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맞아 공통적으로 꺼내는 공약이 ‘노동시간 단축’이다. 지난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데 잠정합의했다. 하지만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부담이다”, “중소기업의 인력난과 부담이 심해진다”는 기업 측 논리로 최종합의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보수매체와 경제 매체는 20일 이후 ‘노동시간 단축’이 포퓰리즘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근로시간 68시간→52시간 고용시장 쇼크’(매일경제 21일 1면), ‘근로시간 단축, 국회의 무지, 중소기업 비명’(매일경제 22일 1면), ‘고삐 풀린 포퓰리즘’(한국경제 27일 칼럼), ‘근로시간 단축, 기업부담 늘어 고용줄 것’(문화일보 27일 8면), ‘중소기업 일방적 희생 강요 근로시간 단축 즉각 중단하라’(문화일보 27일 18면) 등이 대표적이다.

▲ 매일경제 22일 1면.
▲ 매일경제 22일 1면.
이들의 주된 주장을 요약해보면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일 시 △산업계 12조 3천억 손해 (인건비 부담) △노동자 역시 월급 손해 △중소기업의 경영 여건 악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의에서 빠진 것이 있다. 법정 노동시간이 68시간인지, 52시간인지에 대한 공방이다. 근로기준법 상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52시간이다. 법정 40시간(하루 8시간, 5일)과 연장 12시간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2004년 법정노동 시간 40시간과 연장근로 12시간, 토,일 휴일근로 16시간(하루 8시간, 이틀)을 합쳐 주당 노동시간이 68시간이라고 해석한 이후 주당 노동시간이 68시간인지, 52시간인지 공방이 분분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의 김민아 노무사는 “주당 노동시간을 68시간으로 볼 것인지 52시간으로 볼 것인지는 기업 측, 노동자 측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휴일을 노동시간으로 볼 경우, 휴일근무 수당에 연장근무 수당을 뺄 수 있기 때문에 휴일 노동시간을 포함한 68시간으로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휴일을 노동시간으로 보지 않는 경우 휴일근무 수당과 함께 연장 근무 수당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 측 논리로 해석하는 경우에는 휴일 근무 수당만 줘도 되는 셈이다.

그렇기에 ‘노동시간 68시간→52시간 단축’하자는 논의는 이미 기업 측의 입장에서 전제를 두고 시작한 논의가 된다. 이와 관련해 22일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복지노동공공성 강화를 위한 대선후보 초청토론회 기조발언'에서 “노동 시간 단축한다고 해서 법정노동시간 40시간을 35시간으로 줄이는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그동안 사실상의 법정노동시간으로, 허용되고 암묵적으로 보장된 68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겠다는 황당한 논의”라고 지적했다. 정의당은 “여야 할 것 없이 주 40시간 노동이라는 법을 불법적으로 해석해서 운영해온 것이고,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주 35시간 노동에 관한 공약을 내놓을 예정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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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논의에 대한 전제부터 잘못됐지만, 이 잘못된 전제 위에서 경제매체들이 주장하는 것 역시 잘못됐다. 이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기업이 12조를 손해 본다?

노동시간 단축을 반대하는 언론은 한국경제연구원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시행될 경우 임금상승분 약 1754억 원과 인력 보충에 따른 직접노동비용 약 9조4000억 원, 법정·법정 외 복리비 등 간접노동비용 약 2조7000억 원 등 총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추가 비용이 12조 3000억 원이라고에 이른다는 연구를 인용해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기업이 12조 손해를 보고, 중소기업의 고충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현재 기업 측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현재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잘못된 전제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하는 정의당 측은 “현재 한국은 행정지침으로 68시간을 허용하고 있는데, 현행법상 과로사 기준 60기준으로 나올 정도로 과도한 노동”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에서 초과노동을 당연한 듯이 이야기하며 경제적 부담을 이야기하는 것은 손해를 과도하게 부풀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의당 측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전제가 재계의 입장을 따르는, 지나치게 완화된 기준”이라며 “재계가 비용만 이야기하면서 경제적 논리를 들이대기 전에 초과 노동이 필요하다면 일자리를 만들어서 실질적으로 고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2.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노동자 역시 임금이 깎이기 때문에 양측에 부담이다?

한국경제 ‘근로시간 줄면 월급 39만원 깎여…노사 합의해도 초과근로 안돼’ 기사는 “국내에서 1주일에 52시간보다 더 많이 일하는 이들은 1주일에 평균 21.4시간 야근과 특근을 하며 수당으로 88만원을 받고 있다”며 “연장근로가 12시간으로 제한되면 수당 감소는 38만8000원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 한국경제 22일 5면.
▲ 한국경제 22일 5면.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기사 자체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기형적 임금 체계’ 때문이다. 이 기사 역시 “수십년간 기업이 정부의 물가상승 억제 정책에 따라 기본급 인상을 자제하면서도 근로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실질 임금을 줘야했다”고 기형적 임금체계를 설명했다. 

이러한 분석은 문제의 본질인 ‘기형적 임금체계’를 고치자는 주장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노동시간 단축’을 반대하는 논리로 쓰이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의 김민아 노무사는 “우리나라는 기본급이 낮고, 시간외 근무 시간이 임금에서 많은 부분 차지하는 것이 문제”라며 “8시간만 일해서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본급만 받아도 살 수 있는 구조로 변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3. 노동시간 단축하면 중소기업이 더 힘들다?

매일경제는 22일 1면 ‘근로시간 단축, 국회의 무지…중소기업 비명’이라는 기사에서 “기업입장에서는 종전처럼 인건비는 그대로 지급하면서 추가로 부족한 인력을 고용해 인건비 부담만 늘어난다”라며 “특히 중소기업들이 반발하는 이유”라고 썼다. 매일경제는 “인건비 부담만 늘어날 경우 중소기업의 경영 여건은 악화될 것이 뻔하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도 27일 기사 ‘중소기업은 왜 근로시간 단축에 반발하나’에서 중소기업단체협의회의 “300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사업장의 99%가 넘고 근로시간이 급격히 줄어들면 인력 부족으로 영세 사업장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을 전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인력난이나 손해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을 거부하는 것은 접근방법이 틀렸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27일 SBS CNBC에 출연한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는 “중소 사업장에서는 임금이 낮고, 대기업 공공기관에 비해 고용도 불안하다”라며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하기 때문에 일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김기덕 대표는 “근로조건을 좋게 하고 임금수준도 향상을 시켜서 고용의 질을 높여야 중소기업장에서 일할 사람이 있다”라며 “접근방법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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