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탄핵'의날. 아직 결정이 나지 않은 오전. 언론의 시선은 예상치 못했던 곳에 쏠렸다.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출근을 하며 헤어롤을 깜박하고 빼놓지 않았던 것. 역사적인 날 작은 해프닝에 언론은 열광했고 SNS에서는 헤어롤의 동그라미 두 개가 인용을 뜻한다는 등 여러 해석을 남기며 다양한 경로로 퍼져나갔다.

금방 그칠 것 같았던 이 작은 헤프닝은 의외로 며칠동안 계속됐다. ‘헤어롤’에 찬사가 쏟아진 것이다. 이 헤어롤은 마치 ‘일에 헌신하는 여성’의 상징이 되버렸다.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AP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직장 여성의 분주한 모습’이라며 추켜세웠다. 

경향신문은 13일 ‘단독’ 기사로 이 헤어롤을 영구보존하는 방안을 헌재가 검토하고 있다고 썼다. 기사는 “사회 안팎에서 ‘일에 헌신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줬다’ 등 긍정적 평가가 나왔다”고 했다. 이같은 뉴스는 4일간 500여건이 쏟아졌다. 

▲ 박근혜씨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일인 10일 오전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소장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박근혜씨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일인 10일 오전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소장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왜 언론은 이렇게 ‘헤어롤’에 집착할까. 물론 ‘헤어롤’이 항상 새로운 뉴스를, 디테일이 살아있는 뉴스를 찾아다니는 기자들에게 아주 흥미로운 아이템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세월호 참사 당일 사저에서 전담 미용사를 불렀던 박근혜씨와 극적인 대비가 되는 모습인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언론이 ‘헤어롤’이라는 흥미롭고 극적인 아이템을 발견하는 눈에서, ‘저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데도 스스로 헤어롤을 말 정도로 소박한 여성’에 대한 평가가 들어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짚어봐야한다. 

이와 관련해 이택광 경희대학교 교수는 14일 ‘정관용의 시사자키’에 출연해 “너무 과도한 칭찬은 결국 여성을 칭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은 외모를 꾸미느라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에 업무에 소홀하다’라는 이런 평소의 생각들이 반영되어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이게 너무 과한 칭찬이 아닌가, 그렇게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러면 그냥 다른 남성 재판관이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지나갈 수도 있는 문제인데 너무 주목을 받았다. 물론 또 그만큼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줬던 업무태만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으니까 자연스럽게 대비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정미 재판관이 여성이기 때문에 이렇게 돋보이는 것도 조금 여성혐오적인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혐오’(미소지니)의 개념에는 여성을 비하하고 폄하하는 것 외에도 여성을 지나치게 칭송하는 것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저 여자는 일도 잘하고, 외모도 잘 꾸민다”라는 칭찬을 하는 이유는 ‘여성은 일도 잘해야 하지만 외모에도 소홀하면 안된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역시 14일 ‘일하는 여성을 향한 이중잣대’라는 기사에서 오히려 이 ‘헤어롤’은 ‘열심히 일하는 여성’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성공한 여성들조차 출근 전 반드시 외모를 가꾸어야하는 현실’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여성들은 누군가의 ‘내조’가 없이도 스스로 외모를 꾸미고 출근한다”라면서 “화장은 예의라는 정언명령이 우리나라 여성 직장인들의 머릿속에 박혀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이는 곧 여성에게는 ‘직장인’이라는 역할 외에 ‘여자’로 계속 보여야 하는 역할이 계속 부과돼있다는 것을 뜻한다.

헤어롤에 대한 언론의 호들갑은 '여성이 자신을 꾸미는 것은 당연하다'는 대전제가 아무리 성공한 여성에게도 피해가지 않는다는 사회인식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인식은, 국내언론은 물론이며 외신까지 공유한 전세계적 인식이었다. 

작은 헤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이정미 재판관의 헤어롤이 ‘일에 헌신하는 여성’이란 평가를 부여받아 ‘상징화’가 되기까지, 그 속에는 외모와 업무가 결부되는 한국 여성의 현실이 내포돼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언론은 여성에게 부여된 '일과 외모(혹은 가정)에 모두 완벽해야 한다'는 지나친 무게감을 비판의식없이 '상징화'하는 데만 골몰했다. 이러한 상징화는 결국 여성에게 더 무거운 족쇄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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