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법과 상식에 어긋나는 ‘대형 사건’을 일으켰다. 종합편성채널(종편) TV조선을 가차없이 방송 현업에서 추방해야 마땅한데도 ‘재승인 허가’를 내준 일이 바로 그것이다. 2011년 3월 31일 정부로부터 종편 사업자 승인을 받은 TV조선(당시 CSTV)은 3년 뒤인 2014년 방통위의 재승인 심사에서 “공적 책임과 공익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이유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가 ‘공적 책임과 공정성 확보 방안 마련’ ‘콘텐츠 투자 계획 제출과 이행’ ‘보도 편성 비율 축소’를 조건으로 재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7년에 TV조선은 그때보다 훨씬 더 ‘불량’해진 매체로 드러났는데도 다시 재승인을 받았다.

올해 재승인 심사 대상이 된 종편은 JTBC, 채널A와 TV조선이었다. 지난해 8월 11일에 심사를 시작한 방통위는 작업을 마치고 나서도 한참이나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자 언론계와 정치권에는 TV조선이 합격선인 650점에 못 미쳤기 때문에 방통위가 심사 결과를 공표하지 않고 머뭇거린다는 정보가 나돌기 시작했다. 그런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지난 8일 <미디어오늘>이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 결과 합격선인 650점을 넘기지 못한 종편은 TV조선”이라고 못 박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데도 방통위는 계속 미적거리다가 지난 22일 TV조선에 대한 ‘청문회’를 연 뒤 24일 종편 3사에 대한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JTBC는 1000점 만점에 731.39점, 채널A는 661.91점을 받아 ‘합격’했고, TV조선은 625.13점으로 ‘불합격’ 처분을 내려야 마땅하지만 ‘3년 조건부 재승인’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대학입시에 비유하면 불합격이 명백한 사람에게 ‘조건부 입학’을 허락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TV조선에 대한 방통위의 ‘재승인’ 결정은 법과 상식을 완전히 벗어나는 ‘폭거’나 다름없다. TV조선은 3년 전에 재승인을 받던 때 ‘내부 사전·사후 심의 및 공정 책임, 공정성 확보 방안 마련’ ‘콘텐츠 투자 계획 제출 및 이행’ ‘보도 편성 비율 축소’ 등을 약속했는데, 지난 3년 동안 오보, 막말, 편파보도로 방통위의 징계를 받은 건수가 2014년 95건에서 2016년에는 161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반성’이나 ‘개과천선’을 전혀 하지 않은 TV조선에 대해 구명(求命)의 길을 터주었던 방통위가 이번에 다시 그 매체에 대한 재승인을 강행한 것은 전파 소비자인 국민들을 철저히 외면한 처사였다.

▲ 사진=이치열 기자
▲ 사진=이치열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에는 “이 법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높이고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방통위가 TV조선에 백기를 들고 투항한 이면에는 그 매체의 대주주인 조선일보사의 ‘전방위 로비’가 있다는 설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방통위가 왜 스스로 ‘독립성’을 포기했는지는 앞으로 국회가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엄정하게 밝혀내야 할 일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혁명적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대통령 박근혜 파면을 이끌어낸 ‘촛불 민심’이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 원동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 이래 대다수 주권자들은 박근혜·최순실 일파의 상습적 위법행위와 반칙에 격분하면서 정의와 평화가 지배하는 세상이 오기를 염원했다. 특히 젊은 세대와 학부모들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부정입학 한 뒤 수업에 거의 출석하지 않고도 버젓이 학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런 특혜의 배후에는 총장을 포함한 교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심지어 정유라가 시험을 치르지 않았는데도 조교를 시켜 가짜 답안지를 작성하게 했다가 감옥에 간 교수도 있다. 정유라는 청담고 재학 시절 수업과 시험에 불참해도 ‘만점’을 받은 적이 있었고, 3년 동안 출석일수가 17일에 불과해 결국 서울시교육청의 감사 결과에 따라 퇴학 처분을 받음으로써 최종 학력이 ‘중졸’이 되어버렸다.

방통위가 TV조선에 대해 두 번째로 재승인 결정을 내릴 기미를 보이던 지난 14일,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을 포함한 10여개 조직으로 구성된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는 이렇게 경고했다.

“불합격점을 받은 방송사는 점수대로 퇴출시키는 것이 순리이다. 방통위는 국민들이 지난 3월 10일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은 대통령을 파면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국민의 분노를 일으킨 것이 무엇인가? 바로 청와대 비선실세의 딸 정유라가 자기 실력이 아닌, 온갖 편법과 뒤 봐주기 부정입시로 대학에 들어갔고, 이후에도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도 않으면서 학점을 버젓이 땄던 것이다. 만약 이번에 방통위가 TV조선을 순순히 재승인 해준다면, 정유라 사건의 부정입학, 부정학점 사건과 무엇이 다른가?”

TV조선 재승인을 둘러싼 방통위의 기회주의적 행태에 관해 이번에 거의 모든 언론이 ‘침묵의 카르텔’로 일관하거나 지나친 ‘동업자 의식’을 드러낸 것 역시 심각한 문제였다.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가 ‘TV조선 조건부 재승인’ 이전부터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부당성을 지적했는데도 한두 매체를 제외하고는 그 내용을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재승인’ 발표가 난 뒤에 야 일부 신문과 인터넷매체가 그 뉴스를 상세하게 보도하고 논평한 것을 빼면 대다수 언론은 그 사실 자체를 아예 묵살해버렸다. 지금 주권자들은 ‘평화적 정권교체와 적폐 청산’을 우렁차게 요구하고 있는데 언론계에서는 자성의 소리가 들리기는커녕 ‘동업자’의 탈선과 비리에 눈을 감는 행태가 사라지지 않으니 ‘촛불혁명’의 주역들이 곧 ‘언론개혁’을 강하게 외칠 것이 분명해 보인다.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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