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대선후보들이 모였다. 이들은 일제히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고 육아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늘리며 여성정치인 비중을 확대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한 발 더 나가는 건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이재명 성남시장은 8일 오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제33회 한국여성대회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에 참석해 각자 성평등 정책을 밝혔다.

후보들이 밝힌 정책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먼저 육아다. 문 전 대표는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텐투포’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임금은 그대로 유지하되 근로시간을 줄여 국가와 사회가 육아 부담을 나누겠다는 것이다.

심 대표는 ‘슈퍼우먼 방지법’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심 대표는 “‘슈퍼우먼’은 사회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여성에게 독박씌우는 말”이라며 “맞벌이 시대는 진작 왔는데 맞돌봄 시대는 아직”이라며 출산휴가 아빠 1개월 의무제, 육아휴직 아빠 쿼터제 등을 내놨다.

▲ 8일 오전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기념 33회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한 대선 주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8일 오전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기념 33회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한 대선 주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성별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정책도 일제히 나왔다. 안 전 공동대표는 “임금 투명성 확보가 먼저”라며 성평등임금공시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36.6%로 OECD 회원 국가 중 1위다.

정치인과 공공기관 등에 여성의 비중을 늘리겠다는 정책 역시 동일했다. 이 시장은 “청와대와 내각부터 성평등을 실현하겠다”며 “초기에는 30%에서 시작해서 임기 안에 양성평등의 내각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안 전 공동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날 대회 참가자들이 서울고용노동청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날 대회 참가자들이 서울고용노동청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따라서 이 날 발표된 정책만으로는 어떤 후보가 더 ‘평등’을 지향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이날 후보자들의 차별성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차별금지법 도입에 관한 입장이었다. 현장에서 차별금지법을 도입하겠다고 한 후보는 이 시장, 심 대표였다.

이 시장은 “‘양성평등’이라는 말은 틀렸다. 양성에 속하지 않는 성들도 있다”면서 “차별금지법을 반드시 제정하겠다”고 말했다. 심 대표가 민주“차별금지법을 (민주당) 당론으로 해달라”고 하자 이 시장이 문 전 대표를 보며 “저기에다 말씀하셔야…”라는 상황은 웃음을 자아냈다.

기독교 등의 반발로 차별금지법이 마치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법’ 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해당 법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것을 규정한다.

이날 벌어진 돌발상황을 통해서도 후보들간 인식차를 엿볼 수 있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후보들 앞으로 나온 것. 페미니즘은 비단 ‘성평등’이 아니라 여성을 비롯한 모든 소수자와 연대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안 전 공동대표는 “5년 전부터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했고 보건복지위에 있을 당시 상임위를 통해서도 주장했다”며 이를 약속했다. 심 대표 역시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가 폐지돼 1600일 가까운 농성이 끝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문 전 대표는 부양의무제 및 장애등급제 폐지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저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는데 제 마음이나 의지가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부족한 점이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문 전 대표 측은 행사 이후 차별금지법 도입 등을 포함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개별 질문은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성평등 감수성은 높아졌다. 대선후보들이 임금격차를 줄이겠다거나 여성 정치인 비율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은 그다지 새롭거나 혁신적이지 않다. 유권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장애등급제 폐지를 계속해서 묻는 이유다. 이제 후보들도 한 발 나아갈 때가 됐다.

▲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날 대회 참가자들이 서울고용노동청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남녀 임금차별 현황을  보여주는 100:64 선전물을 머리에 쓴 참가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날 대회 참가자들이 서울고용노동청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남녀 임금차별 현황을 보여주는 100:64 선전물을 머리에 쓴 참가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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