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재판' 공판기일 개시가 또 한 차례 미뤄졌다. 특검과 삼성그룹 측 변호인 간의 법리 다툼이 마무리되지 않으면서다. 오는 4월 초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됨에 따라 재판부에겐 증거조사와 증인신문 절차를 모두 끝내는데 두 달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 주어진 상황이다.

23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삼성그룹-최순실 간 433억 원 규모 뇌물거래' 사건 두번째 공판준비기일이 진행됐다. 제1회 공판준비기일이 열린지 14일 만이다.

재판부는 이날 공판준비절차를 끝내지 않고 오는 31일 세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열기로 결정함에 따라 오는 첫 번째 공판기일은 오는 4월 초에 열리게 됐다. 5월31일 전에 선고를 내려야 할 재판부로선 매우 촉박한 공판 기간이 주어졌다. 특검법 제10조는 1심 판결의 선고는 공소제기일부터 3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특검은 이 사건 피고인 5인을 지난 2월28일 일괄 기소했다.

▲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430억대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받고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조사를 받기 위해서 소환되고 있다. ⓒ민중의소리
▲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430억대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받고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조사를 받기 위해서 소환되고 있다. ⓒ민중의소리

재판부는 변호인단의 공판 연기 요청을 반영했다. 변호인단은 "2주 정도 시간을 더 주면 증거인부(동의여부)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공판준비기일을 한 번만 더 열고 신속히 공판기일이 진행됐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준비기일에서 진전되는 내용이 없는데 공판 기일을 바로 열고 쟁점을 파악하는게 어떻느냐"고 양측에 의견을 타진했던 재판부는 "2주는 너무 긴 시간"이라며 오는 31일까지 공판준비절차를 마치기로 결정했다.

'이재용 재판'은 긴박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변호인단은 23일 기준 특검으로부터 받은 수사기록만 2만5천쪽이고 사건 진술자는 210여 명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수사량이 워낙 방대해 재판부가 심리해야 할 증거와 증인의 규모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증거 및 증인 채택 규모는 변호인 측 증거인부서가 제출되지 않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삼성 측 "파견검사 자격 없고 공소장 잘못됐으며 증거 제대로 제출 안 돼"

양 측이 한 달 내내 공판 준비 절차에 돌입하게 된 배경엔 △파견검사 공소유지 자격 △특검 공소장 기재 오류 △특검 제출 증거의 증명력 등의 문제를 둘러싼 변호인단의 문제제기가 있다.

변호인단은 특검이 "공소사실과 관련없는 사실을 공소장에 기재해 재판부로 하여금 '선입견'을 갖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형사소송규칙 제118조 "법원에 예단이 생기게 할 수 있는 서류 기타 물건을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해서는 안된다"는 공소장일본주의 원칙을 위배했다는 것이다.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대가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을 특정하면서 지난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과 1999년 '삼성SDS 신주인수권' 사건을 공소장에 함께 기재했다. 이들 사건에 대해선 이 부회장의 승계·상속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불법·편법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검의 박주성 파견검사는 "본건 공소사실에는 법관에게 예단을 줄 수 있는 서류가 첨부됐거나 증거가 인용된 바가 전혀 없다"면서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SDS 신주인수권 등은 피고인 이재용의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부정청탁에 대한 간접사실이다. 공소사실과 무관한 내용이 아니라 범죄 구성요건의 핵심 내용을 서술한 것"이라 반박했다.

변호인단의 두 번째 문제제기는 특검 측 공소장엔 일시·장소 등 구체적 뇌물공여 경위가 적혀있지 않으며 '재산국외도피' 혐의의 경우 위반 법령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박주성 검사는 "피고인 이재용이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 이후, 최지성·장충기·황성수·박상진 등 나머지 피고인에게 대통령으로부터 들었던 뇌물 요구에 대한 언급을 그대로 전달하며 이 부분에 대해 지시한다는 내용이 공소사실에 구체적으로 기재돼있다"고 반박했다. 이 부회장은 2015년 7월25일, 2016년 2월15일에 청와대 '안가'에서 전 대통령 박근혜씨를 단독 면담한 바 있다.

박 검사는 이어 이 부회장의 '재산국외도피' 범죄는 외국환거래법 위반에 해당된다며 "피고인들이 어떤 외국환거래법 조항을 위반했는지는 충분히 공소장에 특정돼 있다"고 말했다.

안종범 수첩·문자메시지 내역 등 증거 채택 불발, 변호인단의 노림수?

이밖에 변호인단은 특검이 △피고인 수사기록 총 목록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 업무수첩 전체 △박상진·장충기·황성수·안종범 간 문자메시지 내역 전체 △황성수·백아무개씨 간 이메일 내용 전체 △압수수색 영장·조서 및 임의제출동의서 등을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원에 수사기록 열람·등사 허용명령신청서를 제출했다.

▲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가 2015년 7월7일 오전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 기공 발파식을 마친 뒤 이재용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파면된 전 대통령 박근혜씨가 2015년 7월7일 오전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 기공 발파식을 마친 뒤 이재용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변호인단은 특히 "지난 20일 특검 측에 수사기록 열람·등사를 신청했는데 48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 답 하지 않고 있다"면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자료일 경우, 특검은 허용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행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 증거들은 형소법 제266조에 따라 공판준비기일에 신청하지 못한 것이므로 공판기일에 증거제출을 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특검 측이 의도적으로 기록 열람을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이나, 특검 측은 "오늘 재판 시작 전에 수사기록 등사 신청 접수 여부를 몰랐다고 변호인께 말씀드렸는데도 (변호인이) 말했다"며 "접수 여부 확인해보겠다"고 반박했다.

변호인이 '조건부 증거채택 철회'를 주장할 때 검사석에 앉은 양재식 특검보, 문지석·박주성·조상원 파견검사는 머리를 맞대고 조용히 얘기를 나누었다.

변호인단은 특검 측이 안 전 수석 수첩과 피고인들 간 메시지나 이메일 내역을 '일부'만 증거로 제출한 데 대해, △해당 증거의 진위 여부 △특검에 유리한 내용만 취사선택됐는지 여부 △사실관계 정황 파악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위법한 증거 수집' 의혹도 제기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은 "위 자료를 어떻게 입수했는지 확인 가능한 압수수색 영장이나 조서, 임의제출동의서 제출되지 않았다"며 "적법 절차에 따라 입수된 것인지 의문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양재식 특검보는 "변호인의 생각이 뭔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조사한 내용에 대해 제출 안 할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 "다만 이 사건과 무관한 자료를 제출하는 게 맞는 건지, 증거 인부 절차를 통해 내는게 맞는 건지 혹은 미리 내는게 맞는 건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해명했다.

박주성 검사 또한 안 전 수석 피의자 신문 조서나 업무 수첩의 경우 "공소사실 관련 부분에 한해 증거목록에 포함시킨 것이고, 기록으로 제출할 예정"이라며 " 향후 증거조사 과정에서 압수수색 조서나 영장이 필요한 경우, 증거로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이와 관련해 다음 기일 전까지 상세한 의견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변호인단에 공소사실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과 주장을 신속히 정리해달라고 촉구했다.

재판부는 △삼성그룹 회사 자금으로 정유라·한국동계영재스포츠센터·미르재단 등 지원한 사실을 인정하는지 △이같은 지원금 출연 이유는 무엇인지 △피고인들이 대통령과 최순실 간 관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재단이 사적이익추구로 변질됐다는 인식이 얼마만큼 있었는지 △삼성전자-코어스포츠(최씨 명의 회사) 간 용역계약에 허위성이 있는지 등에 대해 입장을 정리해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변호인단에 요구했다.

'이재용 재판' 제3회 공판준비기일은 오는 31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특검이 기소한 '삼성그룹-최순실 간 433억 원 규모 뇌물거래' 건의 피고인은 이 부회장을 포함해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사장,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장충기 미전실 차장, 황성수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팀장 등 5인이다.

이날 특검 측에선 양재식 특검보와 문지석·박주성·조상원 파견검사가 출석했다.

재판부는 이날 "특검법상 특검의 직무범위가 수사, 공소제기 , 공소유지로 돼있고 파견검사는 특검보의 지휘·감독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다고 규정돼있다"면서 "재판부는 파견검사가 공소유지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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