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맞았으면 좋겠다”
“다음주부터 잘 하겠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

지난 13일 이철성 경찰청장과 기자들 사이에 오간 대화다. “안 맞았으면 좋겠다”는 게 기자의 말이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대통령 탄핵 선고가 있었던 지난 10일 헌법재판소가 위치한 서울 종로구 북촌로 일대에서 기자들이 ‘집단 린치’ 당하는 일이 잇따라 벌어졌다. 

연합뉴스 사진부 이아무개 기자는 철제 사다리로 뒷머리를 맞았다. 머리를 맞으면서 안경이 튀어나갔다. 카메라를 빼앗겼다는 증언도 속출하고 있다. 사진가 정운씨는 500만원 상당의 카메라를 빼앗긴 다음 집회 참가자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했다. 사진가 C씨도 카메라를 빼앗겼다. 

문제는 현장에 경찰병력이 있었음에도 이 같은 사고가 잇따랐다는 점이다. 피해 취재진 일부는 경찰이 이런 상황을 방관했다고 지적했다. 집단 린치를 당하던 A기자는 안국역 역사 안을 지키던 경찰에게 집단 린치를 당한 상황을 신고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황당했다. A 기자는 “경찰 말이 너무 웃긴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기네들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게 경찰이 할 소리인지”라며 “일단 같이 현장으로 갔는데, 경찰이 더 이상 안 움직였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여기까지가 우리 구역’ 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 집회 참가자가 철제 사다리로 연합뉴스 이아무개 기자를 내리치고 있다. 사진=SBS 방송화면 갈무리
▲ 집회 참가자가 철제 사다리로 연합뉴스 이아무개 기자를 내리치고 있다. 사진=SBS 방송화면 갈무리
B기자도 비슷한 상황을 전했다. B기자는 탄핵 반대 집회 한 가운데 있다가 10여명으로부터 무차별적인 발길질 등을 당했다. B기자는 경찰에게 “현장에서 폭행이 일어났으니 체포를 하든지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은 B기자에게 “일단 여기서 벗어나라”고 말했을 뿐이다. B기자는 “세월호 집회 때와 양상이 너무 달라서 놀랐다”고 비판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조용하게 있다가 급작스럽게 폭력을 휘둘렀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이들은 탄핵 인용 직후부터 폭력 사태를 예고했다. 시사인 영상에 따르면 집회 주최 측은 인용 결정 이후 마이크로 “기자와 네티즌에 대한 색출 작업에 들어간다”고 공지했다. 경찰은 이날 현장에서 쇠로 된 깃봉 86개를 압수했다. 

심지어 경찰이 맞고 있어서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C기자는 “맞는 도중 경찰에 도움을 청하려고 했는데 경찰도 집회 참가자들에게 맞고 있었다”고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경찰이 폭력을 방관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청장이 13일 기자들과 만나 나눈 대화에서도 이런 ‘나이브함’은 그대로 드러난다. 이 청장은 “탄핵선고 당일에는 전략적 인내를 했다”며 “당일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을 빼고는 집회 관리가 잘 됐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이 청장은 간담회 말미에도 “어느 쪽이든 폭발적일 것이었다. 차벽 뒤에 병력을 두고 조금 받아주자. 어느 쪽이 됐든 상실감, 분노를 받아주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인내 대응을 했을지 모르나 그 피해는 취재진과 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경찰에 접수된 취재진 피해만 10명이고 미디어오늘에 제보된 사례 등을 더하면 20명이 훌쩍 넘는다. 일반 시민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알 수도 없다. 

법적으로 허용한 폭력이 통제에 따른 국가 폭력이다. 폭력에 ‘공권력’ 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주는 이유다. 하지만 그 공권력이 제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청장은 피해자들에게도 ‘전략적 인내’를 말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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