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이 있던 날 공영방송 MBC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비선실세들과 국정농단을 일삼았던 박근혜씨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돼서만이 아니다. 김장겸 사장 취임 후 이뤄진 대규모 인사에서 MBC 파업 이후 보복성 부당전보 피해자였던 기자·PD 등이 또다시 ‘유배지’로 쫓겨난 것이다.

김장겸 사장의 일련의 인사 내용은 박근혜 탄핵 이후를 예감한 MBC 경영진의 위기감 발로였다. MBC 내부에서 친박 성향으로 꼽히며 박근혜 게이트 국면에서 친박집회 띄우기에 나섰던 김장겸 전 보도본부장은 사장이 된 후에도 친박·극우 간부들로 ‘알박기’ 인사를 단행했다.(▶‘일베’ 글 퍼나르던 MBC 간부 ‘100분 토론’ 맡는다)

게다가 MBC 사측은 지난달 대규모 경력사원 채용 공고를 낸 것에 대해 “계속되는 제작 PD 이탈 상황 속에서 인력 유지 측면에서 채용을 진행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서도 2012년 ‘공정방송’ 파업 이후 비제작 부서로 쫓겨났던 유능한 제작 인력들은 제작 부서로 돌아오지 못했다. 사측의 ‘위선’이 재차 확인된 것이다.

▲ 지난 2005년 12월 기자회견을 열어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조작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던 당시 PD수첩의 최승호 부장(왼쪽)과 한학수 PD.
지난 2005년 12월 기자회견을 열어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조작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던 당시 PD수첩의 최승호 부장(왼쪽)과 한학수 PD.
특히 한때 MBC에서 ‘PD 저널리즘’의 전성기를 이끌다 ‘김재철 체제’ 이후 징계와 부당전보를 당한 이근행·한학수 PD와 최근 대통령 탄핵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이정식 PD가 방송 불방 후 프로그램 제작을 할 수 없는 부서로 전보돼 김장겸 MBC 체제에서도 ‘흑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1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위원장 김연국)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파면 선고가 있던 지난 10일 MBC 사측은 무려 7명(임채유·이근행·한학수·허태정·이정식 PD, 김수진·김민욱 기자)을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로 발령냈다. 이들 중 이미 부당전보로 현업에서 배제된 이들이 5명이다.

이근행 PD는 2010년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김재철 전 사장 선임에 반발해 파업을 이끌다 해고됐다가 이후 특별채용 형식으로 복직됐지만 제작 업무에선 배제됐다.

한학수 PD는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을 파헤친 MBC의 대표적 스타 PD지만 2012년 파업 직후 부당전보·대기발령·신천 교육대(신천동에 위치한 MBC아카데미) 등 탄압을 받다가 2014년엔 신사업개발센터로까지 밀려났다. 이근행·한학수 PD는 최근까지 주조정실에서 방송 송출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편성국MD(Master Director)로 있었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170일 파업 당시 동료들과 함께 피케팅과 1인 시위, ‘제대로 뉴스데스크’ 제작 활동 등에 참여했던 김수진·김민욱 기자 역시 대기발령-신천 교육대-경인지사 등을 거쳐 현업과 무관한 부서에 4년째 배치됐다가 이번에 다시 구로에 강제 발령 났다”며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담당하다 사측으로부터 징계받고 대법원까지 ‘부당징계’라는 판결을 받아낸 안혜란 PD는 심의국으로 축출됐다”고 밝혔다.

노조는 “사법부의 잇따른 부당징계·부당전보 확인 판결에도 김장겸 MBC는 똑같은 유형의 위법 행위를 또 저질렀다”며 “말로는 법과 원칙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사법부를 무시하고 불법 행위를 악질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5년간 MBC 구성원들에게 가해진 전보와 징계의 부당함을 인정받기 위해 제기된 소송은 사건별로는 22건, 재판으론 총 46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노조가 35개의 재판에서 이겼으며(승소율 89.7%), 5개는 진행 중이다.

노조는 “이번 인사는 부당 징계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은 고사하고, 유능한 기자와 PD들을 다시 현업에서 쫓아낸 것”이라며 “사법부의 판결에도 MBC 경영진은 판결을 제대로 이행한 적이 없고 오히려 김장겸 사장 취임 이후 더욱 악질적인 위법 행위로 폭주를 거듭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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