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가 삼성전자에 입사한 건 고등학교 3학년 가을, 입사 2년도 채 안 돼서 백혈병에 걸렸고 1년여의 투병 끝에 숨졌을 때 나이는 겨우 스물셋이었다. 황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퐁당퐁당’ 작업을 했다. 플루오르화수소 용액에 웨이퍼를 담갔다 빼는 세척작업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냄새만 맡아도 불임이 된다는 독성 물질이었지만 이 공장에서는 일상적인 작업이었다.
삼성의 해명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쓰는 화학물질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거나 반도체 생산 라인에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고 3자 중재기구는 삼성이 제안한 게 아니라 반올림이 제안한 것이고 사망자 79명이라는 반올림의 주장 역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황씨에게 준 돈이 500만원이 아니라 몇 차례에 걸쳐 치료비와 위로금을 지급했다고 해명했으나 금액을 밝히지는 않았다.
삼성의 해명은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황상기씨가 화학물질 수천 종을 안 가르쳐주고 있다고 말한 건 황유미씨 등이 어떤 작업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를 공개하라는 의미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에 실린 설비 엔지니어 이성현씨의 증언에 따르면 가스가 새도 모르고 일하는 경우도 많았고 어디에서 새는지 엔지니어들이 직접 냄새를 맡으면서 찾아야 했다고 한다. “가스 마셨으니까 오늘은 삼겹살이나 굽자”고 농담을 하곤 했다고 한다.
신송희씨는 웨이퍼 박스의 뚜껑을 열면 참을 수 없는 악취가 났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비닐봉지에 구토를 하기도 했고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라인에 쏟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온양공장에서 일했던 박지연씨의 증언에 따르면 실수로 장비를 끄지 않은 상태에서 뚜껑을 열거나 다른 사람이 장비를 끄지 않은 걸 모르고 자재를 넣거나 빼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신씨는 유방암에 걸렸고 박씨는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
조정위원회의 조정 권고안을 대부분 수용했다는 게 삼성의 주장이지만 진실은 삼성이 조정위의 조정 절차와 별개로 보상위원회를 구성하고 보상 기준을 임의로 정하겠다고 나서면서 협상이 결렬됐다는 것이다. 반올림 활동가인 임자운 변호사에 따르면 “조정 권고안을 수용한 게 아니라 조정 절차를 깨버린 것이고 그러면서도 조정 권고안을 수용했다는 말을 반복했고 언론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으며 반올림의 노숙 농성은 그래서 시작됐다.”
“반올림이 농성을 하는데 그 사람들은 유가족도 아니다. 전문 시위꾼처럼 귀족 노조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한다. 그런 건 용서가 안 된다.” 삼성전자 전무 출신의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의 ‘막말’은 삼성 임원들의 인식 수준을 드러낸다. 삼성은 계속해서 반올림과 피해자 가족들을 갈라놓으려 했고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반올림이 요구하는 건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다. 아직 그 어느 것도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MBC 앵커 출신으로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을 맡고 있는 이인용 사장이 교섭을 총괄했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임자운 변호사의 표현에 따르면 “삼성은 이 문제가 잘 해결되고 있는 것처럼 ‘알려지길’ 바라며 적극적인 언론 플레이에 나섰다”. “삼성의 커뮤니케이션팀은 언론 플레이팀이었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삼성은 여전히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이것이 언론이 말하지 않는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