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N(Multi Channel Network, 다중채널네트워크)은 여전히 생소하다. “MCM 가방 짝퉁?”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의미가 모바일 콘텐츠 전반으로 확대되고, 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수익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한 행사에서 “MCN 금이냐 꽝이냐”는 주제로 대담을 연 이유다. 그럼에도 척박한 시장을 개척하는 사업자와 크리에이터들이 있다. 미디어오늘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MCN의 콘텐츠·비즈니스 전략에 대한 고민과 노하우를 듣는다. (관련기사 모음)

“쓱싹쓱싹” “소곤소곤” “휘이이잉”

긁는 소리, 머리 빗는 소리, 물건을 구기는 소리, 음식을 씹는 소리, 두드리는 소리, 바람 부는 소리,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 속삭이는 소리. 이름도 낯선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콘텐츠의 대표적인 ‘소리’다. 우리말로는 ‘자율감각쾌락반응’이라고도 한다. 이 같은 소리가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게 매력이다.

(뽀모의 ASMR: '귀 마사지 6종+귀 막는 소리편')

이 생소한 분야에서 크리에이터 뽀모(PPOMO)는 한국 ASMR의 대명사처럼 불린다. 본업은 일러스트레이터로 크리에이터 활동이 부업임에도 꾸준히 활동하며 300여개의 ASMR 콘텐츠를 만들었고, 유튜브 구독자 39만 명을 확보했다. 자신만의 콘텐츠를 끊임없이 연구해 ‘소리 깎는 장인’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지난 20일 그와 서면 및 전화 인터뷰를 통해 콘텐츠 전략을 들었다. 


▲ 뽀모 ASMR. '풍경 종소리와 바람'편
▲ 뽀모 ASMR. '풍경 종소리와 바람'편

그는 원래 자신의 게임 플레이를 보여주는 ‘게임’ 크리에이터였다. 다른 게임 크리에이터와 달리 게임을 잘 하지 못해 “데드씬(캐릭터가 죽는 장면) 찍기 전문”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뽀모씨는 “일부러 못하는 콘셉트가 아니었다. 게임방송으로 성공하려면 잘 해야겠지만, 게임을 하는 게 취미였다”고 말했다. 이때 관계를 맺은 지인들이 ASMR 장르를 추천해 ASMR 콘텐츠에 빠지게 됐다.

뽀모씨는 ASMR의 매력으로 “잔잔하게 ‘힐링’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점”을 꼽았다. “스트레스와 경쟁, 과한 업무, 인간관계, 공부 등으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는 현대인들이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안정을 찾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지친 마음을 차분하고 좋은 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받고 잠자기 전 좋은 소리들로 마음을 가라앉힘으로서 숙면을 취하고 내일을 위한 힘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이 콘텐츠를 찾는 이용자들은 ‘힐링’을 원한다. “쉽게 잠들 수 없는 분들, 잠이 안 오시는 분들께서 불면증 완화 목적으로 가장 많이 찾는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마음의 안정감을 주는 ‘백색소음’을 활용해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때 집중력 향상을 위해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뽀모씨는 “단순히 귀가 허전하신 분들이나 재미로 보는 이용자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ASMR 크리에이터는 ‘아티스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반적인 유튜브 콘텐츠보다 소리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순간적으로 기분 좋게 소름이 돋는 느낌인 ‘팅글’을 만들어내는 게 관건이다.

‘팅글’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운드를 통해 거리감이나 공간감을 주는 ‘디테일’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 뽀모씨는 “같은 소리라도 천천히 소리를 내다가 속도를 다르게 한다거나 멀리서 가깝게 옮길 경우 더 조심스럽게 소리는 내는 식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콘텐츠를 주로 만들고 있을까. 뽀모씨는 초창기 때 만화, 게임, 영화에 나올법한 개성이 있는 캐릭터로 ‘상황극 연기’를 시도했다. 예를 들어달라고 하자 뽀모씨는 “스토커 등 집착하는 캐릭터를 선보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성이 강한 만큼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기 어려웠고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부터는 좀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점점 대중적인 소재를 선택해 만들게 됐다”고 뽀모씨는 덧붙였다.

▲ 뽀모 ASMR. 넋 놓고 듣는 오아시스 소리편.
▲ 뽀모 ASMR. 넋 놓고 듣는 오아시스 소리편.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서 선보이고 반응이 좋았던 콘텐츠들을 만들었을 때의 감각을 살려 다음에도 참고한다.” 뽀모씨는 시행착오를 거쳐 치킨, 샐러드, 샌드위치 등의 음식 먹방을 소리로 담거나 귀청소, 귀 마사지, 두피마사지 같은 콘텐츠를 주로 만들고 있다. “잠들 수 있게 최대한 편안한 소리”를 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콘텐츠가 무엇인지 묻자 뽀모씨는 “귀 마사지나 귀청소, 입소리 콘텐츠가 반응이 가장 좋은편”이라며 “귀를 직접 마사지하거나 귀를 파주는 형식, 입소리(입으로 쩝쩝대거나 음식을 씹는 등의 소리)처럼 강한 종류의 소리가 ASMR의 바이노럴 사운드(입체음향)와 팅글을 직접적으로 느끼기 쉽기 때문에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뽀모씨가 ‘소리 깎는 장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자신만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소재와 물건은 각자의 매력이 있어서 잘 사용한다면 모두 팅글 반응을 이끌 수 있다”고 뽀모씨는 강조했다. 그는 각종 애니메이션과 게임 OST를 자장가처럼 부르는 등 실험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된 건 ‘심장소리 ASMR’이다. “마이크에 가슴을 대서 제 심장소리를 담은 ASMR을 만들었다. 사람에게 껴안긴 느낌이나 마치 어머니의 뱃속과도 같은 태아의 기분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다”는 취지로 만들게 됐다. “숨을 쉴 때마다 폐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숨소리, 생명을 상징하는 심장박동은 목소리 다음으로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 생각한다. 기존에는 없던 형식이라 창의적이라며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제작환경은 어떨까. ASMR은 소리에 집중되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방음시설’이 필요하다. 뽀모씨는 “방음환경에서 제작해야 소음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뽀모씨의 영상을 보면 양쪽에 귀 모양이 달린 독특하게 생긴 마이크가 눈에 들어온다. 입체음향 마이크인 3DIO 마이크다. 그는 두가지 3DIO마이크를 갖고 있다. 보급형은 가격이 499달러, 고급형은 2000달러에 달한다.

▲ 뽀모 ASMR. '귀 마사지 6종 세트+귀 막는 소리'편.
▲ 뽀모 ASMR. '귀 마사지 6종 세트+귀 막는 소리'편.

뽀모씨는 “다른 마이크들과 다른 점은 실리콘으로 된 귀가 달려있어 직접 귀를 만질 수 있기 때문에 귀로 닿는 느낌을 리얼하게 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귀를 착안해 만든 마이크이기 때문에 귀청소, 귀마사지 등 귀와 관련된 콘텐츠에 활용도가 높다.

일반적인 녹음기도 쓴다. 뽀모씨는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어 야외에 나가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이점과 스테레오감이 자연스러워서 소리를 부드럽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뽀모씨는 “고음질이 중요하다면 투자해야겠지만 마이크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마이크를 갖고도 잘 찍으시는 분들이 많다. 마이크보다는 소리내는 방법과 콘텐츠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글로벌’전략을 효과적으로 실행에 옮긴 대표적인 크리에이터 중 하나다. 다양한 언어로 자막을 만들어 해외 이용자를 늘린 것이다. 

뽀모씨는 “ASMR 장르가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대중적인 콘텐츠여서 자연스럽게 외국팬이 늘어났고, 외국 팬들이 외국어로 콘텐츠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2015년 6월부터 영어자막을 넣기 시작해 일본어 자막도 자주 넣는데, 여기에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 전체 7개 언어로 콘텐츠를 만든다. 뽀모씨는 “외국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자막 뿐만 아니라 발음연습을 통해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를 말하는 콘텐츠도 종종 만든다.

댓글을 보면 “뽀모님의 얼굴이 궁금하다”는 내용이 적지 않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뽀모씨는 “얼굴이 나오는 영상을 만들면 더 많은 분들이 보실 수도 있고 ‘아이컨택’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친근감도 있겠지만 신상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고 외모평가로 인해 상처입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얼굴을 보이는 것이 ASMR에 있어서 꼭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