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결정을 이끈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3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에서 퇴임식을 가졌다. 이 대행은 “헌재는 엊그제 참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을 했다”며 “오늘 진통의 아픔이 클 지라도 헌법과 법치를 통해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파면 이후 이틀을 청와대에서 버티다 삼성동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헌재 결정에 대한 불복의 뜻을 드러낸 박근혜씨와 대비되는 태도였다.

이 대행은 “소임을 다할 수 있었다는 점이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울 따름”이라며 “이 모든 것은 재판관님들과 헌재의 모든 가족 여러분의 도움 덕분”이라고 주변인들에게 공을 돌렸다.

▲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3일 오전 헌재 대강당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3일 오전 헌재 대강당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대행은 이번 탄핵결정 과정에서의 고뇌를 드러냈다. 이 대행은 “헌법재판관이라는 자리는 부족한 저에게 참으로 막중하고 무거웠다”며 “고요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그 자리가 실은 폭풍우 치는 바다의 한가운데였다”고 말했다. 이어 “헌재는 엊그제 참으로 고통스럽고 어려운 결정을 했다”며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통치구조의 위기 상황과 갈등은 민주주의·법치주의·인권보장이라는 헌법을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 대행은 “여성재판관에 대해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여성이 기대하는 바도 잘 알고 있었다”며 “그런데 어떤 판단이 가장 바르고 좋은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 13일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자리에 앉아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13일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자리에 앉아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헌재 결정에 대해 막말과 폭력을 쏟아내는 세력에 대해 우려했다. 이 대행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존중해야 한다”며 “이번 진통을 통해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고 성숙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한 뒤 “반목과 분열을 떨치고 화합하고 상생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씨가 할 것으로 예상했던 탄핵과정에서 갈등과 상처에 대한 입장이 이 대행에게서 나왔다.

이 대행은 “국민의 격려와 기대, 비판과 질책 모두 귀하고 값진 선물과 같았다”며 “헌재 가족 여러분이 부족한 저를 도와주시느라 고생많았고, 멋진 사람들과 일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혹시 저로 인해 상처를 받았더라도 너그러이 용서를 빈다”고 덧붙였다.

▲ 제주에서 왔다는 한 시민(왼쪽)이 이정미 권한대행이 퇴임식을 마치고 나가면서 바라보기만 해줘도 좋겠다며 꽃다발을 들고 3시간 넘게 헌재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제주에서 왔다는 한 시민(왼쪽)이 이정미 권한대행이 퇴임식을 마치고 나가면서 바라보기만 해줘도 좋겠다며 꽃다발을 들고 3시간 넘게 헌재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탄핵에 반대하는 친박극우단체 엄마부대의 주옥순 대표(가운데) 등 일부 친박시민들은 탄핵심판을 부정하는 손피켓 등을 들고 시위를 하려했으나 경찰에 의해 1인 시위 형식에 맞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지게 됐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탄핵에 반대하는 친박극우단체 엄마부대의 주옥순 대표(가운데) 등 일부 친박시민들은 탄핵심판을 부정하는 손피켓 등을 들고 시위를 하려했으나 경찰에 의해 1인 시위 형식에 맞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지게 됐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대행은 지난 1962년 울산에서 태어나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16기로 수료했다. 198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됐고, 서울지방법원·서울가정법원·서울고등법원 판사 등을 거친 뒤 2002년 울산지방법원의 부장판사가 됐다.

이 대행은 2011년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헌법재판관이 됐다. 이공현 재판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이 권한대행은 헌법재판소 사상 두 번째 여성 재판관이다.

이 대행은 지난 1월31일 박한철 전 헌재소장 퇴임 이후 권한대행을 맡아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를 이끌었다. 이 대행이 진보성향의 재판관으로 분류되지만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당시엔 주심을 맡아 찬성의견을 냈다.

지난 10일 탄핵심판 결정 선고에서는 주문을 낭독하며 헌정사상 첫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렸다. 친박단체를 중심으로 재판부에 대한 위협이 나오는 가운데 헌재는 이 대행이 최고 수준의 경호를 받을 수 있도록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고 경찰은 재판관들을 근접경호하고 재판관 자택 주변에 대한 순찰도 강화했다.

이 대행이 퇴임한 뒤엔 남은 재판관 중 가장 선임인 김이수 재판관이 공석인 헌재소장의 권한대행을 맡을 전망이다.

▲ 한 시민이 떠나는 이정미 재판관을 기억하겠다는 내용의 글과 꽃을 헌재 건너편 인도에 설치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한 시민이 떠나는 이정미 재판관을 기억하겠다는 내용의 글과 꽃을 헌재 건너편 인도에 설치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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