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탄핵됐다. 신문들은 일제히 해당 소식을 1면에 다뤘다. 다만 1면 사진은 차이를 보였는데 한겨레와 한국일보는 촛불 집회 사진 등을 1면에 배치했고 조선일보는 유일하게 헌법재판소 사진을 1면에 배치했다. 조선일보 독자들을 염두에 둔 배치로 보인다. 

▲ 3월 11일 아침신문 1면 모음
▲ 3월 11일 아침신문 1면 모음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중대한 법 위반으로 판단
 
헌법재판소가 10일 전원일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 중 단 한가지만 직무 집행에 있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하나만으로도 대통령 파면을 정당화할만큼 중대한 법 위반이라고 본 것이다. 

헌재는 89쪽 분량의 결정문에서 5가지였던 탄핵소추 사유 중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을 제외하고 1)사인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 2)공무원 임면권 남용 3)언론의 자유 침해 4)생명권 보호 의무와 직책 성실수행 의무 위반 등 네개 가운데 첫 번째만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가 추천한 인사를 공직에 임명하고 이들이 최씨의 이권 추구를 돕는 역할을 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최씨 지인들의 회사 지원을 대기업에 요구한 사실도 확인했다.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삼성이 미르, 케이스포츠 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한 것에 대해 헌법의 어떤 조항을 위반했는지는 판단하지 않고 어떤 헌법 조항을 위반했는지만 따졌기 때문. 자칫 형사재판의 확정 판결이 헌재 결정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 경향신문 10면 기사
▲ 경향신문 10면 기사
“대리인단 막말, 전원일치에 영향 줬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헌재의 ‘8 대 0’ 전원일치 파면 결정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대리인단의 막무가내 변론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변론 막바지에 대리인단에 합류한 김평우 변호사 등의 ‘막말’이 대표적이다. 김 변호사 전까지만 해도 ‘막말’은 오가지 않았다. 

김 변호사는 15차 변론 때 등장해 재판부를 향해 “함부로 재판을 하느냐”며 언성을 높였고 16차 변론 때는 강일원 재판관을 향해 “소추위원(국회) 측 수석대리인”이라고도 했다. 그는 “재판관 8인으로 판결하면 찬성 쪽이든 반대쪽이든 하자를 끄집어내 재판 무효를 주장할 것이다. 내란 상태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 

경향신문은 김 변호사의 행동은 단순히 재판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차원을 넘어 혹여나 ‘기각’ 의견을 낼 수도 있는 재판관의 입지를 좁히는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법률적 판단 결과 기각 의견을 낸다 하더라도 김 변호사에게 동조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한국일보 5면 기사
▲ 한국일보 5면 기사
‘세월호 참사 불성실’ 기록으로 남겼다 

특히 세월호 관련 부분을 인정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가 탄핵심판의 판단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선언하자 대심판정은 술렁였다. 일반에 개방된 24개 방청석에 앉은 시민들은 미간을 잔뜩 지푸린 채 한숨을 쉬기도 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헌재 사정을 잘 아는 법조계 관계자는 "부족한 증거를 찾으려면 증인을 더 부르고 증거 제출도 요구하면 되지만 그러면 선고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확실한 파면 사유가 있기 때문에 신속한 심리에 중심을 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시 성실한 직책수행을 하지 않았다는 기록은 남게 됐다.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급박한 위험이 초래되어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대응이 지나치게 불성실했다. 또 그 심각성을 아주 뒤늦게 안 뒤에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명시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두 재판관은 “대통령의 불성실 때문에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되고 안전이 위협받아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되므로 피청구인(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 위반을 지적하는 것”이라며 보충의견 배경을 밝혔다. 
조선일보, 문재인 팽목항 행보에 “탄핵시켜줘 고맙다는 뜻인가” 비판 

▲ 조선일보 사설
▲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 문재인 팽목항 행보에 “탄핵시켜줘서 고맙다는 뜻인가” 

세월호 관련 헌재 결정에 대한 신문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헌재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국회의 탄핵소추 사실은 인정된다' 고 밝히면서도 탄핵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

반면 조선일보는 이를 이용해 야당을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세월호 희생자 발생과 대통령의 당일 직무 수행은 직접 연관이 없는 것으로 이미 밝혀져 있다. 다만 도덕적 논란이 있을 뿐”이라며 “야당이라고 해서 이것이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탄핵 결정 직후 팽목항을 찾은 것을 두고 “탄핵 결정 직후 우리 사회 갈등의 한 단면처럼 된 세월호 팽목항을 찾은 것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며 “그는 방명록에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광장의 별이었다'며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탄핵시켜줘 고맙다는 뜻인가”라고 날을 세웠다. 

▲ 중앙일보 3면 기사
▲ 중앙일보 3면 기사
“사형수에게 메시지까지 재촉하는 건 너무 가혹해”

박 전 대통령은 TV생중계를 통해 헌재 결정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헌재 선고 뒤 관저에서 한광옥 비서실장 등 참모들을 만났으나 “드릴 말씀이 없다”며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조원진 자유한국당 의원도 청와대를 찾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면담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에 앞서 한 실장은 수석비서관들과 회의를 열어 향후 대책과 대국민 메시지 등을 논의했지만 정작 박 전 대통령이 침묵을 지키면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한 참모는 중앙일보에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셈인데 사형수에게 메시지까지 재촉하는 건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의 이 같은 반응은 혹여나 했던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 쪽 내부에선 헌재 재판관 8명의 탄핵 인용·기각 전망을 5 대 3, 또는 4 대 4 정도로 점치며 탄핵 기각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참모들 사이에선 “헌재가 정치적 판결을 했다”며 성토가 이어졌다고 경향신문은 보도했다. 

▲ 한겨레 사설
▲ 한겨레 사설
신문들, 박 전 대통령 침묵에 일제히 비판

신문들은 이날 사설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의 침묵을 비판했다.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공직자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침묵이 박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려는 의도여서는 안 된다는 지적 역시 나왔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헌재 결정 직후 폭력 집회 등의 행태를 보였다.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박 전 대통령이 받았을 충격은 이해할 수 있지만 공인으로서 올바른 자세는 아니"라며 "검찰과 특검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어겼고 헌재의 최종 변론에도 참석하지 않았으며 장외에서 억울하다는 말만 반복해왔다. 박 전 대통령의 침묵은 국가의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박 전 대통령은 오히려 탄핵 반대 집회 불상사를 자신의 입지 강화에 활용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면서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꼼수를 쓴다고 법의 엄중한 심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동아일보도 사설에서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흥분한 지지자들에게 자제를 호소했으면 한다. 자신의 거취를 놓고 대한민국이 두 쪽 나고 끝내 사상자까지 발생한 것은 그도 바라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통령 변호인단이 헌재를 비난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지적했다. 

▲ 서울신문 11면 기사
▲ 서울신문 11면 기사
특검팀이 적시한 박 전 대통령 혐의만 13가지

탄핵이 인용됐지만 박 전 대통령은 아직 청와대에 머물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중아일보에 “삼성동 사저 상황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오늘은 이동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삼성동 사저를 4년간 비워놓았기 때문에 보일러 수리 공사 등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단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삼성동 사저에 복귀하더라도 대외 활동을 활발히 하긴 힘든 형편이다. 게다가 사법적 문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형사상 불소추 특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을 433억원대 뇌물수수 등 혐의의 피의자로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넘긴 10만쪽가량의 수사기록 검토를 마무리하고 이르면 내주 초반부터 박 전 대통령을 향한 본격 수사에 돌입할 계획이다.

검찰과 박영수 특검팀이 앞서 적시한 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13가지에 이른다. 특검팀은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61·구속 기소)씨와 함께 이재용(49·구속 기소)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433억원대 뇌물을 받고, 그 대가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경영권 승계를 도왔다고 봤다. 

또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블랙리스트) 관여 △2013년 승마협회 감사 담당한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 좌천 지시 △최씨 부탁으로 이상화 KEB하나은행 본부장 승진 개입 등 직권남용 및 강요 등의 혐의도 제기하고 있다고 서울신문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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