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박 대통령은 중대범죄자” 결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은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공모해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권력을 사유화하면서 잇속을 챙겼다는 게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결론이다.

박영수 특검은 6일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박 대통령이 최씨와 공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433억원의 뇌물을 받은 피의자라고 밝혔다.

특검팀은 최씨가 박 대통령과 공모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최씨 딸 정유라씨의 승마 훈련비와 미르·K스포츠재단,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통해 뇌물을 받은 혐의가 있다고 발표했다.

7일자 한국일보 1면
7일자 한국일보 1면
특검팀은 최씨의 공소장에서 ‘최씨는 2015년 5월께 박 대통령에게 대기업 돈을 받아 재단 설립 후 운영을 제안했고, 박 대통령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와주는 대가로 재단 출연금을 달라고 요구하기로 마음먹어 최씨의 제안을 수락했다. 이로써 최씨와 박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요구해 뇌물을 수수하기로 공모했다’고 밝혔다.

특검은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모금과 관련, 검찰의 결론이었던 직권남용죄(징역 5년 이하)보다 형량이 훨씬 높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박 대통령과 최씨에게 적용했다.

특검이 박 대통령에게 적용한 혐의는 삼성으로부터의 뇌물수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시행(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 공무원(문화체육관광부)과 민간(KEB하나은행) 인사 부당 개입(직권남용) 등 5가지다. 모두 최씨와 공모했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이로써 박 대통령의 범죄 혐의는 검찰이 앞서 적용한 8개를 포함해 총 13개로 늘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이 부회장과 2014년 9월15일, 2015년 7월25일, 2016년 2월15일 세 차례 독대하면서 이 부회장에게 “삼성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달라” “승마훈련 지원에 신경 써달라”고 말하고 최씨가 실소유한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 계획안도 전달했다.

특검은 “최씨가 박 대통령과 공모해 이 부회장 등으로부터 최씨 딸 정유라씨 승마 지원금 77억여 원,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계약금 220억여원 등 총 298억여원(약속금액 포함 433억원대)의 뇌물을 수수했다”고 밝혔다.

7일자 경향신문 3면
7일자 경향신문 3면
특검은 최씨와 박 대통령이 ‘경제적 동반자 관계’라고 판단했다. 경향신문은 “최씨가 1990년 박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자택 매매계약을 대신 체결하고 지난해까지 의상제작비 3억여 원을 대납한 게 대표적 사례”라며 “다만 특검은 최씨 소유 부동산 228억 원 등 최씨 일가 재산 2730억원을 확인했지만 불법적으로 형성됐다는 혐의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는 법원 판결로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헌재 탄핵심판 심리에서 줄곧 뇌물죄를 부인했던 박 대통령 쪽 변호인단 주장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헌재 재판관들의 심증 형성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내다봤다.

앞서 2004년 헌재는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에서 ‘대통령 파면을 요청할 정도의 중대한 법 위반으로, 뇌물수수, 부정부패, 국가의 이익을 명백히 해하는 행위가 전형적인 예’라고 밝힌 바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시작점도 박근혜

한겨레는 또 박영수 특검팀의 최대 성과 중 하나로 ‘블랙리스트 수사’를 꼽았다. 박근혜 정부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좌파’로 낙인찍어 정부 예산을 사유화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것.

특검은 “블랙리스트는 청와대 최고위층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뤄진 범행”이라며 “정부·청와대 입장에 이견을 표명하는 세력을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한 것은 헌법 가치에 위배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한려레는 “특검 수사 결과, 안보 이슈 등 정치적 입장에 대립될 만한 것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자는 의견을 밝힌 것만으로 정부의 탄압 대상이 됐다”며 “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다양한 문화융성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우리 사회를 자신에 대한 비판세력(블랙리스트)과 우호세력(화이트리스트)으로 이분법화해 사실상 ‘신유신시대’를 부활시켰다. 우호세력에 대해선 청와대가 ‘민간자본’까지 동원해 지원에 나선 사실이 드러났다”고 전했다.

7일자 한겨레 4면
7일자 한겨레 4면
‘좌편향 출판사’로 찍힌 ‘문학동네’는 2014년 10월 소설가·문학평론가 등 12명이 세월호 참사를 바라본 글을 모아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책을 펴낸 뒤 정부 지원에서 단계적으로 배제됐다. 정부 지원을 받는 ‘세종도서’로 선정된 출판물이 2014년 25종에서 2015년 5종으로 확 줄었고, 10억 원 규모의 문화예술위원회 산하 ‘우수문예지 발간 지원사업’ 자체가 아예 폐지되기도 했다.

한겨레는 “박 대통령의 ‘말씀’ 한 마디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정무수석실, 교문수석실, 문체부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면서 “2014년 1월 김 전 실장은 문화계 좌파 척결을 강조하며 ‘전투 모드’ ‘불퇴전의 각오’ 등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청와대 정무수석실과 교문수석실은 김 전 실장의 행보에 부지런히 보조를 맞췄다”고 설명했다.

정무수석실은 ‘민간단체 보조금 TF’를 운영하면서 2015년 5월 9473명에 달하는 블랙리스트 명단을 작성해 업데이트했고, 이 명단을 문화체육관광부에 그대로 내려보냈다. 특검은 “문체부 담당자 등 실무자 어느 누구도 그 기준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특정 대상자를 배제해야 했다”고 밝혔다.

반면 청와대는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동원해 정권 우호적인 단체를 중심으로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활동비를 지원하도록 했다. 2014년 전경련은 청와대의 요청으로 삼성, LG, 현대차, SK 등 대기업에서 받은 돈과 자체 자금 등을 합해 24억여 원을 청와대가 지정한 22개 단체에 지원했다. 2015년에는 31개 단체 35억 원으로 늘어났다가 지난해에는 22개 단체에 약 9억 원의 돈이 건너가는 등 3년 간 총 68억 원이 지원됐다.

특검도 못 밝힌 ‘세월호 7시간’, 참사 다음날 주사바늘은?

박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서 무자격·무면허 의료인으로부터 불법 시술을 받은 사실도 특검 수사 결과 드러났다. 다만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 박 대통령이 미용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특검 수사로 규명하지 못했다.

특검팀 수사 결과에 따르면 청와대 공식 의료진이 아닌 김영재 원장은 2013년 12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최소 14회 박 대통령 숙소인 관저를 방문하고 최소 5회에 걸쳐 보톡스 등 미용성형 시술을 했다.

자문의가 대통령 주치의나 의무실장도 모르게 박 대통령에 대한 진료를 하거나 박 대통령의 혈액이 외부로 무단 반출된 사례도 확인됐다. 김상만 전 자문의는 2012년 3월부터 2014년 3월까지 모두 26차례에 걸쳐 박 대통령을 치료한 뒤 최순실씨 등을 진료한 것처럼 진료기록부를 꾸몄다.

7일자 서울신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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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은 “아울러 이른바 ‘주사 아줌마’, ‘기치료 아줌마’ 등 무면허 의료인들까지 청와대 관저를 빈번하게 오가며 박 대통령에게 의료 행위를 한 사실도 드러났다”며 “박 특검은 이날 ‘이 사건은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대통령에 대한 공적 의료 체제가 붕괴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고 전했다.

특검팀은 정부 차원에서 김씨와 부인 박채윤씨에게 각종 특혜를 베푸는 데 박 대통령이 깊이 개입했다고도 밝혔다.

박 대통령은 비서진에게 2014년 6월 박채윤씨의 의료용품 업체 ‘와이제이콥스메디칼’의 해외 진출 지원을 지시했다. 곧바로 같은 해 8월 안종범당시 대통령 경제수석(전 정책조정수석)이 특사 자격으로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할 때 김씨 부부를 비공식적으로 데려가 영업 활동을 지원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미스터리는 특검 수사로도 끝내 풀리지 못했다. 특검은 “세월호 침몰 당일 대통령 행적과 관련해 제기된 미용시술이나 진료(의혹)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대통령에게 피부 시술을 한 자문의와 비선 의료인, 대통령 미용사 등의 행적을 추적했지만 핵심인 세월호 참사 전날 저녁부터 당일 오전 10시까지 행적은 규명되지 않았다”며 “다만 특검은 참사 전날까지 없었으나, 참사 다음날인 17일에 이어 21일에 대통령 왼쪽 턱에 주사바늘 자국이 있는 사진을 보고서에 첨부하면서 해결돼야 할 과제임을 시사했다”고 밝혔다.

특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2013년 3~8월 전 대통령 자문의 정기양 신촌세브란스병원 피부과장에게서 필러와 보톡스 시술을 3차례 받았지만, 참사 당일 정 교수와 김 원장이 각각 대한피부과학회 학술대회와 골프 일정으로 박 대통령 시술을 하지 않은 정황이 확인됐다.

박 대통령 취임 전부터 세월호 참사 한달 전까지 대통령을 26회 진료한 자문의 출신 김상만 원장도 대통령 7시간 행적과는 무관하다고 특검은 밝혔다. 참사 당일 박 대통령 머리 손질을 했다고 알려진 미용사는 실제 오후 3시20분쯤 이영선 행정관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 한 차례 20~25분 머리를 만졌다.

한국일보는 “그렇지만 특검은 미용사가 참사 전날 청와대로부터 ‘내일은 오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을 받은 점에 비춰 대통령이 참사 당일 미용시술을 받았을 가능성은 열어뒀다”면서 “김영재 원장이 시술한 날과 미용사의 청와대 출입 시기를 비교했더니 미용사가 시술 당일 또는 그 다음날은 청와대에 가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꾸라지’ 우병우, 검찰이 잡을까

한편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영수 특검팀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된 직후 복수의 기업에서 우 전 수석 계좌에 입금한 수억 원의 성격을 조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동아일보는 “국정농단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한 특검은 우 전 수석 본인과 가족 명의 계좌에서 이들이 소유한 가족회사 정강으로 30억∼40억 원가량이 입금된 정황을 파악하고 관련 계좌의 금융거래 기록을 분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며 “이 과정에서 우 전 수석이 청와대에 들어간 직후 그의 계좌에 수억 원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7일자 동아일보 1면
7일자 동아일보 1면
송금을 한 쪽은 대부분 우 전 수석이 변호사로 활동할 때 사건을 수임했던 기업이나 기업 관계자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들이 우 전 수석에게 돈을 보낸 경위에 대해 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했다. 우 전 수석이 변호사 수임료를 뒤늦게 받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만약 그가 민정비서관이 된 뒤 돈을 보낸 측이 받던 수사나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뇌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우 전 수석은 민정비서관 내정 직후 자신이 맡았던 기업 사건의 재판 문제로 검찰청에 찾아가 검사를 만나 변론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며 “특검은 특검법상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해 관련 기록을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에 넘겼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검사 31명으로 구성된 ‘2기 특별수사본부’를 출범하고 박영수 특검팀이 이첩한 사건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특수본 안에는 우 전 수석의 개인비리만 집중 수사하는 전담수사팀도 꾸려졌다.

경향신문은 “수사팀 중 첨단범죄수사2부(이근수 부장검사)가 우 전 수석 전담팀으로 낙점됐다”며 “지난해 검찰의 국정농단 사건 수사 당시 우 전 수석과 검찰 고위간부들이 통화한 내역이 공개돼 불신이 고조되자 우 전 수석과 근무 경험이 없는 이근수 부장을 수사 책임자로 삼은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이번 수사의 핵심은 박 대통령 등의 뇌물 수수 혐의와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라며 “검찰 내에선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가 검찰·법무부 고위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김수남 총장이 검사장급 ‘특임검사’를 임명해 수사를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고 전했다.

다음은 7일 아침 종합일간지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국정농단 정점에 박근혜 대통령 있었다>

국민일보 <7년 도정 성과 논란… ‘연정’ 행보도 미흡>

동아일보 <北, 스커드-ER 4발 쏴도… 중 “사드반대 불변”>

서울신문 <“朴대통령, 미르·K재단 사업도 직접 지시”>

세계일보 <北 22일 만에 또… 미사일 4발 도발>

조선일보 <취준생이 면접관 선택해요… 청년이 웃는 일본>

중앙일보 <보란 듯이 쐈다, 김정은의 도박>

한겨레 <특검, ‘박대통령 헌법 위반 중대범죄’ 결론>

한국일보 <“국정농단 몸통은 박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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