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그해 3월은 ‘유신의 봄’이었다. 박정희 유신 독재는 사회 각 부문에서 비판 세력을 탄압·고문하며 종신 집권 체제를 향해 폭주했다.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으로 상징되는 이 시기는 대한민국 언론사에도 암흑기였다.
죽은 언론에 국민들은 말할 권리를 빼앗겼다. 박정희 유신 정권의 탄압으로 광고가 끊긴 동아일보를 격려 광고로 채우던 시민들의 자유 언론 열망은 1975년 3월17일 동아일보 언론인 대량 해직 사태로 쉬이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42년 전 오늘(3월17일) 박정희와 그에 부역한 사주에 의해 거리로 내쫓긴 동아일보 언론인 113명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하며 죽은 언론에 다시 숨을 불어넣었다.
동아투위가 언론 탄압이 자행되는 현장이면 마다 않고 연대 투쟁에 나섰던 영광의 세월 42년은 강제 해직이라는 시대의 비극에서 비롯했다.
동아일보 기자들과 동아방송 PD, 아나운서, 기술인들이 17일 오전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옛 동아일보 사옥이었던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 앞에서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기쁨으로 들떠 있었다.
김종철 위원장은 “독재 정권에 의해 강제로 쫓겨난 이후 동아일보사에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한 지 벌써 42년”이라며 “지난 세월 동안 우리가 오로지 원했던 것은 자유 언론 실천, 나라의 민주화와 조국 통일이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2012년 대선에서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당선됐을 때 그때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면서 “촛불 혁명 시민들이 박근혜를 탄핵하면서 신유신체제가 청산되고 있다. 박정희의 망령, 박정희 신화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어 “50여 일도 남지 않은 대선 그 이후는 독재도 언론 탄압도 없는 세상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철 대표는 “1974년 4월 박정희의 긴급조치 4호 선포로 우리가 전부 구속·체포되고 고문에 시달릴 때 ‘이제는 끝났다. 나는 간다’라고 체념했다”며 “여기 계신 동아투위 분들을 포함한 민주 인사와 언론인들이 구명과 민주주의 회복에 앞장서신 결과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대표는 “언론 자유에 대한 여러분의 노력과 수고 덕분에 후배 언론인이 국정농단을 파헤치고 유신 잔재를 몰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촛불 집회 성공과 박근혜 탄핵 소식에 동아투위 위원들 만면에 미소가 번졌지만 2012년 이명박 정권의 언론 장악에 저항하다 해직된 기자들의 연설이 시작되자 기자회견 분위기는 다시 무거워졌다.
박 기자는 “어제 대법원이 2012년 YTN 파업을 정당하다고 선고했는데 MBC 해직 언론인들도 조만간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공영방송이 제 자리를 찾아 다시는 해직이라는 비극이 나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성호 기자도 “2012년 파업 당시 선배님들에게 승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는데 그 시간은 유예되고 있다”며 “MBC 기자들이 저항에 나설 때 선배님들의 혼이 우리의 방패였고 길라잡이였다”고 했다.
박성호 기자는 “누군가 ‘왜 투사가 되려고 하느냐’ ‘그렇게 싸워도 괜찮겠느냐’고 우려하면 ‘우리가 동아투위처럼 유신 체제와 싸우고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곤 했다. 동아투위는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자 교과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아투위는 한국 언론의 독립 투사이자 독립군”라며 “동아일보 편집국에 단 한 번이라도 앉아보고 싶다는 염원, 저희 MBC 해직 기자들이 꼭 승리해 반드시 풀어드리겠다”고 다짐했다.
42년 동안 동아투위 위원 113명 가운데 26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 영령 앞에서 동아투위 위원들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며 다짐했다. 결연하고 엄숙한 다짐은 언론 자유 투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박정희 정권 이래 지금까지 권력에 아부하거나 기생하면서 자유 언론과 공정 방송을 파괴하는 데 앞장선 부역자들을 낱낱이 가려내 다양한 방법으로 심판대에 올릴 것을 굳게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