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의 박근혜 전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수사 요구가 집요하다못해 애처롭다. 헌법재판소에서 3월10일 파면 결정을 내린 후 약 열흘사이 세 차례에 걸쳐, 사설과 기명칼럼으로 ‘불구속 수사’를 주장하고 있다. 동아는 왜 이런 주장을 고집하며, 그 논리는 과연 얼마나 타당한가.

동아는 박 전대통령에 대한 파면이 이뤄진 그 다음날, 검찰 수사도 받기전에 벌써 ‘불구속’ 수사를 요구했다. “박 前대통령 진상규명 적극 협조하고 檢 불구속수사를”(3월11일자) 제목의 사설은 다소 성급하다싶을 정도였다.

“얼마 전까지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구속돼 수의를 입은 모습을 본다는 것은 국민으로서도 수치스럽고 가슴 아픈 일이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은 또 무엇이 되겠는가. 본래 수사는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다.”

국민이 수치스럽고 한국의 자존심때문이라는 이유와 수사는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이 논리는 계속 해서 반복된다. 동아는 다시 3월 20일자 사설 “8년 만의 전직 대통령 검찰 출두… 國格을 생각한다”라는 제목에서 불구속 수사를 외쳤다.

“또 한 명의 대통령이 8년 만에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는 모습은 당사자도 불행한 일이지만 국가로서도 수치다. 얼마 전까지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구속돼 수사를 받기 위해 구치소와 검찰청을 오가는 모습은 국격(國格)을 생각해서라도 바람직하지 않다.”

▲ 박근혜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마친 뒤 3월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을 들어서고 있다. 윤상현(오른쪽) 자유한국당 의원이 마중나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통해 뇌물수수·직권남용·강요·공무상 비밀누설 등 13개 혐의의 공범으로 적시된 상태다. 사진=포커스뉴스
▲ 박근혜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마친 뒤 3월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을 들어서고 있다. 윤상현(오른쪽) 자유한국당 의원이 마중나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통해 뇌물수수·직권남용·강요·공무상 비밀누설 등 13개 혐의의 공범으로 적시된 상태다. 사진=포커스뉴스
검찰총장이 “법과 원칙에 따라 구속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말이 나오자 동아는 불과 사흘만인 3월23일자면에 다시 “불구속”이라는 똑같은 주장을 내세웠다. 이번에는 사설이 아닌 논설실장 ‘박제균의 휴먼정치’라는 기명칼럼에서 “포승줄 묶인 박근혜를 보고 싶은가”라며 국민을 향해 일갈했다.

이 칼럼은 어디선가 전해들은 말을 사실처럼 눈물을 내세워 동정심을 자극했다. 그리고는 또 다시 국격을 내세워 불구속 수사로 귀결됐다.

“박 전 대통령이 12일 청와대를 떠나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관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비서관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눈이 부은 상태로 말을 잇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이제 박 전 대통령까지 그런 모습을 봐야 하나. 물론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그러나 대통령을 파면한 우리 헌법은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66조 1항)고 규정한다. 얼마 전까지 ‘국가를 대표하는 원수’를 지낸 사람의 처절한 몰락을 보는 건 국격(國格) 훼손 여부를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 자존심부터 상처 받을 것이다.“(3월23일자 박제균의 휴먼정치칼럼)

동아의 사설과 칼럼은 형식은 달랐지만 마치 한사람이 반복해서 ‘불구속’ 주장을 하는 것처럼 논리도 단순하고 표현기법도 비슷했다. 사설과 논설주간의 주장은 동아의 얼굴이고 그 회사의 주장을 대표하는 셈이다. 동아가 국격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이해가 간다. 또한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지도 알만하다. 그러나 5 가지 이유를 내세워 이런 주장이 타당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는 주장을 한다.

▲ 박근혜씨가 3월2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박근혜씨가 3월2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첫째, 언론이 늘 주장하는 ‘법의 형평성, 법앞에 평등’과는 거리가 먼 주장으로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구속, 불구속 여부는 검찰총장이 밝힌 ‘법과 원칙’에 따르는 것이 법치주의를 세우는 길임을 언론은 틈만 나면 주장해왔다. 국격이라는 모호한 논리로 불구속을 반복하는 것은 자기부정의 논리에 빠지게 된다.

둘째, ‘불구속은 국격, 구속은 국격을 해치는 일’이라는 단순논리는 성립되지않기 때문이다. 홍준표 대선후보는 “허접한 여자와 놀아났다는 자체가 탄핵감”이라는 주장을 했다. 민주주의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촛불집회를 통해 헌재의 결정으로 결국 파면이라는 헌정사 최초의 역사를 만들어낸 일은 불행한 사태를 통해 민주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측면도 있었다. 헌정질서 문란의 중심에 선 대통령이 국격을 훼손할 때는 과장, 홍보뉴스를 앞세웠던 언론이 이제와서 ‘국격’운운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우리는 이미 전직대통령이 수의를 입었던 모습,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사면받고난 뒤 골프장을 유람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그런 전례가 있으니 너무 국격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셋째,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아는 검찰에서 구속, 불구속을 두고 고민하는 중요한 현시점에 반복하여 ‘불구속’을 주장하는 것은 검찰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 읽힌다.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해야 할 사안에 대해 언론이 집요하게 불구속‘을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개입으로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검찰이 ’법과 원칙‘을 내세우는데 동아같은 큰언론사 주필이 이름을 걸고 ’불구속 하라‘고 눈을 부라리면 부담스럽지않을까. 이미 주장할만큼 한 것 아닌가. 동아일보 기자들도 반복해서 이런 주장을 보는데 동의하고 있는가.

넷째, 여론에 역행하는 소수의 주장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 22일 전국 성인남녀 513명을 대상으로 박 전 대통령 구속수사에 대한 의견을 조사해 이날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72.3%가 박 전 대통령의 구속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소수의 주장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수 국민의 요구가 무조건 옳다는 주장도 아니다. 국민 다수의 여론을 거스르는 주장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 경우 합당한 논리와 타당성있는 논거가 바탕이 돼야 한다. ‘국격’ ‘국민자존심’ 등의 추상적이고 모호한 논리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동아는 사설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는 3월 20일자 사설에서 “박 전 대통령과 공모 관계에 있는 최순실 씨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비서관 등 주요 혐의자들은 모두 구속 기소돼 이미 재판을 받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최 씨의 사익 추구를 몰랐다’, ‘뇌물은 엮은 것’이라며 혐의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서마저 부인한다면 검찰은 이미 구속된 피고인들과의 형평성을 들어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서술했다. 결론적으로 이 사설은 “일반인으로 돌아온 이상 일반 피의자와 다름없는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는 더 이상 국격이니 국민 자존심이니 모호한 주장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피고인들과의 형평성’ ‘일반 피의자와 다름없는 철저한 조사’차원에서라도 구속여부는 검찰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이런데 지면을 낭비하기보다는 과거 ‘빛의 정치’운운하며 한복외교를 한껏 홍보했던 기사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라도 해야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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