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새벽 6시. 모 대기업 입사 3년차 김대리는 피곤한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7시 30분. 9시까지 출근이지만 이 시간까지는 출근해야 성실한 사람으로 통한다. 지난달에 입사한 신입 사원은 이미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다. 박과장님, 정차장님, 오 부장님 차례로 출근한다. 어제 야근까지 하며 정리한 자료는 차장님께 바로 까여 정신없이 다시 쓰기 시작한다. 옆자리 신입 사원은 복사를 잘못해서 과장님께 혼나고 있다. 자세히 들어보니 치마가 너무 짧다고 또 혼나고 있다. 미국에서 유학까지 하고 온 신입사원은 이른 나이에 대기업에 입사하여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받고 있는 듯 했다. 10시 30분. 잠시 숨을 돌리려는 찰나에 정차장님이 담배를 피우러 가자고 해 따라나섰다. 정리한 자료가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차장님의 관심은 온통 신입사원을 향한다. 몸매가 정말 좋다는 둥, 성형한 것 같지는 않냐는 둥, 그의 물음에 온갖 미사여구를 더해 답변해준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팀 회의가 있다. 졸음을 신입사원이 타온 커피로 쫓으며 회의를 시작한다. 입사 3년차지만 동기에 비해 나이가 어려서 늘 주요 업무의 후순위에 있다. 듣기로는 부장님 대학 후배라고 한다. 어느덧 저녁 6시, 부장님의 회식 제안에 전체 팀이 따라나섰다. 이번 달에만 3번째다. 부장님의 농담에 포복절도 하며 고기를 굽는다. 요즘 부장님은 꼰대라는 말이 듣기 싫다며 우리의 근황을 자주 묻는다. 부장님 옆자리는 늘 신입사원 몫이다. 3차까지 끝나고 부장님, 차장님, 과장님 차례로 택시를 태워 보낸다. 물론 그들 손에 숙취음료 하나씩 쥐어드린다. 헐레벌떡 막차를 타고 버스 창가에 기대자 나오는 한숨.

부장님은 왜 저러실까?

‘청년 실업’ ‘비정규직’ ‘정리해고’ 한국 사회에서 노동 문제를 꼽으라면 떠오르는 단어다. 그리고 굵직굵직 한 저 단어들 구석에 주목 받지 못한 ‘노동 문화’의 문제가 있다. 살인적인 취업난 속에 입사만 시켜주면 청춘을 바치겠다고 다짐 했던 회사지만 한국고용정보원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첫 직장 이직률은 20%에 달한다. 야근, 잦은 회식, 폭언, 성희롱, 성차별 등으로 자살 및 우울증을 겪는 직장인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일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에게 관심이 가있는 동안 일하는 사람들의 말 못할 고통이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주변에 얘기하기도 쉽지 않다. 당장 ‘그 대기업을 어떻게 들어갔는데 그 정도도 못 버티느냐’ ‘취업도 못한 나한테 할 소리냐’ 라는 소리를 듣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세대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이 존재할 수 있다. 현재 직장에서 높은 자리는 과거 권위주의, 획일성, 군사문화 등을 체득한 기성세대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중요시하고 획일적인 업무를 강조한다. 연공서열, 위계질서가 가치 판단의 기준이며, 업무에 있어서 남성의 능력을 과대평가 한다. 높은 경제성장 시기에 보다 쉽게 직장에 들어온 이들은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이라는 청년 세대와 능력, 정보력, 창의력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산업화 이후 급속한 사회의 변화 속에 양 세대가 향유했던 문화 자체가 너무나 다르다. 그러나 야근을 강요하는 부장님, 여자사원의 몸매 평가하기를 일삼는 차장님은 세대 간 갈등만이 원인일까?

기업이 만들어낸 시스템

노동 문화의 문제는 세대 간의 갈등을 넘어서 기업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시스템에 기인한다. 직원을 기업의 구성원으로 보지 않고 이윤을 창출해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왔으며, 오너 일가가 경영하는 기업 지배구조는 수직적인 결정 및 획일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냈다. 이윤을 위해 높은 노동강도를 유지하며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였으며, 오너의 결정에 복종하는 문화가 만들어졌고, 인사고과를 몇 사람이 독점하여 이를 효율적인 방식이라 여긴 기업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또한 육체노동을 중시하던 산업화 시대의 문화를 탈피하지 못하고 직장 내에서 여성을 남성의 부속품으로 여기며 주요 업무는 남성의 몫이 되었다.

노동은 단순히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과정을 넘어서 한 인간이 집단과 함께 문화를 공유하는 행위다. 그렇기에 노동문화의 후진성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 수준을 단편으로 보여준다. 최근 방송 및 언론을 통해 기업 내 부조리한 문화가 공론화되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행위를 한 이들에게 분노하였으며 성찰의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기업이 이윤을 위해 직원을 부품으로 밖에 보지 않고, 그러다 쓸모없어지면 쉽게 내다버려지며, 여성의 권리를 되찾는 것이 부정당하는 사회에서 노동문화의 민주주의는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분노는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하는 것일까?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http://change2020.org/) 에서 이와 관련한 카드뉴스를 미디어오늘에 보내왔습니다. 바꿈은 사회진보의제들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고 시민단체들 사이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2015년 7월에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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