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된 대통령 박근혜씨가 21일 검찰에 소환됐다. 박씨는 이날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하다”며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간단하게 입장을 밝혔다. 언론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박씨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기삿거리이기 때문이다. 기삿거리가 사라지자 언론은 가십을 기사로 만들어냈다. ‘패션’ ‘김밥’ ‘1001호’가 대표적이다. 

박씨를 표현하는 단어 중 하나가 ‘패션 정치’였다. 박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언론은 ‘패션 정치’ ‘패션 외교’ 등을 언급하며 박씨의 옷차림을 해석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간 박씨의 옷차림을 좌지우지한 건 최씨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언론의 해석과 의미부여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21일 언론은 옷차림 보도를 쏟아냈다. YTN은 “오늘 박 전 대통령의 옷을 유심히 봐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씨가 개입해 의미가 퇴색되기는 했습니다만”이라면서도 “짙은 남색 옷을 입고 있었죠. 저런 옷은 박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에 보면 전투복 차림이라고 한다”고 보도했다. 

▲ 채널A 뉴스특보 방송화면
▲ 채널A 뉴스특보 방송화면
YTN은 “전형적인 전투복인데 그래서 들어갈 때 하는 말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성실히 검찰 조사에 임하겠다라고 한 것은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겠다, 검찰 수사에 자신은 한치도 물러나지 않고 기존의 주장을 굽히지 않겠다, 그런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봤다”는 출연진의 발언을 보도했다.

채널A ‘뉴스특보’에서도 옷차림이 주요하게 다뤄졌다. 사회자가 “오늘은 굽이 있는 신발을 신고 나왔다고요?”라고 물으니 이상희 채널A 정책사회부 차장은 “굽을 6센치 신고 있었지만 보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벅소윤 앵커는 “(박씨의) 얼굴이 조금 푸석푸석”하다며 “잠을 좀 못 잔 것 같다”고 말했다. 

피의자 신분이 된 전직 대통령이 조사를 받는 와중에 어떤 음식을 먹는지는 관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역시 가십에 가깝다. 이날 박씨는 김밥과 유부초밥, 샌드위치를 먹었다고 알려졌다. 이에 머니S는 “박근혜 점심 메뉴 김밥, 샌드위치, 초밥(속보)” 라는 속보 기사를 내놨다. 기사 본문은 없다. 

▲ 파면된 대통령 박근혜씨의 옷차림을 다룬 보도. 사진=포털사이트 검색 결과 화면 갈무리
▲ 파면된 대통령 박근혜씨의 옷차림을 다룬 보도. 사진=포털사이트 검색 결과 화면 갈무리
TV조선 ‘뉴스를 쏘다’의 유아름 앵커는 박씨가 김밥을 먹었다는 소식에 “김밥은 소화가 잘 안 되는 음식 중에 하나”라며 “과거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나"라고 물었다. 이에 신은숙 변호사는 ”흔하게 먹는 음식은 아니“라며 ”국물 종류가 아닌 김밥은 최근에 들어서는 처음 듣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중재 변호사의 해석이 그나마 뉴스 프로그램에서 나올만했다.  이 변호사는 “몇 개를 집어먹더라도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 들이다. 단순한 식사 시간이 아니다. 변호인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수사 내용을 분석하고 자연스럽게 상의하는 시간”이라며 “대책회의를 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조사실을 두고는 더 어처구니없는 해설도 나왔다. YTN에 출연한 한 패널은 “대통령이 우리나라 국가의전서열 1위 아닙니까? 그래서 차량 번호가 1001”이라며 “그런 걸 의식해서 검찰이 장소배치를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묘하게 조사받는 조사실도 1001호, 그리고 대통령 차량번호도 1001”이라고 말했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도 채널A 뉴스특보에서 “1001호에서 조사를 받는다고 하니까 대통령 차량 넘버와 우연히 일치인지”라고 말했다. 포커스뉴스는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조사받을 장소도 신경 써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며 "1001은 대통령의 차량번호로 국가원수를 상징한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왜 1001호일까.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JTBC사건반장에서 "10층이 보안이 훨씬 엄격하다고 한다. 카드키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고, 특수부 검사실이 있는 곳이 10층"이라며 "1001이라는 숫자가 대통령 차량번호와 동일하다는 그런 건 아니"라고 꼬집었다. 언론이 1001호를 다루고 싶다면 억측이 아니라 이런 해석을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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