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법원은 ‘몰래카메라’를 사용해 교도소 등을 취재했다는 이유로 MBC ‘리얼스토리 눈’을 제작한 독립PD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리얼스토리 눈’을 제작한 독립PD 이외에도 교도소나 구치소에 수감된 이들을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취재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 ‘궁금한 이야기Y’를 제작한 PD 10명이 교정당국에 의해 고발당했다. 이 사건들 역시 서울남부지방법원에 계류 중이며 조만간 선고가 예상된다.

몰래카메라를 사용해 취재를 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용인돼야 하는 행위일까, 아니면 교정당국의 주장처럼 불법(위계공무집행방해, 건조물침입 혐의)이니 무조건 처벌을 받아야 할까? 만약 이 같은 취재를 한 언론인이 외주사 소속이라면, 책임은 개인 언론인에게만 그쳐도 괜찮을까?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알 권리와 취재의 자유: 언론노동자 보호의 필요성을 중심으로’토론회에서는 ‘몰래카메라 독립PD 벌금형’사건을 두고 ‘국민의 알 권리 vs 취재의 불법성’논의뿐 아니라 방송 산업 내 외주 제작 시스템의 문제까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승희,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언론인권센터,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한 이 토론회에는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 신인수 변호사, 복진오 독립피디협회 PD, 조천현 독립PD 등이 참석했다.

▲ 21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알 권리와 취재의 자유'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 21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알 권리와 취재의 자유'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국민의 알 권리 vs 취재의 불법성’

이번 사건에서 충돌하는 주요 가치는 ‘국민의 알 권리’와 ‘취재의 불법성’이다. 알려야 할 범죄행위 등을 언론이 알려 공익을 줄 수 있다면 몰래카메라 등의 취재방식도 불사할 수 있다는 옹호론이다. 반대로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취재 불가를 주장하는 입장은 몰래카메라는 엄연히 불법이며, 취재진이라고 해서 면책특권이 주어지면 안 된다는 논리도 있다. 

신인수 변호사는 “결국 몰래카메라 취재방식의 정당성은 취재의 자유와 그로인해 침해되는 법익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조화시킬것인가로 압축된다”라며 “몰래카메라 혹은 잠입취재 등으로 얻는 공익이 그로 인해 침해되는 사생활 침해 등의 법익을 비교해 사안별로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PD 몰래카메라 벌금형’사건의 경우, 취재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제3자가 직접 손해배상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여 직접 개입한 점이 큰 문제로 지적됐다. 신인수 변호사는 “국가가 직접 개입해 PD들을 고발한 것은 미국은 물론 한국의 경우에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라며 “국가는 국민의 알 권리, 취재의 자유를 보호할 헌법적 의무를 부담해야 하며 취재로 인한 피해자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순간 언론의 자유는 위축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몰래카메라로 취재를 한 제작진에 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해 법원이 손해배상 판결을 낸 사례는 있지만 국가기관이 나서서 고발을 하지는 않았다.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에서 1971년 몰래카메라로 무면허 의료행위를 고발한 ‘라이프’(Life)(타임지가 발행하는 잡지) 기자에게 미연방법원이 1,000달러의 손해금을 인정한 사건이 있다. 그러나 이후 1995년 ABC ‘프라임타임 라이브’가 몰래카메라로 병원의 진료행위를 찍은 사건에는 소송이 모두 기각됐다.

또 다른 사례로는 ABC 기자가 식료품 유통회사에 위장취업을 해 몰래카메라로 촬영, 보도한 사건에 대해서도 1997년 지방법원 배심원이 손해배상을 판결했으나 1999년 2심에서는 원심을 파기해 ‘손해배상 1달러’라는 명목상 손해배상만 인정한 사건이 있다.

한국에서는 탐사보도 과정에서 종종 위장취업, 위장침입, 몰래카메라 방식이 문제가 된 경우가 있지만 실제 기소되어 형사 처분을 받은 사례는 없다. 2009년 MBC ‘불만제로’는 서울의 한 유치원에 제작진 1명이 보조교사로 위장취업하며 몰래카메라로 유치원이 아이들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급식을 먹이는 것을 보도했다. 이에 유치원 측이 제작진을 고소했지만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이외에도 △2002년 대구 매일신문 고추작업장 위장 취업 사건 △2005년 조선일보 패스트푸드점 위장취업 사건 등에서도 형사 처분은 없었다.

김덕모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취재 방법상의 문제를 가지고 국가 기관에서 고발을 하고 벌금형 판결이 나오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지켜야 할 국가가 그 의무를 져버린 것”이라며 “후속 판결들에도 굉장히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 @gettyimages
▲ @gettyimages
외주제작 시스템이 갖는 구조적 문제 “외주 시스템, 책임소재 따지기 어려워”

이번 사건은 단순히 ‘국민의 알 권리’와 ‘취재의 불법성’이라는 대립항으로 구분하면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제작 현장에서 관행이된 몰래카메라 촬영기법을 어떻게 보아야할지, 언론의 자율성에 법적책임을 묻게 될 때 원‧하청관계에 있는 독립제작사나 독립PD에게만 그 소명의 책임이 있는지 문제를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사건은 지상파 방송의 정규편성된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독립PD, 독립제작사 대표, 방송사 정규직 PD, CP 중 책임의 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하기 어렵다. 하지만 결국 법의 판단을 받는 것은 행위자인 독립PD들뿐이며, 그 외 주체들은 책임을지지 않게된다. 특히 노동조합이나 협회에 가입되지 않는 이들이 많은 독립PD들은 이러한 일을 당할 때 재발방지대책 등 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에 김동원 정책국장은 “이번 사건을 통해 외주제작사와 방송사간 계약서 작성시 리스크의 동등한 분담 규명을 명문화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라며 “무엇보다 정규직PD와 독립PD들이 방송산업 내 노동자들간의 존중과 연대로 함께 제도개선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