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토지를 소유하는 건 당연할까? 장 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조그만 땅에 울타리를 치면서 ‘이것은 나의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사기꾼’이라고 비판했다. 불평등이 권력자의 자의적인 판단에서 시작했다는 비판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선 불로소득이 노동소득을 압도하는 등 구조적 모순이 심화된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론’ 서문에서 “자본가와 토지 소유자를 결코 장밋빛으로 묘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칼 폴라니도 ‘거대한 전환’에서 사고팔 수 없는 존재인 노동·화폐 그리고 토지를 상품화했다고 비판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토지를 소유하는 건 어색한 일이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토지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토지와 여타 상품을 구분할 현실적 대안을 고민해왔다. 그가 노무현 정부에서 주장했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취지에 동의했고, 미국의 경제사상가 헨리 조지의 토지보유세를 국내에 소개한 이유다. 미디어오늘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캠프 공정사회정책연구회 토지주택·기본소득 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전 교수를 17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이재명 캠프에서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을 설계했다. 사진=전강수 제공
▲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이재명 캠프에서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을 설계했다. 사진=전강수 제공

조지는 사회가 진보하는데도 계속 빈곤한 이유를 토지사유화 때문이라며 자신의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공개념과 토지가치세를 주장했다. 전 교수는 조지에 대해 “사회주의자처럼 국유를 주장한 건 아니고 시장을 중시하지만 토지는 자연자본이나 일반 상품과는 다르고 높은 공공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토지에 대해서는 모든 국민이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토지에서 나오는 소득에 과세해 평등하게 혜택을 누리도록 해야한다는 사상”이라고 소개했다.

전 교수는 헨리 조지의 사상에 기초해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는 부동산정책을 주장했다. 전 교수는 “종부세도 외곽에서 지원했다”며 “종부세는 토지와 건물의 구분이 없고 부동산 용도별로 구분해 과세했는데 이 방식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용도에 따라 수익이 다르더라도 이는 부동산 가격에 이미 반영됐기 때문에 용도를 구별해 과세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전 교수의 설명이다.

종부세는 건물과 토지에 모두 세금을 부과한 반면 전 교수가 주장하는 국토보유세는 토지에만 세금을 부과한다. 건물주가 불로소득의 상징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의문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다. 전 교수는 “경제학에서는 비용(노력)을 들인 부분에서 나오는 소득은 불로소득이라고 안 본다”고 말했다. 존 로크는 자연이 만인의 공유재산임을 인정하면서 이중 인간이 노동을 투입해 얻은 것은 사유재산이라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건물주의 불로소득도 상당부분 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부세는 거센 조세저항에 직면했다. 전 교수는 “종부세는 거둬서 교부세로 지방정부에 나눠줬는데 때문에 국민은 어떻게 썼는지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종부세를 지지하면서도 이런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토지에 세금을 부과하는 국토보유세 등 불로소득이나 특혜를 환수해 이를 전 국민에게 나눠주는 기본소득제다. 기본소득 방점이 ‘경기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돈을 뿌리는 것’에 찍혀있지만 핵심은 공공성 강화와 특혜환수다.

전 교수는 “(정치철학자) 토머스 페인도 토지에서 나오는 지대를 걷어서 나눠주자는 주장을 했다”며 “토지는 사람이 만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페인은 자신의 책 ‘상식’에서 “문명 상태에서는 어떤 사람도 자연 상태보다 나쁜 조건에 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재산 형성 과정에서 흡수된 자연적 상속에 해당하는 몫을 재산에서 공제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토마스 모어는 저서 ‘유토피아’에서 “음식을 구할 유일한 방법이 도둑질밖에 없다면 이를 막을 형벌은 세상에 없다. 혹형 대신 만인에게 약간의 생계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특혜를 줄이고 공공성 확보

▲ 이재명의 기본소득 내용. 사진=이재명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이재명의 기본소득 내용. 사진=이재명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전 교수 등이 설계한 이재명표 기본소득은 아동·노인 등 특정연령대와 농어민·장애인에게 연 100만 원을 지급하고, 토지배당으로 전 국민에게 연 30만원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구체적으로 필요한 예산을 보면 생애주기별 배당은 아동배당 5.8조원+청소년배당 3.1조원+청년배당 7.6조원+노인배당 7.4조원 등 총 23.8조원이다. 특수배당은 장애인배당 2.5조원+농민배당 1.7조원 등 총 4.2조원, 토지배당은 신설한 국토보유세 15.5조원을 전액 전 국민에게 분배한다. 현실화될 경우 총 소요예산은 약 43.5조원이다.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 확보할까? “나라의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이 많다”고 강조한 이 후보는 현 예산으로도 재정확보가 가능하다고 밝힌 게 30조원, 국토보유세를 통해 15.5조원, 고소득자 소득세 강화를 통해 2.4조원, 조세감면 제도를 개선해 5조원,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인하했던 재벌·대기업 법인세를 8% 올려 15조원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총 68조원 정도가 확보된다.

▲ 이재명 기본소득 재원 마련방안. 사진=이재명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이재명 기본소득 재원 마련방안. 사진=이재명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총예산 중 7%를 절감해 재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 후보는 성남시에서 매년 시 예산의 7~8%를 확보한 실적이 있다. 정부 예산 400조 원 중 약 140조 원이 재량지출이므로 우선순위를 변경해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이 후보는 가로등 예산 등 경직성 예산도 줄여봤는데 문제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경직성 예산중에도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면 재정을 더 확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재정은 매년 증가하기 때문에 자연증가분을 기본소득에 우선 배치할 수도 있다.

이 후보는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재정관리위원회를 설치해 세금탈루나 정부지출 낭비 등을 찾아낼 계획이다. 법인세와 고소득자 소득세 강화 역시 공공성을 가진 돈을 전 국민이 나눠가져야 한다는 전략이다. 기본소득자들은 세금 자체가 공공재 성격을 가진다고 본다. 이재명표 기본소득 모델이 도입될 경우 전체 가구의 97%가 수혜를 누리게 된다.

기본소득의 장점은 복지제도와 달리 해당자를 선별하는 데 드는 행정비용과 낙인효과가 없다. 전 교수는 “현실적인 한계로 특정 연령대에 더 주기는 하지만 나이를 구분하는데 행정비용이 들지 않고, 특정 나이 대에 있으면 그 안에서는 조건을 달지 않기 때문에 행정비용이나 낙인효과는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국토보유세를 도입할 경우 토지가격이 하락해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전 교수는 “배당에 문제가 생기려면 지가가 계속 떨어져야 한다”며 “지가를 결정하는 많은 변수 중 국토보유세는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토지에 세금을 부과한다고 지가가 계속 떨어질 수 없고, 토지 임대료가 사라지지 않는 한 토지보유세도 사라질 수 없다는 뜻이다. 토지+자유연구소에 따르면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이 연 300조 원 이상이다.

추가적인 재원마련 방안은 없을까? 전 교수는 “환경이 토지와 성격이 같다”며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원천인 발전소 등에 세금을 부과할 수도 있고, 환경을 파괴한 생산물에 세금을 부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전 교수는 “인공지능으로 발생하는 소득도 기본소득 재원으로 가능한데 인공지능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데 빅데이터는 누가 제공했느냐”고 말했다. 빅데이터 자체가 공동체의 자산이다.

이재명 기본소득의 장점과 한계

이재명표 기본소득은 액수가 작은 게 장점이자 한계다. 핀란드는 올해 초부터 정부에서 25~58살 실업자 중 20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해 향후 2년간 매월 560유로(약 70만 원)를 지급하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1976년 석유 수입을 재원으로 알래스카영구기금을 설립해 모든 주민에게 매년 배당소득을 지급 중이다. 2015년 기준 1인당 2072달러(약 250만원)를 지급한다. 이탈리아 소도시 리보르노는 지난해 6월부터 빈곤층 100가구(최근 200가구로 확대)에 월 517유로(약 65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네덜란드·브라질·인도·나미비아 등도 기본소득을 실험하고 있다. 대부분 이재명표 기본소득보다 금액이 많다. 국민 입장에서 혜택이 적다고 느낄 수 있다.

▲ 이재명 성남시장이 지난해 12월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이재명 성남시장이 지난해 12월2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전 교수는 “개인별로 보면 액수가 적을 수 있는데 가족단위로 보면 많은 곳은 연 700만 원이 넘는 곳도 있으니 무시할 돈은 아니”라며 “일단 받아보면 공감이 형성돼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성남시 청년배당의 경우 지역화폐로 제공하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 소비할 수밖에 없고 특히 백화점·대형마트에서는 사용할 수 없어 전통시장에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 후보는 ‘기본소득 계산기’ 사이트(http://basic-income.gongjeong.net)를 열어 가족수와 조건에 따른 배당금을 계산할 수 있게 만들었다.

기본소득과 복지, 기본소득과 노동

핀란드·독일·일본 등에선 우파가 기본소득을 주장하기도 한다. 기본소득으로 복지를 대체하면서 복지를 축소하고 자본가들이 기본소득만큼 임금을 덜 주기 위한 전략인 경우가 많다.

전 교수는 “일단 이재명 모델은 기존 복지에 손대지 않고 추가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라며 복지축소에 대해 반박했다. 또한 “임금삭감은 (노동-자본 간) 파워게임인데 기본소득제도가 자본가의 힘을 키워주는 요소는 없다”고 답했다. 기본소득을 빌미로 임금을 깎으려는 자본가는 다른 빌미로도 깎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전 교수는 오히려 “장기적으로 기본소득이 강화되면 열악한 직장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노동자의 협상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하지 않아도 소득이 생기는 게 노동을 차별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전 교수는 “노동 중에 임금노동만 중요한 게 아니”라며 “비임금노동도 권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기존 복지가 노동차별 효과가 크다”며 “국가가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을 정해놓으면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은 ‘뭐하러 일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제도에서 근로의욕이 떨어지니까 일자리 연계형·생산적 복지를 주장하는 것일 뿐, ‘조건없는(노동과 연계되지 않는) 기본소득 받고 빈둥거릴래, 일 할래’ 물으면 오히려 의욕이 증진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8~2009년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한 마을주민 930명에게 월 100나미비아달러(약 1만5000원)를 조건 없이 지급했다. 1년 만에 실업률이 15%p 떨어졌다. 열악한 일자리가 노동의욕을 감소시키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은 열악한 일자리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가사노동 등 ‘그림자 노동’을 보상하는 성격이 있다. 또한 자본주의 체제는 ‘임금노동’만 가치를 인정받는데,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 창의적인 다양한 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다. 전 교수에 따르면 이 후보는 월 50만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장기적인 목표로 잡고 있다.

미국 듀크대 여성학 교수 케이시 윅스는 저서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에서 “기본소득은 일에 종속되지 않는 삶에 대한 상상을 촉발하는 요구”라며 “종착점이라기보다는 방향등의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은 ‘일하지 않는자는 먹지 말라’는 자본주의 착취에서 벗어나 다양한 인간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다양한 기본소득 상상

기본소득은 경제적인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본소득 ‘전도사’로 불리는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정치기본소득’과 ‘언론기본소득’을 제안했다.

각종 선거가 있는 해에 모든 유권자에게 1인당 10만원의 정치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유권자들이 이를 통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정당에 후원하는 제도다. 투표권 뿐 아니라 적극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유인도 마련할 수 있다. 현행 법규에 따르면 10만 원 이하 정치후원금은 90% 이상 돌려준다. 현재 제도를 먼저받고 나중에 후원하는 식으로 순서만 바꾸면 되기 때문에 재원부담은 크지 않은데, 정치적 권리는 커질 수 있다는 게 강 교수의 주장이다.

▲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로 재소환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로 재소환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언론기본소득 역시 마찬가지다. 1인당 연간 5~10만원의 언론기본소득을 지급해 독자들이 좋은 기사에 후원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언론사와 언론인이 기업·정부 광고에 휘둘리는 현상을 막자는 아이디어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은 지난 15일 경향신문 기고를 통해 ‘기본자본제’를 주장했다. 자본의 수익률이 점점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으니 “소득뿐 아니라 일정 수준의 자본도 국민들에게 나눠주자”는 주장이다. 토마 피케티가 소득격차 보다 세습자본주의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지적한 것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다.

전 교수는 “아직 정치기본소득과 언론기본소득을 이재명 캠프에서 논의하진 않았지만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라고 환영했다. ‘기본자본제’에 대해서는 “재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문제지만 생각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는 9부 능선을 넘었다. 이제 어떤 정권교체인지가 중요해졌다. 전 교수는 “토지보유세-기본소득 정책이 반드시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며 “가장 좋은 건 이재명 시장이 직접 하는 것이지만 직접 못하더라도 꼭 다른 후보가 실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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