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렸다. 헌정사상 대통령이 파면을 당한 건 처음이다. 이번 결정은 헌법학적으로는 물론이고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 헌법학자들은 헌법정신에 따라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이 제한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역사적으로는 박정희 신드롬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다. 

시민들의 반응도 주목할만하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서 시련을 겪어야 했던 세월호 유가족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울먹일 정도로 감격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시민들의 새로운 사회를 향한 요구들이 분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민주적 절차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가 한국 사회의 향후 과제가 될 전망이다. 

▲ 지난 2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주재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기일이 열리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지난 2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주재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기일이 열리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헌법을 위반하면 대통령이라도 파면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헌법학자들은 무소불위의 권위를 휘두른 대통령에 대해 헌법 정신에 따라 그 권한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했다. 또한 이번 결정이 향후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권위주의적 대통령을 막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법치주의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헌법학자인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결정은 헌법을 위반하면 대통령이라도 파면된다는 것을 보여주며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헌법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라며 “대통령 권위의 남용을 향후에도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명확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 결정은 일종의 '가이드 라인'으로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의 비리와 권한남용, 정경유착, 세월호 참사 때 직무유기,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청탁 등을 헌재가 헌법적 판단을 내리고 향후에도 그런 행위를 하지 말라는 선을 그어준 의미”라고 말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이번 인용결정은) 대통령 행위의 직접적 기준이 된다. 미래의 대통령들이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지 않으려고 신중해질 것”이라며 "권위주의적 대통령제는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임지봉 교수는 “직접 민주주의가 보다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향후 개헌 논의가 이뤄지게 되면 국민이 고위직 공무원을 임기 전에 소환해서 파면할 수 있는 소환제나 직접 국민이 헌법개정안을 낼 수 있는 발안제 등이 헌법에 도입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박정희 전 대통령 취임 우표.
▲ 박정희 전 대통령 취임 우표.

“박근혜가 박정희 신드롬을 묻었다”

 역사적으로는 '새로운 시대' 가 열린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21세기는 더 이상 냉전보수와 개발독재 체제로 지탱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결론”이라고 말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도 “한국전쟁 이후 시작된 긴 장이 끝나고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말했다. 


먼저 민주주의의 진화다. 한홍구 교수는 “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촛불집회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김동춘 교수 역시 “87년 민주헌법이나 대통령 직선제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하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4.19와 6월 항쟁에는 큰 희생이 있었다. 이번에는 희생없이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다. 명예혁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게다가 6월 항쟁의 성과로 탄생한 헌재에서 이런 결정이 나온 것은 6월 항쟁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인용 결정이 박정희 신드롬을 끝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홍구 교수는 “박정희 신드롬을 박근혜에 대한 환멸과 함께 묻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중석 전 성균관대 교수는 “민주주의로, 인권으로, 남북평화로 나아가는데 박정희 신드롬은 커다란 장애물”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박정희 신드롬의 종말로 보수세력도 변했다. 김정인 교수는 “박정희 체제의 종말은 보수세력이 재편되는 계기가 됐다”면서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이 이제 반대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 유민아빠 김영오씨. 사진=김도연 기자
▲ 유민아빠 김영오씨. 사진=김도연 기자
유민아빠 “유민이 안고 방방 뛰고 싶어”

시민들은 인용 결정을 통해 역사의 한 단락이 마무리 됐다며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범국민행동에서 노동문제를 주로 알려온 오진호 비정규직없는세상 집행위원은 “130일 가까이 고생한 것이 의미있게 마무리 됐다는 점에서 기쁘다”면서 “남은 과제가 있지만 일단은 속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2차 범국민행동을 시작으로 촛불집회에 꾸준히 참가한 이승선(37)씨는 “탄핵 심판은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권력의 비리를 정화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것”이라며 “인용은 상식이다. 기각됐다면 진지하게 이민을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부에서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탄핵 인용 결정은 더 큰 의미로 다가갔다. 세월호 유가족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정말로 감격스럽다”면서 “제일 먼저 유민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유민이를 안고 방방 뛰고 싶은 심정”이라고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김영오씨는 “지난 3년 동안 너무 힘들게 싸워왔는데 그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다”면서 “박 대통령은 2014년 5월19일 세월호 유가족이 원하는 걸 모든 걸 들어줄 것처럼 했지만 2014년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돌아서버렸다. 가족들이 느낀 배신감은 말로 못한다”고 말했다. 

▲ 2016년 12월3일 열린 제6차 범국민행동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묘사한 인형을 끌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2016년 12월3일 열린 제6차 범국민행동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묘사한 인형을 끌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19살 실습생 자살, 정말 박근혜 이후는 달라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탄핵 인용 결정이 민주주의의 완성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한홍구 교수는 “20세기 내내 만들어진 적폐들이 엄청나게 쌓여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남은 과제”라며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더 좋은 찬스를 날려버린 적도 있다. 해방 후 친일파를 청산 못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한홍구 교수는 “탄핵이 인용돼야 한다는 시민들 중 절반은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가야 할 길이 멀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쉽게 실망하지 말고 쉽게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촛불의 승리이면서도 촛불이 좀 더 밝게 타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오진호 집행위원은 최근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19살 특성화고 학생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두고 “박근혜 이전과 이후가 달라야 한다고 모두가 말한다. 그럼에도 탄핵 인용을 코 앞에 두고 비극이 벌어졌다”며 “이게 정말 달라진 것인지, 마냥 촛불의 승리인것인지 의문이 든다. 많은 시사점을 남긴 사건”이라고 말했다 

김정인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친 국민들의 요구가 1차적으로 수용됐기 때문에 향후 변화를 요구하는 더 많은 목소리들이 분출할 것으로 예측했다. 김정인 교수는 “성과를 이룬 다음에는 성과를 이룬 주체들이 강하게 요구하기 마련”이라며 “특히 차별이나 개인의 자유 등에 관한 요구들이 폭발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과제들을 대선에서 어떻게 받아안을지도 중요한 과제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헌법 정신에 따라 촛불을 든 만큼, 향후 펼쳐질 대선 국면에서도 누가 더 헌법 정신을 온전히 담은 정책을 내걸지를 두고 정치권에서 경쟁이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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