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꽃은 선거가 아니라 집회와 시위다. 촛불집회는 선거로 선출하지 않은 헌법재판관도 압박할 수 있다. 선거로 뽑은 대표를 집회로 끌어내렸다. 선거는 수렴하지만 집회는 발산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집회·시위의 정신을 계승한다.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4·19의 이념을 기억한다. 몇 달만 눈치 보면 되는 선거는 권력자에게 유리한 방식이고, 집회와 시위는 언제든 민의를 내뿜을 수 있는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촛불의 승리와 선거의 한계

광장에서 헌법 1조2항이 자주 소환됐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언제? 선거하는 순간에만, 아주 협소한 선택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국민들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선거하는 순간뿐이다. ‘대의제는 짧은 순간 자유를 누리는 노예제’라는 표현도 있다.

하지만 대선국면으로 넘어오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해 주권을 행사한다.” 유신헌법 1조2항이지만 사실 이게 평소의 모습이다.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당 간 이합집산, 선거의 절차와 방식, 대통령의 임기나 권력구조 문제는 모두 권력의 필요다.

대표자를 통해야만 권리를 행사하는 제도는 민주주의 이념에 썩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의 정치학자 버나드 마넹은 저서 ‘선거는 민주적인가’에서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 국민이 임의로 대표자를 해임할 수 없다. 둘째, 선출된 대표는 유권자에게 한 약속에 구속받지 않는다. 선거는 정기적이지만 탄핵은 예외적이다.

▲ 박근혜 탄핵 결정 다음 날인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제20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박근혜 탄핵 결정 다음 날인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제20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민심은 집회에 있다. 유력 대선주자들이 모두 ‘촛불 민심과 함께했다’고 자부한다. 촛불집회는 사실상 허가제였던 집회의 한계를 확장한 사건이다. 원래 촛불은 광화문을 지나 청와대를 향하기 전에 차벽에 막혔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21조는 하위법인 집시법의 쿠데타에 억눌려왔다. 집시법을 만든 이들이 바로 국민의 대표다.

그들이 촛불민심과 함께했다면 현행 집시법의 문제와 자신이 집권했을 때 발생할 집회에 대한 태도를 언급해야 한다. 그동안 왜 폭력진압이 벌어졌는지, 재발방지 대책은 없는지. 언제나 정부는 민심을 다 들어낼 수 없다. 그 한계를 보충하는 집회에 대한 태도가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보여준다. 이번 대선국면에서 논의돼야 할 문제다.

대선주자들의 집회와 시위에 대한 태도를 다뤄야 하는 이유는 더 있다. 노무현을 자처하는 주자들이 높은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 2006년 5월4일 노무현 정권은 군을 동원해 평택 미군기지를 반대하는 대추리 주민들을 진압했다. 사진=민중의소리
▲ 2006년 5월4일 노무현 정권은 군을 동원해 평택 미군기지를 반대하는 대추리 주민들을 진압했다. 사진=민중의소리

작전명 ‘여명의 황새울’. 2006년 5월4일 노무현 정권은 군을 동원해 평택 대추리 주민들의 시위를 제압했다. 1000여명의 시민을 제압하기 위해 열배가 넘는 1만4000여명의 공권력이 투입됐고 624명이 연행됐다는 사실도 충격이지만 영토 밖을 향해야 하는 폭력이 가장 힘없고 약한 자국민을 향했다는데 있다.

경찰은 내부치안, 군대는 국방이라는 기본마저 무너졌다는 점에서 80년 5월의 작전명 ‘화려한 외출’과 다르지 않다. 전남도청에서 끝까지 저항했던 시민들처럼 학생·노동자·평화활동가 600여명이 저항했던 대추초등학교는 피로 물들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2006년 5월을 가리켜 “‘5월 광주’를 방불케 할 정도로 폭력적”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정부는 일방적으로 평택 대추리에 미군기지를 이전해야겠다며 토지수용에 나섰고,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아온 주민들은 동의할 수 없었다. 미국을 위해 자국민에게 군을 동원할 수 있는 정부의 2인자. 유력 대선주자의 사드배치 관련 모호한 입장은 전략적 혹은 정략적 발언이라기 보단 2006년 5월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다.

▲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만행으로 기억하는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도 참여정부였다. 강정에서 경찰에 끌려갔던 문규현 신부는 이미 평택 대추리에서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사진=포커스뉴스
▲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만행으로 기억하는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도 참여정부였다. 강정에서 경찰에 끌려갔던 문규현 신부는 이미 평택 대추리에서 군인들에게 끌려갔다. 사진=민중의소리

당시 사정기관을 담당하는 민정수석 문재인은 2006년 5월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전혀 다른 이유에서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시장에 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책임을 묻지 않은 잘못은 반복된다. 국방부는 당시 주민들과 대화에서 ‘미군기지 이전사업은 국회 비준 동의를 받은 합법’이라고 주장했다. 폭력이 합법의 이름으로 계속 진행된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대선은 대한민국 주요 현안을 모두 다루는 공론의 장이라는 점에서 후보들에겐 불편하지만 시민들에겐 필요한 집시법 개정이 필요하다. 촛불행진에 대해 금지통고를 했던 집시법 12조의 ‘교통 소통을 위한 제한’ 규정이 권력이 집회를 허가하는 핵심 근거다. 최근 5년간 집회 금지 통고 1059건 중 교통소통을 이유로 한 것에 총 447건이다. 사람보다 차가 중요한걸까?

집시법 11조도 집회를 허가제로 만드는 조항이다. 청와대, 국무총리 공관, 국회, 각급 법원 등 주요시설의 100m 이내의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하는 규정이다. 박주민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개정안에는 30m로 축소돼있지만 여전히 권력기관은 민심과 완충지대를 두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했던 대선주자들은 이런 실질적인 문제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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