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죽어가는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부모들이 자식을 팔아 유세를 떠는 장사꾼으로 매도됐던 시간들, 물대포에 쓰러져 죽은 아버지 앞에서 자식들이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했던 날들, 죽기 전 오직 바랐던 것은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였던 분들께 몇 푼의 돈으로 끝내자며 합의서를 내밀던 순간들, 어떤 대화도 없이 군사무기를 배치한다는 통보에 항의한 농민들에게 폭도의 딱지를 붙였던 날들, 예술인들의 자유와 생존권을 박탈할 명단이 몇 장의 종이에 휘갈겨지던 시간들, 열아홉 청년이 사발면과 젓가락을 가방에 넣고 일하다 전철에 치여 죽을 때, 재벌들은 대통령에게 몇백 억의 뇌물을 약속하던 나날들. 그리고 이런 날들의 진실을 밝혀야 할 언론인들이 해고되고 징계받아야 했던 침묵의 시간들. 모두가 병들었으나 아무도 아프다고 하지 않던 지난 시간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을 앞둔 9일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 그리고 언론의 자유가 탄핵 결정을 앞둔 헌법재판소의 가장 중요한 일성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박근혜 정권에서 일어난 참담한 일들을 회고했다.

언론노조는 이날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는 성명을 통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던 시간 동안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가. 헌법에서 정한 선거로 위임받은 권력의 집행을 최순실과 그 가족들에게 맡겼고, 노동자의 피땀으로 번 돈으로 재벌과 흥정했다”며 “국민의 생명을 왜 지키지 못했는지 묻는 언론에는 사장과 이사를 갈아치우며 침묵과 복종을 강요했다”고 지적했다.

▲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구속 만세! 탄핵인용 만세! 박근혜 퇴진 18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이 ‘박근혜 구속’ 피켓과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구속 만세! 탄핵인용 만세! 박근혜 퇴진 18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이 ‘박근혜 구속’ 피켓과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언론노조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유는 이미 차고도 넘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은 박근혜 개인의 대통령 자격만을 묻는 것이 아니다”며 “인용 결정은 광장에서 쏟아진 분노와 희망이 동면에서 깨어나 새로운 봄길에 나설 때임을 알리는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언론노조는 이어 지난해 연말 경남 창원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24살 전기공이 했던 발언은 상기했다.

“여러분께 정말 꼭 한번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나왔습니다. 박근혜가 퇴진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 슬픔 같은 건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저는 이대로 20년, 30년 더 살라고 하면 못 살겠습니다.”

언론노조는 “헌재의 결정은 한국 현대사의 한 획을 남길 중요한 순간이다. 그럼에도 스물넷 청년에게는 단 하나의 의미로만 기억될 것”이라며 “내일 오전 11시가 한 청년에게 도저히 살 수 없던 이 땅이 ‘그래도 살 만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시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이날 전국언론노조가 낸 성명 전문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90일의 시간이 흘렀다. 3만 2,000쪽의 수사기록이 검토되었고 25명을 신문했으며 17차례의 변론기일을 거쳤던 시간이 내일 오전 11시에 마감될 것이다.

2017년 3월 10일 11시를 만들기 위해 작년 10월 29일부터 지금까지 전국 도처의 광장에는 1,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늦가을에서 엄동설한을 지나 봄의 문턱에 이를 동안 광장에는 탄식과 분노가, 환희와 좌절이, 기대와 절망이 교차했다. 매주 수 십 만의 사람들이 곱은 손으로 촛불을 지키며 회한의 칼바람을 맞아 왔다.

자식이 죽어가는 순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부모들이 자식을 팔아 유세를 떠는 장사꾼으로 매도됐던 시간들, 물대포에 쓰러져 죽은 아버지 앞에서 자식들이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했던 날들, 죽기 전 오직 바랐던 것은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였던 분들께 몇 푼의 돈으로 끝내자며 합의서를 내밀던 순간들, 어떤 대화도 없이 군사무기를 배치한다는 통보에 항의한 농민들에게 폭도의 딱지를 붙였던 날들, 예술인들의 자유와 생존권을 박탈할 명단이 몇 장의 종이에 휘갈겨지던 시간들, 열 아홉 청년이 사발면과 젓가락을 가방에 넣고 일하다 전철에 치어 죽을 때, 재벌들은 대통령에게 몇 백 억의 뇌물을 약속하던 나날들. 그리고 이런 날들의 진실을 밝혀야 할 언론인들이 해고되고 징계받아야 했던 침묵의 시간들. 모두가 병 들었으나 아무도 아프다고 하지 않던 지난 시간이 섬뜩하게 다가왔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던 시간 동안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가. 헌법에서 정한 선거로 위임받은 권력의 집행을 최순실과 그 가족들에게 맡겼고, 노동자의 피땀으로 번 돈으로 재벌과 흥정을 했다. 국민의 생명을 왜 지키지 못했는지 묻는 언론에게는 사장과 이사를 갈아치우며 침묵과 복종을 강요했다. 대통령의 주변 어디에도 직언은 없었다. 오직 대통령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최순실을 숨기려는 비서들만이 청와대를 지키고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을 앞둔 지금, 대통령 탄핵 여부를 두고 국론이 분열되었다고 한다. 슬픔과 고통의 시간을 버텨온 사람들의 몸짓과 목소리를, 어떻게 죽음과 폭력만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독선과 아집에 비교할 수 있는가. 헌법재판소에 정의의 저울이 있다면 결코 올려 놓을 수 없는 무게추이다. 믿을 수 없었던 진실이 드러난 후 네 달이 지났지만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개혁입법이라 불렀던 과제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에 갇힌 국회에서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와 사드 배치는 돌이키기 힘든 외교적 난제로 묶여 있고, 성과연봉제 반대 파업에 참가했던 철도 노동자들에게는 해고와 징계의 후폭풍이 불고 있다.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강행 의지 또한 달라지지 않았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정치적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통령 선거 전 반드시 통과되어야 했던 언론장악방지법 또한 한 발짝의 진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내일 11시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은 그래서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유는 이미 차고도 넘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은 박근혜 개인의 대통령 자격만을 묻는 것이 아니다. 인용 결정은 광장에서 쏟아진 분노와 희망이 동면에서 깨어나 새로운 봄길에 나설 때임을 알리는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은 작년 추운 겨울 경남 창원의 촛불 집회에서 스물 넷의 청년 전기공이 던진 질문에 답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께 정말 꼭 한 번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나왔습니다. 박근혜가 퇴진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 슬픔 같은 건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저는 이대로 20년, 30년 더 살라고 하면 못 살겠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한국 현대사의 한 획을 남길 중요한 순간이다. 그럼에도 스물 넷 청년에게는 단 하나의 의미로만 기억될 것이다. 내일 오전 11시가 한 청년에게 도저히 살 수 없던 이 땅이 ‘그래도 살 만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시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살 만한 나라를 만들 희망의 실현에 함께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 그리고 언론의 자유가 탄핵 결정을 앞둔 헌법재판소의 가장 중요한 일성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7년 3월 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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