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가 증가하고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먹는 술)이 트랜드가 된 시대. 끊임없는 타인과의 부딪힘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혼밥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그 시간이 다른 사람의 삶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고 따듯한 느낌이어서 좋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 혼용무도(昏庸無道)한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새해를 맞아 나는 인권활동가들의 건투를 빌며 그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

‘NO’를 외치는 사람들

2000년대 초반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카피를 내세운 한 증권사의 CF 광고가 있었다. 아직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탄생하지 않고 '웰빙'이 유행했던 시대일지라도 한 개인이 다수자에 맞서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일명 ‘노맨’이 되라는 그 광고가 불편했다. 현재 미국, 캐나다, 스웨덴 등 서구권을 중심으로 평등을 위해 she/he 대신 성중립대명사 Ze/Xe를 사용하자는 '성중립 언어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그녀뿐만 아니라 OO맨, XX녀등 특정한 성을 지칭하는 단어에 내제된 성차별적 요소는 많은 이들이 인권 침해로 생각하고 있는 문제다. 하지만 사회 관념이나 의식의 변화는 법, 제도화 이후의 일이므로 여전히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향한 직간접적인 차별과 혐오는 공기처럼 늘 우리 곁에 있다. 내가 만난 인권활동가들은 공기와 같아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인권 침해 요소에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하는 감각과 상상력을 가지고 다수를 향해, 권력과 자본을 향해 ‘NO’를 외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자 ‘YES'를 외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연대하는 따듯한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밤 10시 드라마를 기다리는 평범한 사람이기도 하다.

저소득 소비자의 삶, 고강도 노동자의 삶

타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인권침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인권활동가들의 인권은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인권재단 사람의 <인권활동가 활동비 처우 및 생활실태, 2015> 연구조사는 약 8년 정도의 시간을 인권활동가로 지내온 30대 중반의 활동가들이 그해 최저임금 월 환산액에 못 미치는 107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바야흐로 캄캄한 밤 풍경 속 불빛만큼 빚이 있는 시대. 숨만 쉬어도 비용이 지출된다. 모든 것이 자본화되어 있는 사회에선 영리가 아닌 비영리를 추구하는 NGO라도 풀뿌리 후원금은 단체운영에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를 기조로 시대적 배경에 따른 인권의제를 말하는 인권단체 대부분은 1~2명의 상임활동가 또는 비상임 활동가들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마케팅 영역에서 꾸준한 수요가 있는 성적으로 소비되는 ‘여성'이나 귀엽거나 불쌍한 '아이' 또는 '동물'을 콘텐츠로 다루지 않아 비교적 사람들의 관심 영역에서 빗겨나 있고 이는 곧 자원의 부족함으로 양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로 끝없는 순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또래만큼의 지출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벼룩시장 할인 또는 소비 없는 삶 등으로 지출을 피하죠.”

척박한 환경에서 인권 활동을 전업으로 하는 이들은 경제적 급부를 기대하기보단 경제적인 많은 부분의 포기를 각오해야 한다. 안정적 수입은 <인권활동가 실태조사> 설문 응답자의 73% 이상이 중요성을 인정했듯 활동에 전념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최저임금 수준도 못 미치는 활동비는 동수저쯤 돼야 경제적 난관에 부딪혀도 활동을 포기하는 일 없이 지속할 가능성을 높인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에너지가 소진되어 떠나가는 이들의 난관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것은 한 사람의 어깨에 너무 큰 짐을 얹는 일 아닐까? 공익활동을 하는 이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인권

“한국은 경제로는 ‘수’를 받으면서도 삶의 질이나 인권 현실은 우·미·양 사이를 헤매고 있는 극히 모순적인 사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경제 논리가 더욱 공격적이고 폭력적으로 인권 논리를 억압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효제 교수의 인권오디세이’(교양인) 중 ‘대한민국 인권 지수’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수많은 이들의 투쟁은 우리 삶이 인권에 의해 보호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인권의 제도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내가 다른 이에게 오늘 하루 존중받으며 보냈는가 물어본다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기 힘든 것이 한국 인권의 현주소다. 보릿고개를 넘기신 나의 부모님세대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지상과제였다면 비교적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린 청년세대인 나는 스스로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인권공화국을 꿈꾼다. 이 인권공화국으로 가는 길엔 우리 모두가 살아 있는 인권임을 잊지 않고 일상 속에서 자신이 믿는 인권의 가치를 실천해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하다. 한 인권활동가는 토론회 자리에서 청중을 향해 인권운동은 심장을 뛰게 하는 운동이 아니냐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그이의 말처럼, 나는 신체의 장기 중 유일하게 ‘마음이 담겨있는 내장’인 이 심장(心腸)에 인권의 첫 걸음인 인권감수성이 있다 믿는다. 인권이 마음과 마음을 잇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연결고리가 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연결고리가 지금보다 더 넓고 단단해질 때 우리는 더 나은 사회에서 살아가리라 생각한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http://change2020.org/) 에서 이와 관련한 카드뉴스를 미디어오늘에 보내왔습니다. 바꿈은 사회진보의제들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고 시민단체들 사이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2015년 7월에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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