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후 대한민국의 시계는 멈췄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초부터 연설 첨삭지도를 즐겨했다는 최순실씨의 믿기 힘든 일련의 부패 행각들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감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영국 BBC는 대한민국 국정 전반에 걸쳐 일어난 최순실 게이트를 ‘셰익스피어 희곡의 소재감’이라고 비유했고, 실제로 일본에서는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세계의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참담한 ‘순실의 시대’를 마주한 우리 국민의 위대한 대응 방식이었다. 지난 4일 있었던 19차 촛불집회까지 누적 인원 1500만 명의 국민이 참여했다. 촛불은 광장의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결코 꺼지지 않았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 19차 집회까지 모든 날이 좋았다. 시민들은 국정농단의 민낯에 분노했지만 차분했고, 청문회 증인들이 벌인 거짓말의 향연 앞에서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주요 외신들도 전 세대를 아우르는 참여 속에 축제처럼 평화롭게 진행된 촛불집회의 풍경에 ‘Great’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질곡을 통과하며, 비폭력 평화 집회의 위대함을 체험했다. 예컨대,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의 것으로만 생각했던 비폭력 저항운동의 위대함을 우리의 것으로 소화해 낸 것이다.

하지만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일이 가까워질수록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 우려의 지점은 바로 탄핵 반대를 외치는 친박 단체들의 비이성적이며 폭력적인 행태이다. 친박 집회 참가자들에게 돈을 지급했다거나 참가자 숫자를 부풀리는 것은 이제 애교 수준이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국민통합의 장이 되었던 시민들의 광장이 대통령 대리인단의 여론전의 도구가 되거나 탄핵심판 불복을 폭력적으로 선동하는 자리로 변질되고 있는 모습들이다. 일례로, 재판정에서 치열한 법리 다툼을 해야 할 대통령의 변호사들이 광장에 나와 태극기를 두르고 친박 단체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헌재를 부정하며 사법부를 위협하는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급기야 친박 탄핵반대집회 참가자들은 CBS 등 주요 언론의 취재기자들에게 폭력까지 행사했다. 자신의 입장에 따라 대통령 탄핵을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생각에 대해 물리적인 폭력이 행사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심지어 지난 6일 오전 박사모 인터넷 카페에는 ‘만약 탄핵이 인용되면 각자가 혁명주체세력이 되라’는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더불어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과 박영수 특검이 공공연히 살해나 방망이 폭력 등 ‘백색테러’ 위협에 시달리는 작금의 현실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국민의 탄핵에 대한 실제 민심은 무엇인가? 작년 말 탄핵소추안이 통과될 즈음 박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5%, 탄핵 찬성 여론은 78%였다. 그리고 이 국민의 뜻은 국회의원 78%의 탄핵소추안 찬성 표결로 거짓말처럼 정확히 반영되었다. 그 후 2016년 12월, 2017년 1월, 2월, 3월 초까지 탄핵 찬성 여론은 각종 조사에서 일관되게 80%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엄동설한을 지나 벚꽃 대선을 바라보는 현시점에도 우리 주권자들의 생각은 결코 변하지 않은 것이다.

▲ 박재홍 CBS 아나운서
▲ 박재홍 CBS 아나운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임혁백 교수는 탄핵소추까지 이어진 촛불집회를 ‘제3의 민주혁명’이라 칭했다. 더불어 탄핵심판은 ‘정치적인 판단’이며 국민의 뜻은 이미 명확하기 때문에 헌재는 그 뜻을 인용하는 일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김영란 전 대법관도 올해 초 언론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 탄핵심판은 결국 대다수 국민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 위대한 주권자들의 뜻은 명백하다. 이제 촛불과 태극기의 갈등 구도를 넘어서 차분히 국민의 뜻을 담아낼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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