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위치한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은 벌써 두 달째 천막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보통의 천막 농성장은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들이 정부나 기업에 생존권과 기본권 보장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 표출 공간이지만 이곳은 사뭇 다르다.

친박·보수단체로 구성된 ‘태블릿PC 조작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1월 중순부터 방송회관 1층 로비를 점거하며 방통심의위(위원장 박효종) 측에 ‘JTBC의 태블릿 PC 보도는 조작이며 심의위가 심의·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소추안 가결로까지 이어진 최순실 태블릿 PC 파문 보도에 대해 끊임없이 흠집 내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다. 그 표적 역시 태블릿PC 관련 단독 보도를 쏟아낸 JTBC와 손석희 보도 담당 사장이다.

친박·보수단체들은 방송회관 건물 안 퇴거 명령을 받은 후에도 방송회관 앞에서 천막 농성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엄마부대와 애국보수연합, 대한민국애국연합1917 등 여러 단체가 천막과 현수막을 치고 방통심의위 규탄 시위를 벌였다. 지금도 방송회관 앞에는 보수단체들이 ‘방심위 대책본부’를 꾸리고 심의위를 압박하고 있다.

방통심의위 앞은 정치 투쟁의 장, 보수단체 2달째 농성 중

보수단체의 민원에 따라 JTBC 태블릿PC 보도를 심의하고 있는 방통심의위는 해당 안건에 대해 오는 23일 전체회의에서 다루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JTBC 측이 ‘자료 제출’ 연기를 요청해 심의가 보류됐고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심의 자체에 반대하며 퇴장했지만, 여권 추천 위원들이 전체회의에 회부키로 강행한 것이다.

사실 애초부터 JTBC 태블릿PC 보도에 대한 심의는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보수단체는 JTBC 보도가 조작이라며 ‘객관성’ 위반으로 심의를 요청했지만, 검찰과 특검에서 모두 ‘태블릿PC가 최순실씨의 것이 맞다’고 밝힌 상황에서 결정적으로 JTBC 보도를 ‘오보’라고 볼만한 근거가 없고 JTBC 측이 이미 방송을 통해 입수 경위와 보도 과정 등을 상세히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달 9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위치한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 JTBC 태블릿PC 보도 심의를 촉구하는 보수단체 집회가 열렸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달 9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위치한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 JTBC 태블릿PC 보도 심의를 촉구하는 보수단체 집회가 열렸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통신심의위원회지부(위원장 김준희)는 6일 성명을 통해 “JTBC 보도에 대해 자칭 ‘애국진영’이 불쾌감을 느끼고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야 막을 도리가 없으나, 법률과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할 위원회가 이들 민원을 심의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며 “‘태블릿PC 및 사진 조작 여부’ 등에 대한 진실 규명을 위해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위원회는 무의미한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사법부가 최종 판단할 때까지 심의를 보류하라”고 촉구했다.

방통심의위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에 신설된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제21조는 수사·재판 등에 관한 사항을 처리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수사권 등이 없는 기관이 민원을 직접 처리하기 어려워 불필요한 분쟁과 사회적 혼란만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JTBC 태블릿PC 보도 심의 이전에도 방통심의위의 ‘정치 심의’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9명의 심의위원 중 대통령 임명 3인을 포함해 정부·여당에서 6명을 추천하고 야당 추천 위원 3인으로 구성되는 여야 6대 3 구성에서 구조적 편파성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 정부 들어서도 심의위는 정부 비판적인 보도에 공정성과 객관성 등의 잣대로 제재했다가 행정소송이 제기돼 법원으로부터 수차례 패소했다.

지난 2013년 11월 ‘연평도 포격’ 발언 등으로 논란이 된 박창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원로신부를 인터뷰했다가 심의위로부터 공정성과 객관성 위반으로 법정제재를 받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도 대법원으로부터 제재취소 판결을 받았다.

“방통심의위호, 첫 출항 순간부터 6대 3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방송 ‘공정성’ 심의와 관련해선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다가 심의위 제재를 받은 KBS ‘추적60분’에 대한 2015년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유명하다.

서울고법 제1행정부(곽종훈 부장판사)는 2015년 2월10일 징계처분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KBS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편(2010년 11월 17일 방송)에 내린 ‘경고’ 제재조치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하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특정 보도가 정부에 대해 불공정 또는 불균형한 것으로 판단하고 그에 따른 제재를 함에 있어서는, 다수의 입법례에서 국가에 의한 공정성 심사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언론은 공적 영역으로서 그 다양성이 보장돼야 하며 정부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언론 자유의 핵심 내용에 해당한다.”

아울러 재판부는 방송심의의 헌법적 한계와 관련해 미국의 설리번 판결을 인용하며 이같이 덧붙였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하에서는 공적인 토의는 우리 정부의 본질적인 원칙이자 정치적 의무이며, 이런 토의는 정부나 공직자에 대한 격렬하고 신랄하며 가끔은 불쾌할 정도의 날카로운 공격이 포함된다고 할지라도 결코 억제돼서는 안 되며 가급적 광범위하고 활발하게 전개되도록 보장돼야 할 것이다.”

지난 2013년 9월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판결의 전말” 예고편
지난 2013년 9월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판결의 전말” 예고편
KBS ‘추적60분’ 해당 방송분에 대해 대법원은 방통위의 제재조치 처분을 취소하라고 확정판결했다. KBS ‘추적60분’은 국가정보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다뤘다가 방통위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건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까지 승소했다.

언론노조 방통심의위지부는 심의위의 이 같은 편파 심의 논란에 대해 지난달 6일 성명에서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언론계가 권력에 길드는 과정에서 방통심의위가 일말의 책임이 없는지 되돌아볼 때,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방통심의위 호(號)는 첫 출항하는 순간부터 대략 6대 3의 기울기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 기울어진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배 안의 우리는 알고 있었음에도 그저 무기력하게 선장과 항해사들이 시키는 대로 노만 젓고 있었다”고 반성했다.

방통심의위지부는 이어 “공영방송 KBS와 MBC의 몰락은 각각 7대4와 6대3의 기울기로 기울어진 제2의, 제3의 세월호가 서서히 가라앉는 과정이 아니었나”라며 “언론장악 방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입법 투쟁은 방통심의위 위원 위촉 절차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위 ‘언론장악방지법’으로 불리는 언론 관계법 개정안에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방통위가 여야 추천 수 관례에 따라 공영방송 이사를 선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방통심의위 위원 구성 개혁에 대한 내용은 없다.

현행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방통심의위는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대통령과 국회의장, 국회상임위원회(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가 각각 3명씩 추천한 위원을 방통위가 위촉한다.

묵혀 있는 ‘시청자배심원제’, 통신심의 개선 인권위 권고도 무시

언론장악 방지법에는 공영방송 이사 추천 시 각 분야 대표성과 방송에 관한 전문성과 지역성 등도 고려하도록 명문화라도 했지만, 방통심의위원 위촉 시엔 이런 규정마저도 없다. 50대 이상의 남성 위주로 구성된 심의위가 변화하는 다양한 방송 트렌드를 이해하지 못하고 ‘꼰대 심의’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나마 20대 국회에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인이 방통위와 방통심의위를 구성할 때 특정 성별이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게 전부다.

이 개정안은 “방통위와 방통심의위는 방송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으로서 그 중요성이 큼에도 위원 구성 시 양성평등을 위한 규정이 없을 뿐 아니라, 현재 위원 구성을 살펴보면 전원이 한 성별로만 이뤄져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4년 11월 방통심의위가 제3기 심의위 구성 후 발표한 ‘비전 및 정책과제’를 보면 위원회 심의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해소하고 심의가 공익적 차원에서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심의 대표성과 사회적 다양성,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심의 방식으로서 ‘시청자배심원제’ 도입 방안도 검토됐다. 하지만 이 역시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다.

방통심의위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 보장을 위한 입법 노력도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김창수 전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방통위와는 별도로 ‘방통심의위의 설치·운영에 관한 근거 법률’을 마련함으로써 방통심의위의 방송·통신에 관한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심영섭 한국외대 외래교수의 미디어 조직 개편안. 디자인=이우림 기자.
심영섭 한국외대 외래교수의 미디어 조직 개편안. 디자인=이우림 기자.
한편 최근 야당 주도로 논의되고 있는 정부 미디어 조직 개편 내용을 보면 방통위를 중심으로 방통심의위를 흡수해 ‘미디어위원회’로 개편하는 안도 나오고 있다.

심영섭 한국외대 외래교수는 “방통위와 방통심의위가 조직적으로 이원화됐지만, 업무의 이원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며 “합의제 기구라는 입법 취지와 달리 독립성이 보장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미디어위원회의 방송통심심의 기능에 대해 “민간의 참여를 대폭 확대하는 원칙에 따라서 방송통심심의정책국을 두되, 실제 심의 결정은 위원회 부설의 방송·통신심의센터 등에서 민간 심의위원들이 맡도록 한다”며 “심의위원은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가를 위촉해 센터별 20~30명 내외로 비상임 명예직으로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비정부 독립위원회가 아닌 정부기관에 의한 직접적 방송·통신 내용 규제 시 언론의 자유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 높다. 방통심의위 내·외부에서도 방통위와 방통심의위 통합은 심의위 독립성과 민간자율심의기구 장려 정책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준희 언론노조 방통심의위지부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공무원 조직에서 내용을 직접 심의하게 되면 기존보다 더 ‘꼰대 심의’, ‘정치 심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방통심의위가 지금까지 제 기능을 못 했다면 더욱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심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제도에 대해서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2010년 “행정기관이 인터넷 게시물을 통제하는 것과 심의 대상과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점이 함께 작용해 사실상 검열로서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전기통신망을 통해 유통되는 정보에 대한 심의권과 시정요구권을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와 시민사회 대표 등이 함께 구성하는 민간 자율 심의기구에 이양하는 내용으로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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