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일을 향해 정치권의 시계 바늘이 빠르게 움직이는 가운데, 지지율 싸움에 골몰하는 정치권 일각에서 개념도 명확하지 않은 가짜뉴스를 악용해 검증을 피해가고 상대 진영에 공세를 퍼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은 가짜뉴스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대선이 5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를 흔들기 위한 악성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현재 가짜뉴스라는 개념이 학계에서조차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대선에 가짜뉴스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을 이용해 한국 대선에서도 가짜뉴스를 막겠다며 후보에 대한 검증을 막거나 반대로 상대 후보에 대한 비판 공세에 악용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최순실 일가 부정축재 재산 몰수 위한 특별법 공청회'에 참석해 발언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최순실 일가 부정축재 재산 몰수 위한 특별법 공청회'에 참석해 발언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루머, 가짜뉴스 혼동하는 문재인 캠프?

지난 9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선거캠프인 ‘더문캠’은 최근 기승을 부리는 가짜뉴스와 허위 온라인 게시물에 강력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캠프 내에 가짜뉴스대책단을 만들어 가짜뉴스에 적극 대처할 예정이다.

특히 더문캠 측은 ‘가짜뉴스’가 최근 온라인 상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더문캠의 문용식 가짜뉴스대책단장은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이 댓글 조작을 통해 선거에 개입한데 이어 최근에는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당시 더문캠 측은 가짜뉴스대책단 출범과 함께 가짜뉴스사례집을 배포했다. 해당 사례집에는 △문재인의 집안 내력·나주 남평 문씨 빨갱이 △문재인 엘시티 비리 주범 △가수 남진 사칭 지역감정 조장 비방 글 관련 △문재인 정부 예비 내각 내정 관련 △문재인 JTBC 최순실 태블릿 조작 배후설 등 온라인 상에서 근거 없이 퍼지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와 관련한 24개의 루머들을 가짜뉴스 사례들로 꼽았다. 대체로 보수 진영에서 줄기차게 문 전 대표를 공격하는 색깔론의 근거로 쓰이는 허위 주장들이다.

더문캠이 공개한 가짜뉴스는 대체로 보수 진영에서 줄기차게 문 전 대표를 흔들기 위한 근거가 되는 허위 정보들이다. 주로 보수 진영 인물들이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허위 정보를 올리면 이것이 신빙성 있는 정보인 것처럼 받아들여져 유포된다는 것이다. 혹은 ‘박사모’ 등과 같은 특정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최초 작성자를 알아보기 힘든 정보들도 더문캠에서 가짜뉴스로 규정한 것들이다.

그러나 더문캠에서 규정한 ‘가짜뉴스’가 최근 문제가 불거진 ‘가짜뉴스’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주로 가짜뉴스의 사례로 언급된 것들은 실제 기사의 형식으로 작성돼 기사와 구분하기 어려운 게시글들이 아니라 블로그나 네이버 밴드, 카카오톡 등의 서비스를 통해 떠돌고 있는 출처가 모호하고 허위 주장을 담고 있는 글이다. 매 정치 시즌마다 특정 후보를 악의적으로 비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누군가 의도적으로 온라인 상에서 배포한 글들과 큰 차이가 없다.

더문캠이 규정한 가짜뉴스 중에 정작 ‘사실’을 언급한 사례도 밝혀졌다. 지난 19일 KBS에서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합동토론회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내 인생의 한 장면’을 나타내는 사진으로 특전사로 복무하던 시절 사진을 보여주며 “반란군의 가장 우두머리였는데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고 발언한 바 있다.

▲ 더문캠이 배포한 가짜뉴스사례집 중 일부 갈무리.
▲ 지난 9일 더문캠이 배포한 가짜뉴스사례집 중 일부 갈무리.
‘전두환 표창’ 논란은 정작 더문캠 스스로 지난 9일 배포한 가짜뉴스 사례집에 ‘가짜뉴스’로 언급된 것이기도 하다. 가짜뉴스 사례집에는 해당 정보에 대해 “최초 국민의당 지지층에서 발설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지난 1월28일 안철수 지지자인 고종석 작가가 본인의 트위터 계정에서 공론화시킨 것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가짜뉴스 사례로 갈무리된 고종석 작가의 트위터 계정은 “문재인씨가 전두환이로부터 표창을 받았다(어떤 문위병의 트윗)는 것이 사실이라면, 호남이 문재인을 지지해선 안 될 결정적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됐습니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결과적으로 더문캠에서 가짜뉴스라고 언급했던 사례가 일부 사실에 기반한 내용으로 드러나면서, 더문캠에서 가짜뉴스와 허위정보, 진실을 담고 있는 정보 등의 경계를 혼동하고 비판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을 사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자유한국당, 불리한 건 ‘가짜뉴스’ 유리한건 “명명백백 밝혀야”

정치권이 정당한 의혹 제기를 사실관계와 관련없이 폄하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짜뉴스를 오용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지난 4일 SBS는 단독으로 국정원이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를 사찰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지난 5일 자유한국당은 현안 브리핑을 통해 “한마디로 ‘카더라 통신’, ‘가짜뉴스’에 불과하다”고 보도가 거짓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이어 자유한국당은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라는 전제 위에 ‘추측과 음모를 더한 거짓의 모래탑’이 대한민국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으나 정작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최근 ‘적반하장’이라는 이름으로 자체 온라인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 방송에서는 앞서 언급된 SBS의 국정원 사찰보도를 포함해 최근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 불거진 치매설 등에 대해 ‘가짜뉴스’를 잡겠다며 ‘팩트체킹’을 시도하고 있지만, 오히려 문 전 대표에 대한 의혹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지난 15일자 ‘류여해의 적반하장 8회’ 방송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가 ‘나는 치매가 없다’는 것을 국민들 앞에 객관적으로 검증할만한 충분한 자료가 주어지지 않았다”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는데 당장 (문재인 캠프의) 가짜뉴스대책단장님이 ‘걸리면 죽는다’고 위협하니까 국민들 입장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가 방송 나와서 본인 이름도 이상하게 쓰고 이상한데, 가짜뉴스라는 이름으로 입을 틀어막히고 있다”며 정당한 검증을 가로막는다고 언급했다.

▲ 자유한국당에서 제작하는 '류여해의 적반하장' 8회 방송 갈무리.
▲ 자유한국당에서 제작하는 '류여해의 적반하장' 8회 방송 갈무리.
자유한국당이 사용하는 가짜뉴스의 프레임은 국정원의 헌재 사찰 의혹과 같이 불리한 보도에 대해서는 근거가 없다며 ‘가짜뉴스’로 규정하면서도, 정작 상대 후보와 관련된 의혹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며 국민들 앞에 명백히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는 식의 이중잣대인 셈이다.

대선 시즌을 맞아 후보에 대한 악의적인 허위 정보를 차단하려는 노력은 여러 캠프들이 모두 동일한 상황이다. 다만 각 후보 캠프마다 가짜뉴스에 대한 인식은 조금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 캠프 측은 “이번 대선도 지난 대선과 비슷한 수준의 허위사실과 비방, 음해 등의 네거티브식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면서도 “댓글이나 SNS 상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별도의 변호인단을 구성해 대응한다는 정도의 차원이지 가짜뉴스대응팀을 꾸린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캠프에서 총괄실장을 맡고 있는 기동민 의원도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인력이 (더문캠이 대응하고 있는)그 정도로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일부에서 과도하게 대응하는 측면이 있다. 딱히 가짜뉴스가 아닌 것들도 많지 않냐”고 지적했다.

대선 국면 맞아 가짜뉴스 프레임 활발

일부 정치권에서 강력 대응을 시사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가짜뉴스에 대해, 정작 학계에서 명확하게 정의조차 내려진 것은 없다. 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 마치 진짜 신문기사처럼 온라인 상에서 떠돌아 대선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파급력이 있다며 문제가 제기된 ‘가짜뉴스(Fake news)’를 한국에서 번역해 들여온 말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번역돼 들어온 가짜뉴스라는 말에는 풍자의 의미가 강한 ‘페이크’와 악의적인 거짓이라는 의미가 뒤섞여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뉴스가 페이스북에 등장했는데, 이 ‘가짜뉴스’는 무려 96만 건이 공유됐다. 힐러리 클린턴이 IS와 연루됐다는 가짜뉴스도 70만 건 이상 공유됐다. 특히 지난 미국 대선 국면에서 떠돌았던 가짜뉴스들이 트럼프에 유리하고 힐러리에 불리했다는 점에서 실제로 트럼프가 당선되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이 한국에도 전해지기 시작했다. 대선후보 캠프 등 정치권은 특히 이번 대선에서 가짜뉴스의 영향을 우려하며 대응팀을 만들거나 특정 의혹이 가짜뉴스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미국 대선에 가짜뉴스가 영향을 미쳤는지의 여부조차 확신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이 때문에 한국 대선 국면에도 가짜뉴스가 영향이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미국과 유럽 등 가짜뉴스 논란이 불거졌던 지역들의 정치 환경과 정보를 접하는 환경이 한국과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비교할 수도 없다. 미국 등지에서는 개인 취향에 맞춤 검색을 해주는 ‘필터버블’이 작동하는 온라인 환경이 중심인 반면, 한국에서는 포털에 의존해 기사를 접하는 경향도 클 뿐만아니라 카카오톡 이라는 모바일 메신저를 통한 정보 교류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다르다.

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대선에서도 가짜뉴스가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가짜뉴스 문제가 불거지고 이슈가 확 떠오르긴 했으나 영향력이 얼마나 있는지는 실증적으로 연구한 결과도 뚜렷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위원은 “현재 법 조항만으로도 충분히 규제가 가능한 상황이라 이것을 벗어나는 (가짜뉴스의) 어떤 문제점이 나타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가짜뉴스가 진보와 보수 등 자신의 성향을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고, 그런 관점에서는 대선에 미칠 영향이 우려되는 측면은 있다. 다만 가짜뉴스를 통해 자신의 성향을 바꾸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대선에의 영향을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가짜뉴스가 언급되는 이유는 미국 대선의 영향도 있고 정치 시즌이라는 점이다. 모든 뉴스는 (본질적으로) 완결되지 않은 지식이라는 점에서 (특정한 누군가 뉴스를 가짜라고 규정짓는) 가짜뉴스 담론은 매우 위험하다”며 “평소 같으면 반론권 보장을 법적 절차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인데 (대선까지) 시간이 없으니 가짜뉴스라고 말하”면서 의혹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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