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은 ‘장악’됐고, 존재 자체가 특혜인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해 여론 불균형이 심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이어진 언론장악의 결과다.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자유한국당 정부가 무너지면서 늦었지만 정상화를 위한 기회가 만들어졌다.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다. 공전되고 있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언론장악 방지법)’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은 △정부여당 추천 이사 여야 비율 조정 △사장 선출시 3분의 2가 동의하는 특별다수제 도입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1년 동안 법안처리에 제동이 걸렸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자유한국당 소속 신상진 위원장이 “간사 간 협의가 되지 않았다”며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핵이 인용되고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5월 대선에 따른 정부조직개편이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 정권교체가 이뤄져 미래창조과학부 해체 및 미디어 부처가 통합되면 미디어 관련 상임위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신문) 개편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문화, 콘텐츠, 방송 분야 상임위를 합치고 과학기술을 다른 상임위로 분리하는 안이 유력하다”면서 “정부조직이 개편되면 당연히 상임위도 개편돼야 하고, 이 과정에서 상임위원장을 교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편 과정에서 국민의당이 상임위원장인 교문위에 흡수되거나 새로운 상임위가 신설되면 상임위원장 교체가 가능하다.

▲ 지난달 20일 오전 미방위 소속 야당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 홀에서 언론장악방지법 처리와 신상진 위원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농성에 돌입한 바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달 20일 오전 미방위 소속 야당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 홀에서 언론장악방지법 처리와 신상진 위원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농성에 돌입한 바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유력 대선후보들이 언론장악 방지법의 골자를 공약에 담을 필요성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선이 있는 5월까지 국회에서 의사일정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워 국회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후보자 차원에서 이슈를 만들어 추진하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탄핵 인용으로 자유한국당의 집권이 희박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실타래가 풀릴 수도 있다. 정권교체를 전제하면 지배구조 개선법안 3개의 골자 중 ‘특별다수제’와 ‘이사 구성 조정’은 자유한국당에 유리하다. 자유한국당이 ‘노사동수 편성위원회’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지만 편성위 설치를 법안에서 제외하거나 조건을 완화하는 선에서 여야가 합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김장겸 사장 선임과 대대적인 보도국 물갈이로 가장 완벽하게 ‘장악’된 MBC는 정상화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MBC는 탄핵 선고가 이뤄진 10일에도 이근행, 한학수 PD 등 이미 현업에서 배제된 구성원들에 대한 전보조치를 단행했다. 

그러나 김장겸 체제의 MBC라 하더라도 차기정부 방통위에서 12월 재허가 심사를 받아야 하는 점은 변함 없다. 이는 고대영 체제의 KBS 역시 마찬가지다.

▲ 2012년 MBC 파업 당시 김재철 MBC 사장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 2012년 MBC 파업 당시 김재철 MBC 사장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야당은 벌써부터 형식적인 심사는 더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지난 7일 지상파방송 재허가 기본계획 의결 당시 “공영방송이라고 해서 무조건 재허가를 해줘야 하는가”라며 “공영방송은 제대로 역할을 할 때 존재이유가 있다.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허가) 재검토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이 교체되면 그동안 방통위 야당 추천 위원들이 재승인 및 재허가 조건으로 요구했으나 묵살되거나 강제력 없는 ‘권고’에 그친 사안들이 ‘재승인 조건’이 될 수 있다. 3기 방통위에서 ‘노사관계 정상화’가 MBC 재허가 때 ‘권고’됐으며, YTN 재승인 때는 노종면 앵커를 비롯한 해직 언론인을 복직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또한, 야당 위원들이 요구했으나 방통위원장이 묵살해온 ‘이정현 녹취록’ ‘백종문 녹취록’조사도 할 수 있다.

해직자 복직 문제는 관련 법안 통과 여부나 재승인 조건과 관계없이 공영방송 사장이 교체되는 것만으로도 개선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권이 만든 ‘종편’을 정상화하는 작업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야당 입장에서는 언론장악 논란 등을 고려해 종편의 문을 닫게 하기 보다는 편향적인 보도 문제를 개선하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신경민 의원은 지난달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한번 만들어진 기관은 없애기 힘들다. 원칙은 지금과 같은 비정상적인 편성이 아닌 종편 설립 취지에 맞게 바꾸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 방통위가 종편 전체를 ‘재승인’ 하더라도 ‘오보·막말·편파방송’에 대한 조건을 까다롭게 부과할 것으로 알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재승인 이전과 이후 종편이 확연하게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재승인 심사는 차기정부 방통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전처럼 형식적인 심사는 반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종합편성채널의 특혜 환수도 추진돼야 한다. 종합편성채널은 △10번대 황금채널 배정 △유료방송 플랫폼을 통한 의무송신 △사실상 광고직접영업 허용 등의 특혜를 받고 빠르게 성장했다.

올해 종편4사가 흑자전환이 된 만큼 특혜 환수의 명분이 갖춰졌다. 지난해 미디어오늘 설문 결과 미방위 야3당 의원 14명 중 10명이 1사1미디어렙(지상파처럼 여러 방송사가 하나의 광고대행사를 통해 영업하는 게 아닌, 종편 사업자마다 광고대행사를 두게 한 제도) 특혜 환수를 요구한 바 있다. 

▲ 방송시장이 불황이었음에도 종합편성채널은 특혜를 통해 빠르게 성장했다. MBN의 경우 종편 개국 이전 보도채널 때 매출이 반영됐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방송시장이 불황이었음에도 종합편성채널은 특혜를 통해 빠르게 성장했다. MBN의 경우 종편 개국 이전 보도채널 때 매출이 반영됐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이처럼 언론 정상화를 위한 정치적인 조건은 개선될 수밖에 없는데 관건은 '의지'다. 민주당, 국민의당 등 야당이 과거 반복해온 “야당이라서, 힘이 없어서 관철하지 못했다”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0일 성명을 내고 “새 정부는 언론도 공범이라는 광장의 외침을 새겨듣고 언론장악 부역자, 언론적폐 청산 등 대대적인 언론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언련은 “박근혜 탄핵 배경에는 언론을 졸개 부리듯해온 끊임없는 언론장악 시도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지만 야당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집권 후 변심해 정상화 과제를 외면하거나 방통위와 공영방송 사장, 이사회 등을 통해 정부여당에 유리한 언론환경을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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