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자유한국당 대선 주자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2.0%~7.1%)을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홍준표 경남지사가 지난 18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출마 선언을 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얼마 전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성완종 의혹(뇌물 1억원 수수)’과 관련해 이렇게 주장했다. “만약 (대법원에서) JTBC가 바라는대로 0.1%라도 유죄가 나온다면, 그럴 가능성이 없지만, 없는 사실을 가지고 또 다시 뒤집어씌우면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자살하는 것도 검토하겠다.” 무엇보다도 먼저 지적할 것은 홍준표가 1심에서는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법정구속은 면했다는 사실이다.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해도 대법원의 상고심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는지는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이 법리적 상식이다. 그런데도 그는 마치 상고심 재판부에 ‘무죄 확정’ 선고를 내리라고 압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파기환송 가능성 0.1%도 없음’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했다.

검사 출신이라는 현역 고위 행정가 겸 정치인의 입에서 그렇게 논거도 없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 야권과 언론에서 비판의 소리가 거세게 일어났다. 그러자 홍준표는 바로 이튿날인 19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살 예고’를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돈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고 나는 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극단적 선택을 안 해도 된다는 그런 뜻이었다.” 이런 주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자살하는 것도 검토하겠다”는 말보다도 훨씬 심각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홍준표는 같은 날 동아일보와 한 장문의 인터뷰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기자가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야당 1등 후보(문재인)는 대장이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는 홍 지사의 말에 대해 막말이라고 비판한다”고 지적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홍준표 경남지사가 2월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홍준표 경남지사가 2월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팩트(사실)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면서 사건 수사가 중단됐어요. 만약 혐의가 사실이고 수사가 계속됐다면 600만 달러, 60억원이 넘을 걸요. 그거 범죄 수익 아닙니까? 그 범죄 수익 환수해야 된다고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먹은 돈만 환수해야 합니까? 그건 아니죠. 뇌물로 받은 돈이 있으면 환수해야 할 거 아니에요. (···) 그런 환수 절차 없이 끝나버렸다, 이 말이에요.”

여기서 홍준표는 노무현의 ‘뇌물 수수’(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기정사실화하려고 철저히 가정법에 기대고 있다. “만약 혐의가 사실이고 수사가 계속됐다면 범죄 수익 환수해야 한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2009년 4월 말 노무현을 소환해 조사한 검찰은 포괄적 뇌물죄 혐의에 대해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고, 대가성도 입증하지 못했다.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 역시 노무현의 가족에게 금전을 전달한 사실은 시인했지만 대가성 뇌물이라고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홍준표는 그로부터 8년이나 지난 시점에 민감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노무현은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고 문재인의 대장’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사자(死者)와 유력한 대선 주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노이즈 마케팅’의 전형이다.

홍준표는 지난 15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미래재단 주최로 열린 특별대담에서 “이제 세계가 스트롱맨 시대인데, 한국만 좌파 정부가 탄생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스트롱맨’은 일반적으로 ‘철권정치를 자행하는 독재자’를 뜻한다. 홍준표는 “대한민국을 둘러싼 4강을 보라”며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극우 국수주의자이고, 일본 아베도 러시아 푸틴도 중국 시진핑도 똑같다. 한국을 둘러싼 사람들이 전부 스트롱맨들”이라며 자신이 차기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내세웠다. “좌파들이 주로 얘기하는 소통과 경청, 좋은 말이지만 소통과 경청만 하다가 세월 보낼 거냐? 한국도 우파 스트롱맨 시대를 해야 트럼프와 맞장 뜰 수 있고, 시진핑과도 맞장 뜬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지만, 만약 홍준표가 19대 대통령이 된다면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나 인종 차별 등에 맞서 바른 소리를 하고 아베의 ‘소녀상 철거 요구’를 비판하며 시진핑의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에 과감하게 맞설 수 있을까? 극우 국수주의자라고 자임하는 그가 어떻게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막강한 스트롱맨들을 상대로 자주적 외교를 할 수 있겠는가?

홍준표는 그 특별대담에서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를 적극 옹호했다. “우파인 박근혜 정부가 5년 집권을 하는데, 소위 반대되는 좌파 단체는 지원을 안 해도 된다. 자기들은 그래 놓고 어떻게 우파 정부 들어와, 거기 반대하는 좌파 단체들 리스트업 한 죄를 물을 수 있는가? 김기춘처럼 머리 좋은 사람이 직권남용죄로 수갑 차고 들어가는 것도 이해가 안된다.”

▲ 2016년 12월28일 SBS 블랙리스트 관련 보도 중
▲ 2016년 12월28일 SBS 블랙리스트 관련 보도 중
국제적으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이클 무어는 미국의 대통령선거를 앞둔 지난해 7월 23일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절대로 반대한다고 전제한 뒤 비장한 어조로 이렇게 예상했다. “트럼프는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다. 이 비참하고 무지하며 위험한, 파트타임 광대이자 풀타임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인 트럼프가 우리의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석 달 남짓 만에 미국사회가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린 현상을 지켜보면서 민주와 평화를 갈망하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자유한국당은 지난 18일 ‘대선 경선 1차 컷오프’ 결과를 발표했다. 홍준표와 김관용(경북도지사), 이인제, 김진태, 안상수, 원유철(국회의원)이 2라운드에 진출한 것이다. 그들 가운데서 가장 눈길을 끄는 후보는 홍준표와 김진태이다. 두 사람은 너무나 널리 알려진 ‘막말의 달인’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반대자들에게는 가혹한 폭언을 퍼부으면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는 따듯한 관심이나 배려를 보이지 않는 그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그 당의 최종 경선을 앞두고 자신이 ‘극우 국수주의’의 선두주자라고 당원들과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선전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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