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박근혜씨에 대한 헌재의 대통령직 파면 선고가 있기 하루 전 지난 9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낸 성명서 제목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언론 적폐 청산은 언론 부역자 단죄와 부당하게 해고된 언론인 복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게 공정보도를 위해 싸우다 탄압받고 동료를 잃은 많은 언론인의 바람이다.

특히 청와대 ‘낙하산’ 인사들로 이사회부터 사장, 임원들까지 장악된 공영방송의 폐해는 심각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일명 ‘언론장악 방지법(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이 발의된 이유도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이 정권 편향적 인물로 완전히 장악됐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 내내 공영방송은 공정방송을 하지 못하고 언론 자유 침해와 노동 탄압의 대표 사업장으로 전락했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씨가 지난 2013년 3월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 관련 SBS 리포트 갈무리.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씨가 지난 2013년 3월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 관련 SBS 리포트 갈무리.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는 10일 헌재의 박근혜 파면 결정 후 청와대 언론장악에 굴종해온 KBS 이인호 이사장과 고대영 사장도 함께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고대영 사장은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공영방송으로서 권력의 부정과 부패를 감시하지 못한 책임을 넘어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이 드러나는 상황 속에도 이를 축소·왜곡하는 뉴스와 방송을 지속했다”며 “탄핵 여론과 세월호 진상조사, 사드 등 우리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해 정부와 여당, 대통령의 입장에 치우친 일방적인 보도와 방송으로 국민을 현혹하고 언론자유를 침해함으로써 KBS를 삼류 방송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인호 이사장에 대해서도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 등에서 청와대가 이미 이사장에 내정한 낙하산임이 사실상 드러났다”며 “고대영 사장의 선출 과정에서 청와대 홍보수석과 KBS 사장 자리를 놓고 의논한 사실이 감사원 조사를 통해 드러나, 청와대가 KBS 사장 선출 과정에 사전 개입도록 한 것만으로도 진작에 물러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의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언론, 과연 공정한가' 토론회에 방문진 고영주 이사장(왼쪽)과 이인호 KBS이사장이 축사한 후 토론을 듣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의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언론, 과연 공정한가' 토론회에 방문진 고영주 이사장(왼쪽)과 이인호 KBS이사장이 축사한 후 토론을 듣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아울러 KBS 간부들은 지난해 9월 박근혜 게이트가 언론 보도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후에도 최순실 등의 각종 국정농단 정황과 증거들을 외면한 채 “야당이 국감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을 국민적 의혹이라고 간주하고 TF(특별취재팀)를 꾸리자고 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김인영 전 보도본부장)”,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 맞나? 알려져 있다는데 어떻게 측근이라고 장담할 수 있나”(정지환 통합뉴스룸국장), “최순실과 관련된 것은 전부 공방이고 의혹 수준에 불과하다”(강석훈 제작본부 TV프로덕션2담당)” 등의 태도를 보였다.

지난해 11월9일 뉴스타파 ‘박근혜 최순실 체제의 부역자들 3–KBS’ 방송 갈무리.
지난해 11월9일 뉴스타파 ‘박근혜 최순실 체제의 부역자들 3–KBS’ 방송 갈무리.
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MBC 노조탄압 청문회’를 의결할 만큼 극심한 언론 자유 침해와 불법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MBC 역시 마찬가지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김연국)도 10일 “대통령 탄핵과 함께 박근혜 부역 체제의 산물인 MBC 경영진도 즉각 탄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MBC본부는 “지난 5년 MBC는 정권의 비리를 감시하기는커녕, 정권의 이익을 수호하는 친위대 역할을 했다”면서 “세월호 참사와 최순실 게이트 국면마다 사태의 본질을 왜곡·훼손하고 정권을 대변하는 잇따른 보도 참사로 시청자들에게 고통을 안겼다”고 질타했다.

이어 “MBC가 공영방송사로서, 언론사로서 최소한의 선이라도 지켰다면 오늘과 같은 국가적 불행은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언론 고유의 책무인 권력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됐더라면, 탄핵 절차에 소요된 사회적 비용도 그만큼 최소화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임기가 끝난 MBC 안광한 전 사장은 박근혜씨의 비선 실세 정윤회씨와 연루돼 보도와 드라마 제작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후 언론단체로부터 특검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정윤회씨 아들 정우식씨의 MBC 드라마 특혜 의혹에 안 전 사장이 관여했다는 PD들의 증언이 나온 후, 지난 1월에는 TV조선 보도로 정씨가 안 전 사장과 여러 차례 만나 우호적인 보도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커졌다. 비선 실세가 공영방송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이권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MBC를국민의품으로!공동대책위원회와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는 지난 1월16일 안 전 사장과 정씨를 업무상 배임과 방송법 위반 혐의 등으로 특검에 고발하며 “두 사람은 여러 차례 만나 청와대 관련 보도 협조까지 논했다는데 이는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정면으로 부정한 불법 행위”라며 “정씨 아들이 어떻게 MBC 드라마에 연거푸 출연하게 됐는지, MBC 뉴스가 왜 ‘청와대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지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8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 1000여 명이 ‘언론부역자 청산, 언론장악 방지법 즉각 제정’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박근혜씨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고대영 KBS 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안광한 전 MBC 사장의 탈을 쓰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해 12월8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 1000여 명이 ‘언론부역자 청산, 언론장악 방지법 즉각 제정’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박근혜씨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고대영 KBS 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안광한 전 MBC 사장의 탈을 쓰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SBS 출신인 김성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언론단체가 지목한 박근혜 정권의 대표적인 언론장악 적폐의 부역자로 ‘방송법 위반’과 ‘직권 남용’ 혐의로 고발된 인물이다. 최순실씨의 측근이던 차은택씨는 지난 1월23일 열린 헌재의 박근혜 탄핵심판 8차 공개 변론에서 “김성우 전 수석 역시 최순실의 인사”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김 전 수석은 SBS 기획본부 본부장이던 2015년 1월 대통령비서실 사회문화특별보좌관으로, 2월엔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해 1월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도 제2부속비서관에서 홍보수석실 산하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두 사람 관계에 대한 의문도 증폭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에 따르면 사드 배치와 관련한 비판 보도에 대해 김 전 수석은 직접 SBS 취재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압력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15년 6월 메르스 사태 때도 정부의 대응 실패를 비판한 국민일보 편집국장에게 직접 전화해 항의한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었다.

윤창현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김 전 수석은 매일 홍보수석실 회의를 열어 언론 보도를 ‘비판 보도’, ‘옹호 보도’ 등으로 분류하고 세세하게 모니터를 했으며, 그 가운데서도 SBS 보도를 가장 먼저 검토했던 것으로 안다”며 “청와대의 언론통제 시도가 광범위하고 일상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노조는 지난해 12월 김 전 수석을 포함해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이인호 KBS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고대영 KBS 사장 △안광한 전 MBC 사장 △배석규 전 YTN 사장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백종문 MBC 부사장을 10대 언론 부역자로 꼽았다.

▲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의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언론, 과연 공정한가' 토론회가 끝나고 이인호 KBS이사장이 주최자인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전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인사하고 있다. 가운데는 국회가 탄핵을 의결한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했던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의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언론, 과연 공정한가' 토론회가 끝나고 이인호 KBS이사장(왼쪽)이 주최자인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오른쪽.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인사하고 있다. 가운데는 국회가 탄핵을 의결한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단독 인터뷰했던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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