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놓고~ 저질러놓고~ 저질러~ 저질. 저질. 돈만 아는 저질.”
‘집회 좀 다녔다’는 사람 치고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래를 모른다고 해도 한번쯤 노란색이나 분홍색으로 된 위아래 정장을 입고 빠른 비트에 춤을 추는 사람은 봤을 것이다.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돈만 아는 저질’은 재개발 현장에서, 강제집행 현장에서, 부당해고 현장에서, 촛불집회에서도 울려 퍼졌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한받’은 자신을 ‘민중 엔터테이너’라고 소개한다.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집회 현장을 다닌지도 7년이 넘었다. 홍대에서 인디음악을 하던 그는 2010년 홍대 칼국수집 ‘두리반’ 투쟁 이후 각종 사회현안을 다루는 집회 현장을 누볐다. ‘상록수’나 ‘바위처럼’만 나왔던 집회현장에서 빠른 비트의 전자음악이나 인디음악들이 나왔던 때도 그 이후였다.

그는 집회 현장마다 그 현장을 위한 노래를 만든다고 한다. 재개발 관련 이슈 현장에서는 그의 ‘돈만 아는 저질’이, 상암동에 들어오려는 롯데복합쇼핑몰을 반대하는 현장에서는 ‘롯데 비상사태’라는 노래가, 동광기연의 부당해고 집회 현장에서는 ‘전원 해고 통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식이다. 인터뷰가 진행된 6일 오전에도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동광그룹의 자회사인 동광기연으로 가 연대공연을 한다고 했다.

“인천의 동광기연에서 설 직전에 노동자들에게 문자로 해고 통보를 했다. 그 중에서는 30년도 넘게 일하신 분도 있었다. 오래 일하신 분들이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그런 사건을 듣고 공연을 하게 됐다. 오늘 부를 노래는 '전원해고 통보'라는 노래다. 가사는 ‘전원 해고 통보, 보통의 존재, 통보, 고통’ 이런 식이다. 해고통보의 가운데 글자 두 개가 고통이니까, 이를 사용해서 언어유희를 해봤다.”

그가 이렇게 만든 노래들이 100곡이 넘는다고 한다. 많은 곡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을 물으니 ‘나쁘자나 송’이라고 한다. ‘나쁘자나 송’은 장애인들의 삶을 짓누르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는 내용이 담긴 노래다. 가사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나쁘자나’가 반복된다. 2013년 12월4일 세계장애인의날 투쟁대회에서는 휄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세종대왕상으로 올라가 플랜카드를 펼치는 퍼포먼스를 하려하면서 경찰과 충돌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그날 현장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은 굉장히 극적인 날이었다. 휄체어를 타신 분들이 세종대왕상으로 올라가려하니, 경찰들이 막았고 충돌이 일어났다. 경찰과 집회참가자들의 충돌 속에서 노래를 했다. 정말 어려운상황이었지만 집회에 참가한 장애인 한 분이 내 손을 잡으면서 ‘힘이 난다’고, ‘계속 노래해 달라’고 말씀 해주셨다. 그래서 정말 힘이 났고 계속 노래를 할 수 있었다. 대치하는 상황에서 노래를 한 적은 이날이 거의 유일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두물머리 유기농지 보존을 위해 청계천광장을 수많은 사람들과 행진하며 춤추면서 노래한 "두물머리 공사말고 농사짓자!"도 잊을 수 없는 노래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노동당이 마련한 트럭을 타고 춤을 추면서 집회현장을 누볐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 두물머리 유기농지 보존을 위해 청계천 광장에서 "두물머리 공사말고 농사짓자!"노래를 하는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모습.
▲ 두물머리 유기농지 보존을 위해 청계천 광장에서 "두물머리 공사말고 농사짓자!"노래를 하는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모습. 사진제공=야마가타 트윅스터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노래는 비트가 빠르고 언어유희가 가득한 가사로 장난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반면 집회현장의 분위기는 보통 무겁고 때로는 엄숙하다. 이런 자리에서 튀는 색상의 옷을 위아래로 입고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이 어색하고 이상하게 생각될 때도 있다. 지난해 광화문에서 설악산 케이블카를 반대하며 ‘돈만 아는 저질’을 불렀을 때, 그는 맨 앞에 앉은 백기완 선생 앞에서 ‘You(너) 저질’이라며 엉덩이를 앞뒤로 흔드는 춤을 췄다. ‘저래도 괜찮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 역시 “처음에는 현장에 계시던 분들이 적응하기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사회적 분위기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까지도 노동 투쟁 현장에 가면 분위기가 암울하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저 혼자 ‘지랄발광’하는 것 같은 퍼포먼스를 많이 펼친다. 처음에는 투쟁 현장에 계신 분들이 ‘이게 뭔가’하고, 당황하셨다. 그래도 차츰차츰 즐기는 분위기로 갔다. 요즈음은 확실히 변화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투쟁도 재미있고 즐겁게 할 수 있다.”

집회현장에서 가장 튀는 그지만 투쟁 현장에서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 투쟁현장은 업체의 특성상 여성 노동자들이 많았다. 다른 집회와 비슷한 춤을 췄지만, ‘저질스런 퍼포먼스는 안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그 이야기를 접수해서 투쟁 주체의 요구에 맞게 레퍼토리를 다르게 짠다. 어디까지 투쟁의 주체는 그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분들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집회현장은 음악을 하는 무대와 다르게 열악한 환경일 수밖에 없다. 음악을 만들고 들려주는 것이 본업이기에 이런 환경이 아쉽지 않을 리 없다. 야마가타 트윅스터 역시 “음악 하는 입장에서 좋은 조건은 아니고, 현장을 위해 쓴 가사조차 잘 안 들릴 때가 많아 아쉽다”고 언급했다. 집회공연을 하며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다.

“더 많은 음악가들이 적극적으로 현장에 와서 같이 연대해줬으면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현장의 어려운 부분들이 있고, 음악가 입장에서는 ‘이용당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행사를 위해 쓰인다는 느낌이랄까. 이런 부분들이 더 잘 개선돼서 현장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 6일 오전 서울 아현동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인 야마가타 트윅스터.(한받)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6일 오전 서울 아현동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인 야마가타 트윅스터.(한받)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럼에도 그가 7~8년간 꾸준히 집회 현장을 위해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하는 계기는 뚜렷했다.

“열악하지만 계속 가야한다. 현장에 연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기가 하는 음악이 다가 아니라, 노력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연대를 위해서는 현장을 위해 노래를 만드는 것도, 열악한 상황을 어느 정도 감수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힘이 되는 현장을 만들고 싶다.

민중을 위해 음악을 하는 것이 이상이다. 생존과 함께 말이다. 다행히도 ‘야마가타 트윅스터’로 7년 동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물론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함께 할 때 느낄 수 있는 기쁨이나 즐거움, 감동들이 컸던 것 같다. 생계를 위해 최소한의 자본이 필요하기도 해서 엄청나게 많은 공연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보다 함께함에서 오는 마음들이 더 큰 힘을 줬다. 그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음악을 하며 생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주제다. 지난달 28일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노래상을 받은 이랑은 “1월수입은 42만원, 2월수입은 96만원”이라며 즉석에서 트로피를 경매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랑은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백댄서 유닛인 ‘야마가타 걸즈앤보이즈’의 일원으로 같이 활동하기도 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이랑을 두고 ‘총애하는 음악가’라고 말했다.

▲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을 수상한 이랑은 트로피를 경매에 부쳐 50만 원과 바꾸는 퍼포먼스를 했다. ⓒ 연합뉴스
▲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을 수상한 이랑은 트로피를 경매에 부쳐 50만 원과 바꾸는 퍼포먼스를 했다. ⓒ 연합뉴스
“정말 씁쓸하지만, 멋있는 퍼포먼스였다. 열악한 현실을 이겨내고 있는 음악가들과 예술가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줬다. 물론 그 상이 좀 더 대중적이고 자본이 많이 투입된 상이었다면 더 멋졌을 거고, 통쾌했을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재미있고 멋진 퍼포먼스였다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음악가들의 현실이다. 많은 음악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음원을 유통하는 구조가 좀 더 자립적이고 주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음악 산업은 우리같은 음악가나 예술가를 착취하면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이런 생각 때문에 ‘멜론’이나 ‘네이버뮤직’과 같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 자신의 음악을 공급하지 않는다. 자립적인 유통구조로 음원을 유통하는 ‘자립음악 생산조합’이나 동료음악가가 만든 '만선'(maansun.com)에서 음원을 유통한다. '두리반'투쟁에 함께했던 음악가들이 모여 창립한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작은 규모의 음악생산자들이 자유롭게 음반과 공연 등 음악과 관련된 작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데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고 조합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음악생산의 인프라를 구축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중매체는 음악 ‘산업’ 위주로, 즉 자본 중심으로 굴러간다. 여기에는 큰 착취의 구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가들이 함께 착취 하지 않고 자본의 휘둘림에 흔들리지 않은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미약하지만 자립음악생산조합에서 그런 시도를 하고 있고. 그리고 더 나아가 홍대 앞에서 활동하다가 현장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만들어 내고 싶다. 자본에서 소외된 이들과 자본에 의해 내쫓긴 이들이 함께 서로에게 힘을 얻는 상생의 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쯤 되면 그가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부터 화제가 된 ‘블랙리스트 예술인’ 리스트에는 오르지 않았다. 그는 “워낙 극좌로 있으니 보이지도 않나보다”고 웃었다. 정치적 발언을 하고 싶어도 불이익을 당할까봐 고민 중인 예술인에게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아예 더 급진적으로 하면 나처럼 리스트에도 안 오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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