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 후 언론의 카메라는 일제히 서울 삼성동으로 집중됐다.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온 후 '삼성동 사저'로 거처를 옮길 것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취재진들은 '탄핵 반대' 주민들의 욕설·항의를 받아가며 사저 입구를 지키고 있다.

11일 오후 2시 경, 박 전 대통령 삼성동 사저 입구에서는 "기자들 나가라"는 항의가 10분 간격으로 들렸다. 60대로 보이는 한 남성 주민이 사저 입구를 지키는 50여 명의 기자들을 향해 "여기서 취재하지 말라" "다 끝났잖아"라고 소리쳤다. 한 KBS 촬영기자가 "주민들 불편하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고 설득에 나섰으나 그는 "이 동네 차도 못 다닌다"며 말을 잘랐다.

이날 삼성동 주민들은 촬영·카메라 기자들의 장사진을 이룬 모습을 구경하러 속속 모습을 나타냈다. 박 전 대통령이 입주할 가능성이 희박했음에도 50여 명의 취재진이 사저 앞을 지키고 있었다. '지미집' 등 규모가 큰 촬영장비도 설치되는 등 사저 앞은 간이 스튜디오를 방불케 했다.

▲ 11일 오후 2시경,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사저에서 대기하던 취재진들이 진입을 시도하는 도배업자 차량을 보고 진열을 정비하고 있다.
▲ 11일 오후 2시경, 삼성동 박 전 대통령 사저에서 대기하던 취재진들이 진입을 시도하는 도배업자 차량을 보고 진열을 정비하고 있다.사진=손가영 기자
▲ 삼성동 사저 인근 취재진 대기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 삼성동 사저 인근 취재진 대기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기자들에게 불만을 표출한 주민 대부분은 탄핵 기각을 바란 지지자들이었다. 야구모자를 쓴 한 노년 남성은 "집앞에서 (이러다니), 정신이상자들이 아니냐"며 기자들을 노골적으로 비하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아무리 책임이 있지만 이게 뭐냐. 집 앞에서 난장판치고"라며 "젊은이들이 배가 부르지 기름기가 껴서 문제다. 고생을 안해서 그런데 한 번 살아봐라" 등이라 소리치며 30여 분 간 취재진 근처를 지켰다.

7년 전 삼성동으로 이사온 50대 중반 여성인 최아무개씨는 "'다수', '국민'이라는 말 쓰지말라. 침묵하는 다수 중엔 탄핵 기각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중요한 것도 아닌데 집앞에서 뭘 찍으려 하느냐.수준 떨어진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촛불은 인민, 태극기는 국민'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몸에 감고 지나다니는 주민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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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이 너무 잘 돼서 울컥했다"며 우호적으로 취재진을 지켜보던 주민들도 있었다. 대통령 사저에서 걸어서 30초 거리에 산다는 권아무개씨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 와봤다. 집에서 소음도 안 들리고 불편하지 않다"며 "탄핵도 탄핵이지만 부정한 돈을 다 뺐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인근에서 15년 동안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한 50대 중반 남성은 "탄핵 기각을 바랬다"면서도 "사업에 지장이 있고 불편하지만 내일까지는 다 봐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시민들은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지난 4년 동안 사저를 약 30회 항의방문했다는 배순님씨는 인천공항철도공사 사업 관련해 보상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억울함이 적힌 A4 3장의 문서를 들고 사저 정문 진입을 수차례 시도했다. 청와대 직원들에게라도 문서를 전달하고 싶다는 취지였다. 경찰병력은 그의 몸을 붙들고 진입을 막았다.

▲ 삼성동 사저 입구 전경
▲ 삼성동 사저 입구 전경. 사진=손가영 기자
▲ 삼성동 사저 측면. 사진=손가영 기자
▲ 삼성동 사저 측면. 사진=손가영 기자

멀리서 박 전 대통령을 보러 온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경북 상주에서 '사드배치 반대 운동'을 하고 있는 박아무개씨(51)는 "(박 전 대통령이) 여기서 무슨 짓을 하는지, 집이 얼마나 좋은지 보고싶어서 왔다"며 "얼른 구속시켜야 하지 않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들은 사저 입구 10여 미터 밖에서 허가받지 않은 이들의 통행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11일 오후 현장에서 보이는 경찰들만 28여 명에 달했다. 경찰 2~5명이 상시적으로 출입로를 경비했다. 사저 인근 골목에는 20~30미터 간격으로 경찰이 배치됐다.

카메라기자, '사저에 뭐가 들어오나' 노심초사 스탠바이

20여 명의 취재진들은 10여 미터 밖 경계선에 바짝 붙어 '스탠바이' 상태를 유지했다. 나머지 취재진 20여 명은 출입로 바로 맞은 편에 자리를 잡았다. 취재기자 10여 명은 포토라인을 가리지 않는 공간 곳곳에 자리를 잡고 사저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사저 후문 쪽에도 15여 명의 취재진이 대기 중이었다.

이들은 탄핵 인용이 결정된 지난 10일부터 사저를 방문하는 모든 차량 및 인물을 찍고 있다.

▲ 삼성동 사저 입구 앞에 자리를 잡은 취재진들 및 주민들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 삼성동 사저 입구 앞에 자리를 잡은 취재진들 및 주민들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 차량 문 뒤에 도배업자들의 발이 보인다. 경찰은 이마저도 찍지 못하게 가로막고 서 취재진들의 항의를 받았다. 사진=손가영 기자
▲ 차량 문 뒤에 도배업자들의 발이 보인다. 경찰은 이마저도 찍지 못하게 가로막고 서 취재진들의 항의를 받았다. 사진=손가영 기자

차량이 들어올 때마다 정보 노출을 막으려는 경찰과 촬영기자 간 실랑이가 벌어졌다. 11일 오후 1시50분 경 도배업자이 사저 입구에 진입했다. 경찰들은 도배업자들의 자재가 보이지 않게 의도적으로 막는 모습을 취했다.

도배업자는 차량 트렁크가 기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차를 재주차했다. 사진 기자들은 대문과 차량 사이 남은 공간이라도 찍기 위해 렌즈를 돌렸으나 일부 경찰들이 몸으로 가로 막고 섰다. 촬영기자들 사이에서 "왜 막아요. 나오세요" "이게 보안에 왜 필요합니까" "우리도 먹고 삽시다" 등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촬영기자들은 대형 이삿짐센터 차량이 드나들 때마다 "저거 뭐야"라 말하며 순식간에 렌즈를 집중시켰다.

이날 사저 부근에서는 KT 통신설비업자들의 통신케이블 등 설치 작업이 한창이었다. 오전에는 미술작품으로 보이는 캔버스가 차량으로 배달되기도 했다. 오후 2시50분 경엔 청와대 경호실 직원과 관계업자 두 명이 사저 외벽을 둘러보고 갔다.

박 전 대통령이 거처를 옮기기 위해 개인 물품을 사저로 옮기고 통신·인테리어·보안시설 등을 손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이르면 오는 12일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와 삼성동 사저로 들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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