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진' 구호가 막 터져나오던 지난해 11월 4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예술가들과 해고되거나 장기투쟁중인 노동자들, 시민들은 광화문광장에 각자의 천막을 치고 연대했다. 그들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풍자하는 다양한 상징물을 만들어 전시하고 연인원 1천 6백만명이 참가했던 '박근혜퇴진촉구 주말 촛불집회'에서는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를 펼쳤고, 특검의 블랙리스트 수사를 독려하는 등 탄핵 국면에서 중요한 축이 되었다. 

조선일보는 지난 13일 사설을 통해 이 예술가, 노동자, 시민들을 '흉물'이라는 단어로 지칭하며 걷어내야 할 대상으로 낙인찍었다. 

"촛불 단체들은 광화문광장에 설치한 70여개 천막도 치우길 바란다. 광화문광장은 거대 천막촌처럼 변해버렸다. 흉물도 이런 흉물이 없다. 원래 있던 세월호 단체의 14개 천막 외에 11월 초부터 2~3인용 텐트에서부터 수십 명이 들어가는 대형 천막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 천막들이 설치됐다. 난민수용소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이 이 무슨 몰골인가... " 지난 13일자 조선일보  [사설] 광화문광장 흉물 천막들 이제 걷어낼 때다 중에서

▲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광화문 캠핑촌을 운영했던 문화예술인, 노동자, 시민들이 20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해단식을 하고 있다. 이들을 '흉물'로 지칭한 지난 13일자 조선일보 사설을 인쇄한 종이가 설치작품에 붙어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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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캠핑촌을 운영했던 문화예술인, 노동자, 시민들이 20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해단식을 하고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20일 오후 광화문 캠핑촌의 문화예술인, 노동자, 시민들은 142일 동안 운영됐던 캠핑촌 해단식을 마치고 자신들을 '흉물'로 규정한 조선일보 앞으로 자신들의 작품을 끌고 갔다. 조선일보 인근 조선일보 소유의 코리아나호텔 앞에선 이들은 조선일보를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적이자 진정한 적폐 청산의 대상'이라고 규정하고 스스로의 작품에 '조선일보' , '흉물' 등을 적은 종이를 붙인 후 부숴버리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캠핑촌은 21일(화)오후 2시부터 캠핑촌 야외무대에서 마지막 광장토론회를 열고, 23일(목) 오전 10시에는 캠핑촌 정리 및 대청소 퍼포먼스, 25일(토)에는 시민들과 최종 마무리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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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의 '흉물' 사설을 규탄하는 광화문 캠핑촌 참가자들의 기자회견문.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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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캠핑촌 문화예술인, 노동자, 시민들이 조선일보 코리아나호텔을 향해 설치작품을 가지고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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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캠핑촌 문화예술인, 노동자, 시민들이 조선일보 코리아나호텔을 향해 설치작품을 가지고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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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캠핑촌 문화예술인, 노동자, 시민들이 조선일보 코리아나호텔을 향해 설치작품을 가지고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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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가 소유한 코리아나호텔 앞에 도착한 광화문 캠핑촌 사람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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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캠핑촌 참가자들이 만든 박근혜 씨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흉상이 조선일보 코리아나호텔 앞으로 옮겨졌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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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리 재벌들로 구성된 스티로폼 작품에 '조선일보', '흉물' 글자를 붙여 부수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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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재벌들로 구성된 스티로폼 작품에 '조선일보', '흉물' 글자를 붙여 부수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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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리 재벌들로 구성된 스티로폼 작품에 '조선일보', '흉물' 글자를 붙여 부수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퍼포먼스가 끝나자 참가자들은 부숴진 작품들을 쓸어 모아 종량제 봉투에 넣고 코리아나호텔 앞에 쌓아두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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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 촌민 일동'의 기자회견 전문이다. 


 눈물의 광장을 흉물의 광장이라 비웃는 너에게

우린들 모르겠는가.

우리의 삶과 노동과 예술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흉한 사람들이었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바다에 가라앉은 게 우리 탓인 것만 같아 얼굴이 더러워질 때까지 운 시민이었다. 야만적인 정리해고와 노조파괴 속에 숨진 동료의 영정을 품고 굴뚝에 기어오른 해고노동자였으며, 가방에 컵라면을 남겨둔 채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의 친구였다. 부당한 권력에 대한 비판과 고통 받는 이들을 향한 연대의 표현이 예술의 한 본령임을 외치고 실천해왔던 문화예술가였다. 우리는 고통을 직시했고, 고통과 싸우려 했다. 그것은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시공간과 벗하는 일이기도 했다. 우린들 왜 모르겠는가. 따뜻하고 안락하며 향기로운 시공을 향해 매진해도 모자랄 판에 차갑고 누추하며 창피함이 가득한 거리에서 악다구니 쓰고 한뎃잠 마다 않는 나를 거울에서 마주할 때 ‘흉하지 않은가’ 묻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것을.

100% 대한민국, 국민이 행복한 나라, 문화예술이 융성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박근혜의 약속을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생명과 노동과 예술을 이토록 무도하게 짓밟을 줄은 몰랐다. 감추어진 권력자 최순실과 국정의 모든 분야를 하나하나 난도질해가며 자본과 권력과 문화로 처바른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시민에게 근엄했던 고위공직자들과 노동자에게 사나웠던 자본의 수장들이 최/박 자매 앞에서 한낱 개처럼 굴었다는 사실에 누가 경악하지 않았겠는가. 고분고분하지 않은 시민, 저항하는 노동자, 사회비판적 문화예술가들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치졸한 검은 명단을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 당신들의 법치요, 행정이었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당신들이 겨눴던 건, 블랙리스트 시민 / 블랙리스트 노동자 / 블랙리스트 예술가만이 아니었다. 100% 대한민국, 이 땅의 모든 주권자였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의 뜻을 이젠 알기에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2016년 11월 4일, 작은 텐트를 하나씩 들고 우리는 광장에 모였다. 경찰의 손아귀에 모조리 빼앗기고 맨몸뚱이로 광장의 첫 밤을 지새웠다. 뼈마저 시린 한기를 녹여준 건 이튿날 시민들이 쥐고 나온 촛불의 온기였다. 촛불로 다시 친 텐트였고, 촛불로 만든 마을이었음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허나 매서운 겨울이었다. 봄이 오리라는 놓을 수 없는 믿음이, 봄을 부르고 말리라는 다짐이 한뎃잠을 견디게 했다. ‘우리들’은 어느새 더 많아졌다.

추웠지만, 우리의 외침과 몸짓만은 뜨거웠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블랙리스트 예술검열 책임자를 처벌하라! 헌정농단 배후세력 재벌총수 감옥으로! 비정규직 양산하는 노동악법 철폐하라! 세월호 진상규명 특조위를 재설치하라! 양심수를 석방하라! 박근혜를 감옥으로! 우리는 외치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그려댔다. 쓰고, 찍었으며, 무대에 올랐다. 신문을 만들고, 적폐청소를 위한 빗자루를 들었으며, 토론했다. 무엇보다 박근혜 이후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상상을 멈추지 않으려 했다.

광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우리에게 광장은 ‘섬’일 수 없었다. 박근혜 탄핵소추를 촉구하며 국회의사당으로, 양심수 석방을 외치며 서울구치소로, 블랙리스트 책임자 조윤선과 김기춘 구속을 촉구하며 세종시 문화관광부로, 노동탄압 국정농단 배후세력을 규탄하며 삼성과 현대로, 민주주의 파괴의 검은 그림자 국정원으로, 무엇보다 청와대로 달려갔다. 그곳이 우리에겐 또 다른 광장이었다. 박근혜의 겨울이 가도, 그곳에 봄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봄은 오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섯 달,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다섯 달이 흘렀다.

우리가 외쳤던 일들의 일부는 현실이 되었다. 블랙리스트 주범 조윤선과 김기춘이 구속되었다. 노동자를 탄압하고 권력실세의 뒷배를 봐주던 삼성재벌 이재용이 감옥에 갇혔다. 무엇보다 이 모든 사태의 총책임자 박근혜의 시대가 끝났다. 우리 촌민들은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이라는 비상공동체에도 변화가 불가피함을 인식하며 총회를 통해 해산을 결정했다. 오는 3월 25일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은 142일의 노숙여정을 공식 종료한다.

허나 우리는 박근혜 구속과 적폐 청산이라는 남은 과제를 직시하며 각자의 공간에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노동탄압이 활개 치는 세상, 비정규직으로 삶을 저당 잡혀야 하는 세상, 차별과 배제가 만연한 세상과 맞서 싸우는 것이 광장의 정신임을 되새길 것이다. 캠핑촌은 공식 해산하지만, 박근혜 적폐 청산을 위해 광장에 남기로 한 단위들의 결정을 존중하며 연대를 지속할 것이다.

우린들 몰랐겠는가.

가족과 친구가 기다리는 집이야말로 나의 안식처이며, 동료들과 함께 땀 흘리는 일터야말로 어서 돌아가야 할 삶의 기반임을. 오래 사색하고 깊게 바라보며 밀도 있는 작업을 추구해야 마땅한 예술가의 책무를. 비정상의 정상화를 간절하게 바란 건 박근혜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었다. 저 간교한 괴물 <조선일보>가 사설을 통해 캠핑촌을 “흉물”이라 부르댈 때, 우리는 실소했다. 잘 보았다, 우리는 흉물이었다. 흉물이 되기를 자처했다. 알고도 흉물이 되었다. 눈물과 저항과 연대의 공동체가 박근혜와 부역자들의 눈에, 한국 민주주의의 적 <조선일보>의 눈에 흉물로 보인 건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는 안다.

이 고단한 싸움 속에서 우리가 저지른 실수와 한계 또한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한겨울 노숙을 감행했던 이 저항운동이 단지 우리의 의지와 실천으로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연대자의 지지와 응원과 보살핌의 덕분이었다는 반박할 수 없는 그 사실을.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흉측한 사회의 흉물이다.

죄인가.

다른 사회, 그것을 간절히 바란 죄.

2017년 3월 20일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 촌민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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