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를 보면 차라리 이명박은 정직했다. 박근혜는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집권했지만 집권 뒤에 ‘안면 몰수’했다. 박근혜가 대기업 회장들을 불러 국민 세금으로 호화오찬을 즐기거나 으밀아밀 재단을 궁리하고 있을 때, 벼랑에 몰린 민중들의 집회를 겨냥해 살천스레 ‘법질서 수호’를 부르댈 때, 대한민국의 가난한 사람들과 청년들은 깊은 고통에 잠겨야 했다.
객관적 통계가 뒷받침한다. 박근혜 집권 4년 동안 소득 1분위, 하위 20%의 월평균 노동소득은 1.8% 줄어들었다. 반면에 소득 5분위, 상위 20%의 소득은 12.1%나 늘어났다. 금액으로 따지면 차이는 더 크다. 2016년 청년실업률은 통계조사가 시작된 1999년 이래 최고인 9.8%다. 실제 청년들이 겪는 체감실업률은 22.5%에 이른다. 그렇다고 성장률이 높은 것도 아니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아 3%를 밑돌았다. ‘국민행복 시대’를 내건 박근혜의 집권 내내 ‘행복’했던 사람들이 있다면, 소득이 두 자리 숫자로 늘어난 상위 20%일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 만일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면, 우리는 지금 ‘대중의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경제체제’에 살고 있어야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대통령 김대중은 대중경제를 구현할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 노무현도 인간 노무현에 대한 애틋한 정서와 별개로 공약 이행을 냉철하게 평가해야 옳다. ‘분배를 통한 성장’이라는 획기적 공약, 임기 중에 적어도 ‘노사간 힘의 균형’은 이루겠다는 약속 모두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음 대통령을 맡겠다고 나선 예비후보들의 ‘불붙은 공약’도 이제는 차분하게 살펴야 옳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현 가능성과 의지다.
바로 그래서다. 최우선 공약은 ‘공약 이행’에 두어야 한다. 딱히 문재인만이 아니다. 다음 대통령에 도전하고 있는 모든 예비후보들에게 권한다. 청와대 비서실에 ‘공약실천 수석’을 약속하라. 그 일에 ‘수석비서관’까지 둬야 할 이유는 명쾌하다. 단순히 점검하는 일이 아니라 왜, 어디서, 누가 공약이행을 가로막고 있는지 끊임없이 분석하고 대통령에게 직언을 해야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헛된 공약으로 대한민국이 언제까지 세월만 낭비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 일본의 변화는 우리에게 조금의 방심이나 안일도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저항이 있어도 반드시 공약을 지키겠다는 옹골찬 의지가 뚝뚝 묻어나는 대통령을 만들 때다. 촛불의 다음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