 턱걸이 합격한 데는 ‘방송평가’라는 형식적인 절차가 한 몫했다. 종편 재승인 평가는 1000점 중 가장 비율이 높은 400점이 매년 실시되는 방송평가의 평균점수다. 방송평가는 방송사의 기본적인 사항만 점검하고 기본배점이 매우 높아 무용론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 재승인 심사 때 반영된 지난 3년간의 방송평가 결과 TV조선은 3사 중 2위였으며 625점 중 무려 328점을 받았다.

방송평가를 걷어내면 심사위원회가 직접 심사한 4개 항목에서 TV조선은 모두 꼴등을 차지했다. 특히 TV조선은 ‘방송의 공적책임과 공정성’ 부문에는 210점 만점에 108점을 받았다. 이 부문에서 JTBC가 148점을 받은 것과 대조적이다. ‘방송프로그램의 기획편성 제작 및 공익성 확보계획의 적절성’ 부문에서도 TV조선은 190점 만점 중 95점을 받아 반타작하는 데 그쳤다. JTBC는 140점을 받았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디자인=이우림 기자.

재승인 조건이 까다롭게 부과된 건 사실이지만 ‘빈틈’이 많다. 방통위는 오보·막말·편파방송과 관련한 법정제재를 4건 이상 받거나 시사보도 관련 프로그램 편성이 32.6%를 넘지 않을 것 등을 재승인 조건으로 부과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1년 단위로 평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해당 항목을 또 다시 어길 경우 6개월 단위로 평가해 ‘영업정지’를 내린다. 이후 또 반복되면 ‘청문 거쳐 재승인 취소’를 하게 된다.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이전에는 없던 재승인 조건을 최초로 부과했다. 이행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이뤄질 것”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TV조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시간을 끌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보막말편파방송이 지속돼 ‘시정명령’을 받게 되면 TV조선은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실제 종편은 지난 재승인 심사 이후 재승인 조건을 지키지 않아 시정명령을 받자 ‘행정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소송을 걸면 판결이 나올 때까지 제재는 연기된다.

재승인 조건 위반행위가 지속되면 방통위가 ‘영업정지’를 하겠다는 약속도 공수표가 될 우려가 있다. 지난 재승인 이후 종편이 콘텐츠 투자를 지키지 않아 시정명령이 확정된 후에도 이행하지 않자 방통위는 ‘영업정지’ 제재를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방통위는 지난해 8월 “시청자 피해가 우려된다”면서 ’방송정지(업무정지) 3개월‘ 대신 ’과징금 4500만 원‘을 부과하는 데 그쳤다. 마찬가지로 ‘청문 거쳐 재승인 취소’ 논의 단계 때 방통위가 청문회에서 “TV조선의 개선 의지”가 보인다는 이유로 다시 생명연장을 허용할 수도 있다.

조건부라고 하더라도 1~2년이 아닌 3년 재승인을 내준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부정 재승인”이라고 평가하며 “이전에 비해 조건이 까다로워졌고, 야당 위원이 퇴장해도 여당 단독으로 의결할 수 있다 보니 합의를 한 건 알겠지만 결과가 최선인지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1년 후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그 다음 6개월 후에 영업정지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되면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1년 반 이상 버틸 수 있어 실효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면서 “앞으로 잘하라는 건 지금까지의 문제들을 눈 감아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복되는 ‘깜깜이 심사’도 문제다. 종편 재승인 심사위원단은 지난달 심사를 마쳤지만 1달 동안 방통위는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이 “TV조선이 합격점수를 받지 못했다”고 보도했음에도 방통위는 뉴스1 등의 언론을 통해 “사실과 다른 추정 보도”라며 사실을 숨겼다. 방통위가 TV조선을 대상으로 재승인 탈락 점수를 받은 경우에만 개최하는 청문회를 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방통위는 전체회의 의결 때까지 점수를 밝히지 않았다.

방통위의 역할은 직접 심사를 하는 게 아니라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 심사 결과를 토대로 재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미 심사가 끝난 상황에서 결과를 숨길 이유가 없다. 점수가 나오면 공개한 이후 재승인 조건을 논의하는 게 적절하다. 점수를 숨긴 상태에서 여야 위원들의 비공식 논의 자리에서 재승인 여부가 결정되는 일이 반복되니 ‘밀실 심사’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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