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원내대표가 오는 대통령 선거와 함께 개헌안을 국민 투표에 붙이겠다는 합의를 이룬 가운데, 국민 여론 수렴 없이 대선만을 노린 당리당략적인 합의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국민의당 주승용,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15일 오전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개헌 단일안에 합의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의견 수렴 이후 이번 주말까지 확정될 예정이지만, 주된 내용은 외치만 대통령이 맡는 분권형 대통령제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본권 관련 논의도 오갔지만 구체적으로 확정된 내용은 아니다. 또한 차기 대통령의 임기부터 3년으로 단축하고 분권형 대통령제는 그 다음 대통령인 20대부터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합의안이 만들어지면 국회에서 발의를 거치게 되지만, 민주당을 제외하고 발의가 이뤄지더라도 통과는 난망하다. 세 당 소속 의원들이 모두 찬성하고 30명 남짓되는 민주당의 소수 개헌파 의원들이 찬성한다 하더라도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인 200명을 채울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현재 국회 내 개헌특위를 통해 원내 정당 간 개헌논의가 진행 중이며, 심지어 발의 후 통과 가능성과 무관하게 세 당만 합의를 이어가는 이유는 결국 대선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가 포진한 민주당과 달리, 대선에서 승리를 점치기 힘든 정당들 입장에서 대선 전에 미리 권력을 나누는 식의 개헌에 합의하자며 ‘발목잡기’를 시도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이번 개헌안에 담긴 대통령 임기 단축 내용이 유력후보인 민주당 대선 주자들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15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대선 지형의 유불리를 판단한 것”이라며 “결국 대선에서 신통치 않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당들이 소위 연대하는 하나의 구실로서 개헌을 꺼내들었다”고 비판했다.

▲ 국민의당 대선주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치개혁 정책공약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국민의당 대선주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치개혁 정책공약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심지어 정작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나 박지원 당 대표 등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이견이 표출되는 상황이다. 국민의당조차 개헌안 추진에 모두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을 미뤄보면 이번 개헌안 합의는 '민주당 대세론'이 굳어져가는 대선 국면에 일부 정치권에서 세력을 구축할 ‘개헌’이라는 깃발을 꺼내들 일종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이 명확하다.

안철수 전 대표는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 정책공약 발표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개헌에는 반대한다”며 “대통령 파면 결과를 보면 자유한국당은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라지 않는데, 이런 사람들이 개헌하겠다고 나서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안 전 대표는 “(개헌에는) 국민이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며 “가장 적절한 시기는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라고 짚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개헌의 적절한 시기를 2018년 지방선거라고 밝히며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문 전 대표는 15일 기자 간담회에서 “제가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안을 발표했고, 많은 국민이 지지하는데 지금 정치권은 국민의 민심과 전혀 따로 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문 전 대표는 “정치인들이 무슨 권한으로 마음대로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를 결정하나. 그런 권한을 누가 줬나. 국민의 의견은 물어봤나. 여론조사를 봐도 다수 국민이 반대하는데 정치권은 뭐하나”라며 꼬집었다.

이번 개헌안 합의의 문제는 개헌안에 담아야 할 수많은 쟁점 사항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정치권의 대선을 앞둔 이합집산에 따라 ‘개헌’이라는 키워드만 던져진 것이 꼽힌다.

노회찬 원내대표는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권력구조를 분권형으로 개헌하면 대통령과 총리가 나눠 맡을 외치와 내치는 어떻게 구분할 것이냐. 가령 한미 FTA, 사드배치는 외치인가 내치인가”라며 “대통령의 권한이 외치에만 제한된다면 그러한 대통령을 전 국민의 직접투표로 뽑아야 할 이유는 무엇이며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이 충돌될 때 이를 규율할 주체와 제도는 무엇이냐”고 지적했다.

또한 노 원내대표는 이번 세 당 간의 개헌안 추진 합의에 대해 “그간 국회 내 개헌특위에서의 다양한 기본권과 분권 구조 등의 논의와 전혀 무관하게 진행된 합의”라고 비판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다음 날인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20차 범국민 행동의 날, 촛불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다음 날인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20차 범국민 행동의 날, 촛불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무엇보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 민심으로부터 조기 대선 구도가 펼쳐진 만큼 개헌에 대한 국민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이 전혀 없었던 것 역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의 공동상황실장을 맡은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15일 “광장 촛불 이후로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해 행사하는 주권에 대한 국민들의 감수성이 높아져있다. 헌법은 국민의 주권을 다루고 있다”며 “그것을 국민들과 충분한 사전 교감과 합의 없이 정당들이 대선에 맞춰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하는 것은 당리당략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 위원장은 “(정치권에서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개헌이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도 국민의 판단을 물어야 한다”며 “판단 주체는 국민이어야 하고 왜 지금이냐를 판단하는 것도 국민이어야 한다. 두 달 동안 바람직한 정부의 형태와 새로운 권리, 기본권 등의 문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할 수 있으리라고 보지 않는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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