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권 출마 선언을 한 주자들의 공약 발표에 힘입어 복지국가, 특히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는 아직 기본소득을 도입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모두가 행복한 국가를 위한 한 대안으로 점차 떠오르고 있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국가에 의해, 유급고용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도 누구에게나 지급되는 수당을 말한다. 한국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불붙은 것은 탄핵 국면을 맞아 새로운 국가에 대한 여러 상상력이 분출하면서다. 가장 주도적으로 기본소득 논의에 불을 당긴 것은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이 시장의 기본소득 공약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전 국민 중 일부인 아동과 장애인, 노인, 농어민 등 전 국민 중 2800만 명을 대상으로 연 10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기본소득이다. ‘토지배당’이라는 이름으로 전국민에게 연 3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도 있다. 이 시장은 현재 성남시에만 적용하고 있는 청년배당을 전국 단위로 확대해 청년들에게 연 10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이재명 시장은 이를 위한 구체적인 해법도 내놓았다. 이 시장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국가예산 400조 원의 7%인 28조 원으로 충당하고, 토지배당금 지급을 위해서는 국토보유세를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28조원은 국가 예산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하고,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상위 5%에게만 부담이 돌아가고 95%의 대다수는 낸 것보다 더 많이 돌려받도록 설계해 15조원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를 통해 부동산 불로소득에 의해 발생하는 소득 불균형도 조정하는 효과를 누리겠다는 것도 깔려있다.

▲ 이재명 성남시장. 사진=포커스뉴스
▲ 이재명 성남시장. 사진=포커스뉴스

이 시장의 기본소득 공약은 ‘한국형 기본소득’ 정책을 설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에 기반을 두고 예산안의 구체적인 조정 계획까지 포함됐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장의 기본소득 구상은 한국에서 자력으로 소득을 벌어들이기 힘든 계층만을 대상으로 지정해 추가 재원 지급 계획을 마련했다. 이 시장의 기본소득 공약에 따르면 국민은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를 받게 되며, 이를 지역 전통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도 차이가 있다. 이 시장은 이에 대해 하나의 정책으로 두 가지의 효과를 누리겠다는 설계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외에도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기본소득과 관련된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문 전 대표는 전체 노인 80%를 대상으로 기초연금을 월 30만원까지 인상하고, 청년수당도 미취업 청년을 대상으로 월3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심 대표도 노동시장 밖에서 아동과 청년, 노인 등에 대한 기본소득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핀란드에서는 올해부터 기본소득 실험에 돌입했다. 실험은 25세부터 58세 사이의 실업자 중 2000명을 대상으로 2년 동안 매달 560유로(우리 돈으로 약 68만원)을 무조건 지급하는 내용이다. 실업자들이 도중에 취업을 하더라도 기본소득 지급은 중단되지 않는다. 다만 실업급여 등 기존 사회보장 혜택이 이 기본소득으로 대체된다.

미국에서 가장 평등한 주로 꼽히는 알래스카 주는 1982년부터 석유 등 천연자원에서 발생되는 수익의 일정부분을 알래스카에 6개월 이상 거주한 주민들이라면 누구에게나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고 있다. 또한 올해 치러질 프랑스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로 출마할 브누아 아몽 역시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전 세계가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기본소득에 이처럼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국가를 막론하고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한 경제 구조 때문이다. 현재 갖춰진 선별적 복지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최근 개봉된 영화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인 다니엘 블레이크는 오랜 기간 해온 목수 일을 건강 상의 이유로 그만두게 된다. 정작 다니엘이 겪는 신체적 어려움은 실업으로 인해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어떠한 복지제도와도 연결되지 않는다. 기본소득은 이처럼 현재의 복지제도 앞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쉽게 무너지는 현실에서 논의에 탄력을 받고 있다. 

▲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의 스틸컷.
▲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의 스틸컷.
특히 기본소득제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것은 선별적 복지로 인한 저소득층에 대한 낙인효과나 사각지대가 없을 뿐만아니라,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보장한다는 점에 있다. 

기존 복지국가 모델은 완전 고용을 목표로 두고 여기에서 떨어져 나온 이들에 대한 삶을 보장하는 정책과 노동의 질을 높이는 정책들로 구성돼 있는데, 여기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에게 노동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영위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본소득이 여성의 남성으로부터의 재정적 독립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주장도 이에 기반한다. 

기본소득스페인네트워크의 대표이자 바르셀로나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다니엘 라벤토스가 지난해 쓴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는 기본소득의 장점 중 하나로 임금을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임금을 지불하지는 않지만, 개인에게 가치있는 활동을 하더라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다는 ‘선택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처럼 임금 체계에서 저평가된 노동이나, 학업이나 육아 등 아예 노동으로 취급되지 않는 활동을 하면서도 살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 기본소득의 가장 큰 장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다니엘 라벤토스는 기본소득을 통해 노동관계에서 자본가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한다. 다니엘 라벤토스의 표현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때 기본소득은 무조건적이고 고갈되지 않는, 저항의 지원금이 될 것”이며 “지금처럼 파업 기간 동안 다른 수입원이 없어서 삶이 매우 힘들어지는 절대다수 노동자들의 현실과는 다르게 매우 안정적인 파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니엘 라벤토스는 노동자들이 임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회사의 부당한 노동환경을 굳이 감내하고 받아들일 이유가 없어진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장밋빛 국가를 약속하는 것 같지만, 기본소득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제공하는 기본소득이 오히려 노동의 유연화 현상과 저임금 일자리의 양산을 부추길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한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지난달 28일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 “기존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새로운 일자리는 저임금의 불안정 일자리로 전락해서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더 심화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이상이 대표 등이 제기하는, 엄밀히 말해 최근 대선주자들이 내놓는 기본소득 공약은 ‘진짜’ 기본소득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차별없이, 노동 의지나 여부,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정기적으로 지급돼야 하는 것이므로, 아동과 노인, 농민 등에 지급하겠다는 공약들은 엄밀히 말해 기본소득이 아니라 복지 제도의 일환인 사회수당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점은 한국에서 소득 수준이나 노동 의사 등과 무관하게 누구에게나 현금으로 지급하는, 본래 의미의 기본소득은 당장 실현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감추는 효과도 야기한다. 

실제로 기본소득에 대한 주된 비판 중 하나는 주로 기본소득이 실현이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공짜’라는 프레임에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무상급식 찬반 논쟁에서 불거졌던 “이건희 회장 아들도 국민의 세금으로 공짜 밥을 줘야 하느냐”는 ‘공짜 밥’ 프레임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는 기본소득 논의의 발목을 잡는다.

▲ 안희정 충남도지사. 사진=포커스뉴스
▲ 안희정 충남도지사. 사진=포커스뉴스
이러한 ‘공짜 밥’ 프레임은 좀 더 효율적으로 국가 재원을 사용해야 한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국가 예산이 한정돼있으므로,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복지 예산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굳이 공짜 밥이 필요없는 이들에게까지 가난한 이들과 같은 수준의 지원을 해야 할 필요성은 없다. 차라리 그 돈으로 국가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를 좀 더 제대로 다지는데 쓰자는 이러한 주장은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이재명 시장에 대한 지적과도 맥이 닿아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국민들은 ‘공짜 밥’을 원하지 않는다”며 비판한 바 있다. 안 지사는 지난 3일 민주당 대선 주자 합동토론회에서 이재명 시장에게 “기본소득에 필요한 43조원의 예산으로 우리 사회의 보험제도와 현재 근로능력을 상실한 이들처럼 절대적으로 돌봐야 할 복지분야를 좀 더 튼튼하게 높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기본소득의 효율성 논란 역시 기본소득에 가해지는 비판 중 하나다. 과연 비용만큼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있을 것이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재명 시장의 공약에 따르면 전 국민에게 돌아오는 토지배당을 신설하면 한 사람당 월 2만5000원씩 지급하게 된다. 아동과 노인, 장애인, 농민 등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역시 해당자들은 한 달에 8만3000원 가량의 돈을 받는 수준에 그친다. 가장 많이 받는 이들도 한 달에 10만원 가량의 돈을 추가로 지급받는 정도다.

대한민국의 현실에 기반해 공약을 설계한 이재명 시장의 구상대로 기본소득제가 시행된다면, 과연 기본소득의 원래 의미대로 ‘삶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준으로 실현된다고 볼 수 있을까. 아마 그 이상의 금액을 제공한다면 공약 이행률이 높다는 이재명 시장조차 감당할 수 없는 예산난에 부딪힐 것이다. 일각의 비판처럼 그 돈으로 교육과 의료 등의 복지서비스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외에 기본소득제에 대한 비판으로 ‘우파’진영에서 환영하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교육과 의료 등 기존의 모든 복지체계까지 기본소득으로 대체하겠다는 의도이며,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이상이 대표는 “사실, 기본소득은 우파의 주장을 담기에 매우 좋은 그릇”이라며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시장임금을 최대한 낮출 수 있다. 이것도 기본소득이 우파 시장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기본소득 정책은 대한민국에서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다. 노동 없는 사회라고 불리는 4차 산업혁명 시기가 오면, 노동 없이도 행복한 삶을 선택할 권리를 국가가 보장하는 기본소득 논의는 더욱 탄력을 받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이든 사회수당이든 국민을 행복하게 할 국가의 모습을 꿈꾸는 상상은 대선 이후에도 이어져야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기본소득 논의가 더욱 무르익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최근 시사인 기고를 통해 앞으로의 논의 방향을 제시했다.

“만약 대다수 사람이 노동하지 않는 사회가 도래하면 완전 기본소득은 필요할 것이다. 그게 언제일까? 지금이 그때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그렇다면 논의할 주제는 분명하다. 어떤 사회수당형을 도입할지, 의료·보육·요양·주거 등 사회서비스 복지와 어떻게 균형을 이룰지, 복지가 더 필요한 취약계층을 위해선 무엇을 보완할지 이야기해야 한다. 기본소득을 상상하되 지금은 복지체계를 촘촘히 보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