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수첩’을 무너뜨리는 건 극우·보수 세력의 숙원 과제였다. PD수첩이 2008년 광우병 문제를 다루며 미국 쇠고기 수입 위험성을 고발하자 광우병 촛불집회는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민심을 읽지 못한 이명박 전 대통령(MB) 지지율은 취임 첫해 10%대로 곤두박질쳤다.

MBC PD수첩에 대한 MB의 트라우마는 이때부터였다. 그가 MBC를 바라보는 시각은 2015년 2월 출간된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에 잘 드러나 있다. 

“MBC가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 프로그램만 본다면 3억 미국인들과 우리 국민들은 식품이 아니라 독극물에 가까운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셈이었다.”

▲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전·충남 합동연설회에서 웃음을 보이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전·충남 합동연설회에서 웃음을 보이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그러면서 그는 “당시 공영방송은 전임 정부가 임명한 경영진과 노조가 좌우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비춰보면 정권 차원의 MBC 탄압은 예고된 것이었다.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 언론이 MBC PD수첩을 맹비난하며 ‘마녀사냥’에 나서면서 극우·보수단체들도 여론몰이를 거들었다. 청와대의 관제 데모 의혹을 받고 있는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과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는 현재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선두에 있는 인물들. 이 ‘동원된 전사’들은 PD수첩과도 대척했다. 2010년 광우병 보도로 정부 관계자 명예를 훼손하고 수입육 업체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진 PD수첩 제작진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이들이 이끈 보수단체들은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이 탑승한 출근 차량에 계란을 던지는 등 난동을 피웠다.

▲ 뉴라이트전국연합 회원들은 2010년 1월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사법부 전면쇄신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 판결을 규탄하며 이용훈 대법원장의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당시 손팻말을 들고 있는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뉴라이트전국연합 회원들은 2010년 1월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사법부 전면쇄신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 판결을 규탄하며 이용훈 대법원장의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당시 손팻말을 들고 있는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추선희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이 2010년 1월21일 이용훈 대법원장 사퇴 기자회견 도중 날계란을 깨먹고 있다. 이날 보수단체들은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 판결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이 탑승한 출근 차량에 계란을 던지는 등 난동을 피웠다. 사진=연합뉴스
▲ 추선희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이 2010년 1월21일 이용훈 대법원장 사퇴 기자회견 도중 날계란을 깨먹고 있다. 이날 보수단체들은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 판결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이 탑승한 출근 차량에 계란을 던지는 등 난동을 피웠다. 사진=연합뉴스
MB정부는 MBC 내에서의 전쟁도 준비했다. 뉴라이트 세력을 2009년 MBC에 대거 투입한 것이다. “MBC 내의 ‘좌빨’ 80%는 척결했다”고 호기 부린 MBC PD출신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을 비롯해 뉴라이트 인사들은 MBC를 장악하고자 했고, 그들이 도구로 삼은 인물은 김재철 전 MBC 사장과 간부들이었다. 2012년 MBC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최승호 전 MBC PD수첩 PD는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PD수첩 프로그램은 2011년 1월 방영된 ‘공정사회와 낙하산’이었다”며 “MB정부 인사를 검증하는 사회 고발성 프로그램으로, 이후 PD들이 현업에서 배제되며 탄압이 본격화했다”고 말했다. 

2011년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전 울산MBC 사장)은 ‘현장PD 퇴출 조치’ 일환으로 최승호 전 PD, 이우환·한학수 PD 등을 PD수첩에서 내쳤다. “최승호씨에게 이번에 자유를 주자. 얼마나 피곤하겠느냐”며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를 단행한 그는 권력과 자본에 비판적인 아이템 발제를 철저하게 막았다. 

2011년 PD수첩 아이템은 ‘전세금 사기’, ‘한방 암치료제 논란’, ‘성폭력 교사’, ‘정신질환 범죄’ 등 사건 사고나 르포성 아이템 비율이 압도적이었고 재벌·정치권력 비판, 노동 이슈 등의 아이템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1999년까지 PD수첩에서 사이비 종교를 파헤치던 PD였던 윤 국장은 2013년(~2017년 2월) 울산 MBC 사장으로 영전했다.

▲ 전직 MBC PD수첩 제작진들과 방송인 김미화씨가 2012년 9월 PD수첩 토크 콘서트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전직 MBC PD수첩 제작진들과 방송인 김미화씨가 2012년 9월 PD수첩 토크 콘서트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2012년 7월에는 PD수첩 작가들이 대량 해고됐다. 최 전 PD가 연출한 영화 ‘자백’의 시나리오를 담당한 정재홍 전 PD수첩 작가 등 6명은 일방 해고를 당했다. 해고 사태를 불러온 당시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 김현종 시사제작국장은 현재 MBC 부사장, 목포 MBC 사장으로 여전히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

지난해 1월 공개된 ‘MBC 녹취록’에 등장하는 백 부사장은 지난 2014년 극우 인터넷 매체 ‘폴리뷰’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PD수첩 등의 프로그램에 대해 “다 통제하고 있다”고 발언하며 방송법과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12월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PD수첩 작가 해고 사태 이후 내부 저항은 무뎌졌다.

MBC 시사·교양 PD들의 빈자리는 시용·경력직들이 대체했다. 조능희 전 PD수첩 PD는 “PD수첩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에서 한 게 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권력에 비판적인 아이템은 방송에서 사라졌다. PD수첩을 노골적으로 없애버리면 언론장악의 증거가 되기 때문에 껍데기만 남겨놓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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