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야말로 매와 같이 달려들어서 거의 2초 만에 목적했던 바를 달성하고 뛰어갔죠.”(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2017년 2월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벌어진 김정남 피살사건은 ‘기획’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두 용의자인 인도네시아 국적의 아이샤와 베트남 국적의 흐엉은 어떤 남성들에게 속아 TV방송용 몰래 카메라인 줄 알고 벌인 일이라고 경찰에 진술했으나, 그들의 신속하고 정확한 몸놀림과 범행 직후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는 모습 등은 이미 이들이 수차례 연습을 통해 암살을 기획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이미 언론 등에서는 김정남 암살 사건을 북한이 기획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것이 알고싶다’ 1066회 역시 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의 직원인 현관성이 사건의 중심이라고 분석했다. 암살 몇 달 전 북한대사관으로 온 현관성이 김정남 피살을 특별임무로 맡아 홍송학, 오종길, 리재남 등 북한으로 떠났다고 알려진 용의자들과 사건을 기획했다는 것.

▲ '그것이 알고싶다'팀은 현광성 북한대사관이 김정남 피살사건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 '그것이 알고싶다'팀은 현광성 북한대사관이 김정남 피살사건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김정남을 암살한 이유에 대해서는 △김정은 성격이상설(한국 국정원 주장) △김정남 장자 계승론에 대한 김정은의 반감 △김정남 망명정부 시도설 등이 언급됐으나 전부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판단됐다. ‘그것이 알고싶다’팀은 김정남 암살 이유에 대해 “죽음보다 죽음이 전하는 메시지를 봐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남이 북한에 위협요소여서 죽였다기보다, 김정남을 죽이면서 얻을 수 있는 효과에 주목해야한다는 말이다.

이 사건에 ‘암살’보다 ‘테러’라는 단어가 적확한 이유는 공개된 장소에서 죽음을 알렸기 때문이다. 공항이라는 장소에서 두 여성이 직접 김정남을 향해 독극물로 살해하는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효과를 노렸다는 해석이다. 공정식 한국심리과학센터 박사는 “중대 인물을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암살하는 경우에는 관련된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목적이 크다”라며 “내부보다는 외부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김정남이 망명정부를 꾸리려고 했다는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김정남이 꾸리려던 일에 연계된 이들에게 북한이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 사건을 이용하는 한국정부의 태도다. 김정남 피살 이후 국가정보원은 “김정은의 성격이 이상하다”는 황당한 브리핑을 내놓았다. 그만큼 북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지만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모습은 명백해 보인다. 김정남 피살 직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가안보회의(NSC)를 두 차례나 열고 이번 테러로 우리정부와 국민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능성까지 발표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사드 배치를 조속히 진행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북한의 테러위협이 언제 국내를 향할지 모르기 때문에 사드를 1개가 아닌 2개, 3개로 늘려야한다는 논리다.

▲ 바른정당은 김정남 피살사건 이후 사드를 늘려야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 바른정당은 김정남 피살사건 이후 사드를 늘려야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팀은 “북한 정권이 권력 강화를 위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을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정치사에 언제나 등장했던 ‘북풍 프레임’을 그만두라는 비판이다. 

‘북풍’은 집권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해왔다. 1987년 12월15일 제 13대 대통령 선거 하루 전 KAL기 폭파범 김현의 국내 소환했고, YS 정부 말기인 1997년에도 정부가 특정기업의 뇌물을 받았다는 추문이후 신임을 잃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황장엽을 '기획 망명'을 시켰다는 비난이 나왔다. 지난해 총선 5일 전에는 탈북민들이 식단으로 집단 귀순을 했다는 국방부의 브리핑이 나왔다. ‘북풍’이 효과가 있든 없든 선거 이전에는 ‘북풍’이 나오는 것이다.

▲ SBS '그것이 알고싶다' 1066회 '무대위의 암살' 갈무리.
▲ SBS '그것이 알고싶다' 1066회 '무대위의 암살' 갈무리.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북풍’이 선거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선거의 과정을 왜곡시킨다”라며 “북한 변수가 개입이 되면 합리적 토론이 생략되고 이념적으로 흘러간다”고 말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역시 “정부는 북한을 악마화하고 체제에 대한 안좋은 전망만 늘어놓는다”라며 “북한에 대한 태도가 이념적이고 도덕주의적인 관점에 갇힐 경우에 결국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남 피살 이후 일부 정치세력은 조속한 사드 배치 주장하고 있다. 사드 배치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며 돌발적인 사건 이후 감행할 만한 것이 아니다. 북한에 대한 상식을 이야기하면 종북으로 모는 일은 이젠 사라져야한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김상중 앵커를 통해 나온 목소리이지만 지금까지 수천번 반복돼온 목소리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북풍 프레임’을 반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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