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하자면 소시민이다. 그래서 일상의 부조리에 맞서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가 수고스럽게 움직일 생각이 별로 없었다. 굳이 수고스럽게 나서는 사람들은 대단한 ‘투쟁’을 하는 사람들로 멀게 느껴졌다. 거대한 사명감이나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져서 동경하는 마음도 조금 드는 동시에,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지는 심정적으로는 잘 동조할 수 없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학보사 「대학신문」에 처음 들어온 것도 역시 글을 쓰고 싶다는 다분히 개인적인 이유에서였다. 학내 소식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사명감을 안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기자로 활동하며 썼던 기사들도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문학이나 책, 이론에 대한 글이 대부분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인생과 작품에 대해 쓰거나, 한국 시위 문화를 소로나 아렌트같은 사상가들의 이론에 비춰 원론적으로 풀어보면 어떨지를 썼다. 「대학신문」의 다른 많은 기자들도 아마 나와 비슷하다. 특별한 사명감 보다는, 저마다의 개인적인 동기 때문에 대학신문에서 기사를 쓰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대학신문’은 특히 ‘투쟁적’이거나 ‘의식 있는’ 대학생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다. 단지 저마다의 이유로 기사를 쓰러온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3월 13일자 「대학신문」의 1면이 백지로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기사를 쓰러온 사람들이 더 이상 기사를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주간 교수에 의한 편집권 침해는 지난해 1월부터 꾸준히 발생했다. 기자단이 기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취재하고 기사 작성까지 완료한 ‘삼성 반올림’ 집회 스케치 기사는 주간 교수에 의해 잘렸다. ‘너무 노동자의 입장만 담은 기사’라는 것이 이유였다. 사측의 입장을 추가해 수정하겠다는 기자단의 제안까지도 거부됐고, ‘반올림’ 소재 자체는 폐기됐다. 주간교수는 기자단에게 알리지 않고, 기사 작성을 조건으로 본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사업을 체결하기도 했다. 기자단은 본인이 쓰는 기사가 사업의 일부라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5개의 기사를 썼다.

지난해 10월 10일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주장하는 학생총회가 성사되고, 본부가 점거된 시점에서 주간 교수의 압력은 더욱 심해졌다. 본부가 점거됐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없이 당시 가장 큰 화제였을 뿐만 아니라, 서울대의 커다란 과제 중 하나인 시흥캠퍼스 사안과도 직결돼있었다. 기자단은 본부점거를 1면 탑으로 정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주간교수는 본부점거 이슈의 비중을 축소시키고 개교 70주년 이슈의 비중을 늘릴 것을 주장하며, 1면 사진과 타이틀을 마음대로 손보려했다.

기사를 쓰는 기자 본인의 의사는 무시된 채 기사가 잘리거나, 기사를 조건으로 사업이 이뤄지거나, 특정 방향으로 1면을 편집하라고 강요당하는 상황은,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다. 기사를 쓰는 기자 본인에게 무엇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결정권이 없었다. 기자들은 그런 결정권도 없이 기사를 쓰러 대학신문에 들어온 게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가장 정당하고도 유일한 수단인 신문을 통해 이에 항의했다.

▲ 최예린 서울대 대학신문 편집장
▲ 최예린 서울대 대학신문 편집장
나와 기자단은 이번 백지발행으로 ‘굳이 수고스럽게 나서는 사람’ 중 하나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신문의 백지발행을 두고 ‘투쟁’이라고도 하니, 우리는 ‘굳이 수고스럽게 나서는 사람’이 된 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이를 ‘언론 수호’니 ‘정론직필’이니 하는 사명감이나 의지로 포장하기 보다는 본인이 쓰는 기사 정도는 본인이 결정하고 싶다는 기자 개개인의 아주 단순한 바람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대학신문의 백지발행이 아닌 다른 모든 ‘투쟁’들도 어쩌면 가장 당연하고 사소한 것을 위한 마지막 움직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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