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파면 결정 난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생명권 보호의무’와 함께 인용되지 않은 아쉬운 사유는 ‘언론의 자유’ 부분이다.

지난해 12월9일 국회에서 통과된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크게는 5개 유형의 헌법 위배 행위와 4개 유형의 법률 위반 행위였다.

12월12일부터 탄핵소추에 대한 본격적인 심리 절차에 들어간 헌법재판소는 변론기일 절차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를 사실관계 중심으로 △사인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의무 등 위반의 4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이중 박 전 대통령의 언론의 자유 침해 부분과 관련해 국회 탄핵소추위원회(위원장 권성동)는 “언론의 자유는 ‘민주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기초’가 되며, 따라서 ‘특히 우월적인 지위’를 지닌다”며 “그런데 최순실 등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이를 통한 사익 추구를 통제해야 할 박 대통령 및 그 지휘·감독을 받는 대통령비서실 간부들은 오히려 최순실 등 비선실세의 전횡을 보도한 언론을 탄압하고, 언론사주에게 압력을 가해 신문사 사장을 퇴임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그 구체적 사유로 국회 측은 지난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청와대 비선실세 관련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보도했을 때 박 전 대통령이 압력을 행사해 세계일보 사장을 해임했다고 주장했다.

2014년 11월28일자 김영한 비망록을 공개한 TV조선 리포트 화면 갈무리.
2014년 11월28일자 김영한 비망록을 공개한 TV조선 리포트 화면 갈무리.
세계일보는 2014년 11월24일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정윤회씨가 정부 고위직 인사에 개입한다는 정보를 입수해 감찰 조사를 벌였다고 보도했고, 이어 28일에는 대통령비서실에서 작성된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문건 등 이른바 ‘정윤회 문건’을 공개했다.

이 문건은 2014년 1월6일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국정농단 주역인 최순실씨의 남편 정윤회씨가 대통령비서실 소속 공무원을 포함한 이른바 ‘십상시’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비롯, 청와대 내부 상황을 확인하고 의견을 제시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세계일보의 보도 이후 박 전 대통령은 2014년 12월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청와대 문건의 외부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이고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아닌 ‘문건 유출’ 쪽으로 수사 가이드라인을 내렸다.

이후 세계일보는 검찰의 압수수색 시도와 조사를 받아야 했고 세계일보 사주인 통일교 재단에 대한 세무조사도 시작됐다. 결국 2015년 1월31일 한학자 통일교 총재는 당시 조한규 세계일보 사장을 해임했다.

이에 대해 국회 탄핵소추위는 “청와대의 세계일보 보도 통제와 언론사 사장 해임은 최순실 등의 비선실세에 대한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다른 언론에도 위축 효과를 가져왔다”며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긴밀한 관계와 대통령의 발언을 고려하면 청와대의 세계일보 언론 탄압은 대통령의 지시 혹은 묵인하에서 벌어진 것이므로 박 대통령은 언론의 자유(헌법 제21조 제1항) 및 직업의 자유(헌법 제15조)의 침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디자인=이우림 기자.
하지만 헌재는 이날 결정문에서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문건 유출에 대한 비판 발언 등은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에 비판적 입장을 표명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국회 측은 청와대 고위관계자 중 누가 조한규 사장의 해임을 요구했는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며 “조 전 사장과 세계일보 조현일 기자도 조 전 사장의 해임에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다는 취지로 증언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압력을 행사하였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세계일보에 대한 사실조회 결과 조 전 사장이 세계일보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가 취하한 경위, 세계일보가 조 전 사장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경위 등에 비춰 볼 때 조 전 사장의 해임에 박 전 대통령이 관여했다고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탄핵소추 사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헌재는 국회 탄핵소추 사유 중 박 전 대통령의 언론 자유 침해 등 헌법 위배 행위 유형 3가지는 모두 인정하지 않았고, 법률 위배 행위가 상당 부분 포함된 비선실세 국정개입과 재단 설립을 통한 사익 추구 행위에 대해 엄중히 다스렸다.(▶헌재 “박근혜, 세월호 7시간 지나치게 무성의했다”)

한편 박근혜 정권에서 각종 부당해고·전보, 부당노동행위 등 가장 극심한 언론 자유 침해를 받은 공영방송 MBC의 노동조합도 이날 탄핵 결과에 대한 성명을 내고 “오늘 탄핵과 함께 박근혜 부역 체제의 산물인 MBC 경영진도 즉각 탄핵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위원장 김연국)는 “박근혜의 위헌·위법 행위를 은폐하고 옹호하는데 골몰한 당사자들은 그 역사적 책임을 달게 받아야 한다”며 “언론 적폐의 청산은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박근혜 부역 언론인들에 대한 단죄, 해직 언론인의 복귀, 공영방송 MBC의 재건을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지난 5년 MBC는 정권의 비리를 감시하기는커녕, 정권의 이익을 수호하는 친위대 역할을 했다”면서 “세월호 참사와 최순실 게이트 국면마다 사태의 본질을 왜곡·훼손하고 정권을 대변하는 잇따른 보도 참사로 시청자들에게 고통을 안겼다”고 비판했다.

이어 “MBC가 공영방송사로서, 언론사로서 최소한의 선이라도 지켰다면 오늘과 같은 국가적 불행은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언론 고유의 책무인 권력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됐더라면, 탄핵 절차에 소요된 사회적 비용도 그만큼 최소화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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