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이명박에서 박근혜 정권까지 MBC는 9년 동안 철저하게 망가졌다. 부당한 권력에 비판적인 MBC 언론인들은 2012년 파업 이후 비제작부서로 쫓겨나고 해고당했다. 뉴스는 정권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PD수첩’ 등 송곳 같던 시사 보도 프로그램은 무뎌진 지 오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근현대사에 드리운 그늘을 조명하던 MBC는 이제는 말할 수 없는 방송사가 돼 버렸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언론장악 빗장을 푼 방송사 노동조합 활동도 위축됐다. 미디어오늘은 87년 체제 30년을 맞아 전·현직 MBC 언론인과 전문가들의 생각을 담고 권력의 언론장악 구조를 분석해 MBC 사태를 되짚으려 한다.>

MBC 노동조합(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은 87년 체제 산물이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서 MBC 취재진이 ‘기레기’라는 비난을 받으며 쫓겨나고 외면당했던 것처럼 1987년 6월 항쟁에서 MBC는 분노의 대상이었다. 

당시 MBC 취재차였던 하얀색 르망은 명동성당에서 시민들에 의해 박살났고 MBC 기자들은 이런 시민들의 울분을 방송민주화추진위원회 결성과 MBC노동조합 탄생으로 승화했다. 방송 민주화 운동은 공정한 방송을 갈망한 시민들의 각성에서 비롯했다.

30년이 지났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최악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2012년 파업에 참여했던 기자·PD들은 시용·경력 기자들로 물갈이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폭주한 언론부역 세력은 노골적으로 방송과 보도를 망가뜨리고 있다. 

초창기 MBC 노조 주역이었던 MBC PD 출신 김평호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6월 항쟁에서 터져 나왔던 민주화 열망이 사회 곳곳으로 스며들었다”며 “국민이 만들어준 87년 체제라는 해방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방송사 노동조합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강고해진 신자유주의 체제의 억압과 강제가 방송 민주화 운동을 쇠락시켰다”는 지적은 곱씹어 볼 만하다.

▲ MBC에서 해직을 경험한 PD출신 김평호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지난 11일 오후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인근 식당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에서 해직을 경험한 PD출신 김평호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지난 11일 오후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인근 식당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지난 11일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전날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한 ‘탄핵 뒤풀이’ 이야기부터 했다. “어제도 술자리에서 동료들과 MBC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김장겸 체제’가 이대로 간다면 DNA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MBC가 정상화될 수 있을지 다들 걱정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박근혜 탄핵은 언론사 내부 분위기가 달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또한 MBC 정상화는 차기 정부 미디어정책 최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 박근혜가 탄핵되면서 적폐를 청산하자는 시민들의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특히 언론개혁, 그 가운데서도 MBC 정상화에 대한 열망이 크다.

“너무 망가졌다. 우리 때완 많이 다르다. ‘김장겸 체제’가 이대로 간다면…. 언론 부역자들이 9년 동안 지배하게 되는 거다. DNA 자체가 뒤바뀌게 된다. 인력이 회복될 수 없는 수준으로 물갈이되면 과거 MBC로 되돌리는 게 불가능해진다.”

- 권력의 언론장악을 견제할 세력인 언론노조 MBC본부와 MBC 구성원들이 지속적인 탄압으로 힘을 잃고 있다.

“지금은 노조에 눈길 한 번 줬다간 불이익을 받지 않나. 가슴이 찢어진다. 선후배 동료 덕분에 MBC를 반석 위에 올려놨다고 생각했는데 과실을 엉뚱한 이들이 채갔다. 후배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1981년 MBC에 입사한 김 교수도 해직과 복직을 경험했다. MBC는 1990년 9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비판적으로 다룬 ‘PD수첩’의 ‘농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 편을 방송 몇 시간 전에 불방 조치했고 1991년 1월부터 방송됐던 사회 고발성 대하드라마 ‘땅’도 일방 지시로 조기 종영시켰다. 사측은 PD수첩 불방 사태에 항의한 안성일 MBC 노조위원장과 김평호 당시 사무국장을 해고했다. MBC노조가 유례없었던 50일 파업에 돌입한 배경이었다.

기자가 김 교수에게 듣고 싶었던 것은 초창기 방송 민주화 운동에 대한 증언이었다. 군사정권 하에서 ‘땡전뉴스’로 공보 역할에 충실했던 MBC가 87년 체제를 겪으며 방송 민주화 운동 선두에 설 수 있었던 배경, 1987년이 그랬듯 박근혜 탄핵 이후 언론인들의 해방 공간이 열릴지 궁금했다.

▲ MBC에서 해직을 경험한 PD출신 김평호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지난 11일 오후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인근 식당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에서 해직을 경험한 PD출신 김평호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지난 11일 오후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인근 식당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초장기 MBC노동조합 활동이 궁금하다. 노태우 정권에서 노조 활동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1987년 MBC노조가 생긴 이래 1990년대 중반까지 거의 매해 파업했던 것 같다. 대부분 프로그램과 뉴스와 관련된 사안 때문이었다. 87년 체제의 힘이 그때까지 남아있었던 거다. 노조가 매번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어도 노조 요구안이 관철되는 방향으로 마무리됐다. 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는 인식이 공유됐다. MBC 내부에서도 정치적 성향이 다르더라도 ‘언론인들은 권력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땐 이렇게 삽시간에 무너질 줄은 몰랐지.”

- 언론노조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던 때였다.

“언론노조는 외형적으로 가장 강력한 시민단체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건설노동조합,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등 소위 인텔리 노조의 지도단체 성격이 강했다. 권영길(1987년 초대 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선배가 그 힘으로 1997년 대통령 후보에 나설 수 있었다. 언론노조를 밑에서 떠받치던 노조가 KBS·MBC였다. 하물며 조선일보도 1988년 노조를 만들었는데 초대 위원장이 김효재씨(MB정부 전 청와대 정무수석)였다. 조선투위 선배들과 함께 활동했던 걸로 기억한다. 1987년 6월 항쟁이 만들어준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과거 MBC노조의 방송 민주화 투쟁 선봉에 섰던 이들은 한국 언론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했다.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1992년 MBC 노조 대외협력위원회 부간사로 50일 파업을 이끌었고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며 20일간 독방에 갇히기도 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tbs교통방송을 라디오 시장에서 1위로 도약시킨 정찬형 tbs대표 역시 1996년 노조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정 대표는 “방송사 민주화 운동은 거창하게 운동권들이 창출한 싸움이 아니라 시민들이 만든 6월 항쟁 공간에서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한 직장인들이 시작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자유언론의 창달’을 명시한 6·29선언이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고 말했다. 최승호·조능희·김환균 등 PD수첩 대표 PD들 역시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 당시 언론운동이 사회적 지지를 받았던 까닭은 무엇일까?

“MBC노조가 한국 사회의 희망이라는 얘기도 참 많았다. 왜냐면 시민들이 변화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광주와 관련한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시작했다. 1989년 2월 방영된 MBC ‘어머니의 노래’가 그랬다. 노사가 공정방송협의회라는 기구를 만들었고 우리는 광주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부들은 ‘애기들아 그러면 안 된다’라고 만류했다.(웃음)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MBC 어머니의 노래는 민족의 쾌거’라는 내용의 시청자 편지를 받기도 했다. 많은 성금과 격려가 있었다. 우리가 집회를 하면 시민단체 성향과 상관없이 찾아왔다. 지역 노래패들이 기꺼이 연대해 노래를 해주는 등 자랑스러운 시절이었다.”

▲ JTBC &lsquo;뉴스룸&rsquo; 손석희 앵커는 1992년 당시 MBC 노조 대외협력위원회 부간사로 50일 파업을 이끌었고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며 20일간 독방에 갇히기도 했다.
▲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1992년 당시 MBC 노조 대외협력위원회 부간사로 50일 파업을 이끌었고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되며 20일간 독방에 갇히기도 했다.
- 지금처럼 노조 활동을 이유로 좌천되거나 배제됐었나?

“MBC의 가장 큰 장점은 조직 문화였다.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선후배간 유대감이 굉장했다. 외부에서 보기엔 기수 문화 정도로 치부하겠지만 파업에서 올라오면 선배들이 수고했다고 살뜰히 후배들을 챙겨줬던 곳이다. 초창기엔 일부 조합원들이 집회 참여로 불이익을 봤지만 감정적으로 부딪히진 않았다. 지금처럼 비인격적으로 조직을 관리하고 내부 DNA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금도가 있었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대신해 모든 걸 뒤집어썼던 시기였다. 지금은 대놓고 기회주의적인 인사를 자리에 앉히지 않나.”

- 그럼에도 방송 민주화 운동에 한계가 있었다면?

“집회를 할 때 동료들과 그런 말을 했다. ‘우리 목소리를 반드시 화면에 반영하자. 꼭 실천하자.’ 그게 진정한 의미의 투쟁인데 집회현장에서 현장으로 돌아가면 일상에 매몰돼 그 기억을 잊곤 했다. 우리가 외친 구호만큼 화면은 따라오지 못했다. 6월 항쟁 열기에 우리는 무임승차했다. 완전한 성공은 이루지 못했다.”

보수 세력과 언론은 MBC를 노영방송으로 규정했다. 끝없이 좌파로 몰아세웠다. MB정부는 2009년 MBC 관리감독기구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에 극우·뉴라이트 세력을 대거 포진시켰다. MBC 장악의 신호탄이었다. KBS·MBC 때문에 진보진영에 정권을 뺏겼다는 보수의 트라우마는 깊고 오래된 것이었다. 

김 교수는 “MBC 제작 자율성이 화려하게 꽃을 피운 때는 노무현 정부 시기가 맞지만 좌고우면 않는 권력 비판에 노무현 정부도 MBC를 골치 아파했다”며 “노무현 정권의 한 청와대 비서관은 내게 ‘MBC는 같은 편일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 방송문화진흥회가 지금처럼 보도나 제작에 개입한 적이 있었나?

“방문진은 바람막이 그 이상도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방문진 차원의 프로그램 개입은 없었다. 아무래도 이명박 정부 때부터 ‘MBC 일베화 작전’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웃음) MBC PD 출신 김우룡씨가 2009년 방문진에 오면서 ‘노영방송’ 프레임이 본격화했다. 본인 스스로 ‘좌파를 청소했다’고 말하지 않았나. 한국의 우파 기득권 집단이 보기에 MBC는 어떻게든 손을 봐야 할 대상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현실이 된 거다.”

- MBC가 이처럼 허무하게 무너진 배경은 무엇일까. 노태우 정권에서도 광주를 다룬 MBC였는데?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억압적인 삶과도 연관이 있다. MBC 기자 후배 임명현씨 논문에도 잘 나와 있다. MBC가 극우 매체화하는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잉여적 주체’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사회처럼 MBC 구성원들도 불안정한 신자유주의적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저항적 목소리가 힘겨운 게 아닐까. 내가 해고될 때만 해도 사회·경제적으로 걱정이 없었다. 노동조합은 임금 1원도 틀리지 않고 보전해줬다. 사회적으로도 저항 언론인, 투사로서 인정받았다. 내게 노조 활동은 자랑스러운 삶의 궤적이었다. 그러나 노동 없는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방송사 노동조합은 여러 압력을 받아왔고 영향력과 권위가 예전과 같을 수 없게 됐다.”

▲ MBC에서 해직을 경험한 PD출신 김평호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지난 11일 오후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인근 식당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MBC에서 해직을 경험한 PD출신 김평호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지난 11일 오후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인근 식당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1987년 그때처럼 박근혜 탄핵이 언론사에 해방 공간을 열어줄 수 있을까?

“권력이 언론 목줄을 죄는 압력이 지금보다야 이완되겠지. 내부적으로도 그에 따른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녹록치 않다. 당장 국회에 계류돼 있는 언론장악방지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태극기 방송’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다. MB정부가 정연주 전 KBS 사장을 쫓아내듯이 진보 진영이 공영방송사를 좌지우지 할 수 있을까.”

- 정치권 역할도 중요할 텐데 어떻게 해결될 것이라고 보나?

“차기 정부 최우선 언론 정책은 MBC 바로세우기가 돼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 문제에 소극적이다. 되레 민주당이 방송법 개정 통과에 부정적인 것 같다. 혹시 ‘MBC는 이제 우리 차지’라고 생각한다면 한참 잘못된 거다.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이미 극우매체가 된 MBC를 다시 되돌릴 이유가 뭐냐는 반응도 나온다고 한다.”

- 미디어 학자로서 차기 정부에 조언한다면?

“새 정부가 미디어·IT 정책에 크게 힘쓸 필요가 있나 싶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 개편 이야기가 나오는데 현재 공무원 수준을 감안하면 차라리 손을 대지 않는 게 낫다. 그냥 내버려두면 알아서 클 것이다. MBC 문제만 해결해도 큰일하는 거지. MBC 사태는 적폐청산의 최우선 순위로 다뤄져야 한다. 이 문제가 왜 중요한지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 어쩌면 공영방송 이사회 개편보다 중요할 수 있다. 제도나 틀만 내세울 게 아니라 다시 MBC 문제 본질을 공론화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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