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98주년 기념일인 지난 토요일 오후 서울시청 앞부터 경복궁 정문 앞까지의 대로와 노변은 소란하기 짝이 없었다. 오후 2시부터는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가, 오후 5시부터는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지근거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두 집회 참가자들의 충돌을 막기 위해 정부서울청사 앞부터 광화문 네거리까지 차벽을 쳤다. 그래서인지 양쪽 집회 참가자들 가운데 극소수가 말다툼을 벌이거나 삿대질을 한 것 말고는 심각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이튿날인 3월2일에 나온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보면 ‘박근혜 탄핵’을 둘러싼 ‘촛불’과 ‘태극기’의 극한 대결 때문에 대한민국이 ‘두 동강’이 난 셈이 되어버렸다. 특히 세 신문의 사설들은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든 기각하든 간에 한국사회가 ‘파국’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국민을 겁박했다.

▲ 98주년 3·1절인 3월1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 본부가 주최한 탄핵반대 집회와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 국민행동이 주최한 탄핵촉구 촛불 집회가 각각 열리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포커스뉴스
▲ 98주년 3·1절인 3월1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 본부가 주최한 탄핵반대 집회와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 국민행동이 주최한 탄핵촉구 촛불 집회가 각각 열리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포커스뉴스
조선일보 사설(‘촛불·태극기, 앞으로 열흘만이라도 집회 중단을’)은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되는 탄핵 찬성 측과 반대 측이 최근에 보인 행동을 ‘동등한 과격행위’로 평가했다.

“이미 탄핵 반대 측은 박영수 특검 집에 몰려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시위하고 헌법재판소장 대행 집 주소까지 공개했다. 이에 앞서 탄핵 찬성 측도 마음에 안 드는 정치인들을 향해 욕설이 섞인 문자 폭탄과 ‘18원 후원금 폭탄’으로 저주의 악순환에 불을 붙였다.”

박영수 특검의 집 앞에서 그의 얼굴 그림을 불로 태우면서 야구방망이까지 휘두른 행위가 ‘테러’에 가까운 위협이라면 ‘문자 폭탄’과 ‘18원 후원금 폭탄’은 실정법을 적용하더라도 ‘경범죄’ 수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사설은 “작년 12월 9일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했을 때 모두가 ‘문제의 시작이 아닌 끝이 돼야 한다’고 했다”며 이렇게 ‘경고’했다. “이제는 헌재가 결론을 내려도 그것이 또 다른 시작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부 법치에 승복하지 않고 ‘내 뜻대로 안 되면 들고 일어나겠다’는 불복 심리 때문이다.”

같은 날짜 중앙일보 사설(“‘대한독립 만세’ 98주년… 갈라진 민심 쪼개진 광장”)은 이렇게 ‘탄식’했다.

“한민족의 역사적 기념일에 두 개로 갈린 민심을 목도하는 건 괴롭다. 해방 이후 남과 북으로 쪼개진 것도 억울한데 이번처럼 남과 남이 둘로 갈라져 소 닭 보듯 싸우고 있는 모습을 유관순 열사가 본다면 얼마나 개탄스러울 까, 호국 영령, 민주화 열사도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 3·1절인 3월1일 오후 서울 중구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구속 만세! 탄핵인용 만세! 박근혜 퇴진 18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3·1절인 3월1일 오후 서울 중구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구속 만세! 탄핵인용 만세! 박근혜 퇴진 18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이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이 사설은 ‘남과 남이 둘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고 단언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탄핵 찬성은 80% 안팎이고, 반대는 15% 남짓에 불과하다. 국민이 특정한 사건을 두고 80 대 15로 갈라진 것을 어떻게 ‘남·남 분열’로 볼 수 있는가? 이 사설은 “박 대통령의 잘못을 그냥 덮을 수는 없다”면서도 “그렇다고 잘못 이상으로 처벌해 또 한 명의 사도세자를 만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진정 태극기 민심이 걱정하는 것 역시 피와 땀으로 일군 조국의 미래이지 박 대통령 한 명을 구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억설’을 펼쳤다. 아버지 영조가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 사도세자와 국민의 80%가 정당한 헌법 절차에 따라 탄핵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박근혜의 경우를 어떻게 똑같이 볼 수 있단 말인가?

같은 날짜 동아일보 사설(‘탄핵심판 이후 나라 위한 행동에 나설 때다’)은 이렇게 시작된다.

“대한민국은 어제 ‘태극기’와 ‘촛불’로 두 동강이 난 채 98주년 3·1절을 보냈다. 약 한 세기 전 일제에 맞서 온 겨레가 분연히 하나가 돼 독립을 외친 뜻 깊은 날에 후손들이 대통령 탄핵을 놓고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어느 쪽이라도 나라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이었다고 믿고 싶다.”

이 사설 역시 조선·중앙처럼 ‘촛불’과 ‘태극기’를 ‘두 동강’의 주체로 보면서 탄핵 심판 전후의 극한대립과 ‘파국’을 예고하고 있다.

조선·중앙·동아일보가 3·1절의 딱히 ‘남·남 분단 집회들’을 계기로 ‘탄핵심판 이후의 파국’을 ‘우려’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2월25일의 제17차 촛불집회와 15차 ‘태극기집회’ 전후부터 세 신문은 그런 기사와 논설을 대대적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조선일보가 2월27일자에 병치(竝置)시킨 두 기사는 제목만 보아도 섬뜩하다. ‘누명탄핵 원천무효 / 탄핵 땐 참극 일어날 것 / 탄핵기각국민운동 최대 규모 집회’, ‘끝까지 싸워 박 퇴진 / 기각 땐 폭동 일어날 것’.

동아일보는 그 집회 당일 아침에 나온 신문에 “찬탄 VS 반탄···‘할복’ ‘사살’ 주장 난무”라는 기사를 싣고, 27일자에는 “탄핵은 완전한 사기극 VS ‘종신형 열차에 태우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 3·1절인 3월1일 오후 서울 중구 광화문 광장 앞에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를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탄핵기각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3·1절인 3월1일 오후 서울 중구 광화문 광장 앞에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를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탄핵기각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중앙일보는 2월 27일자 사설(‘갈등만 부추기는 대선 주자들, 파국 원하나’)에서 ‘파국’을 자초하는 ‘주동자’로 야권의 대선 주자들을 지목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이 ‘촛불집회’에 참석해 ‘탄핵’ 구호를 외치며 헌재를 압박했다. 특히 이 시장은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지 않으면 승복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현직 지자체장 입에서 법치주의를 통째로 무시하는 발언이 나오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 대선용 표 몰이를 떠나 탄핵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한 분별 있는 행동이 절실하다.”

이 사설은 야권의 대선 주자들을 ‘갈등 조장자’ 또는 ‘법치주의 위반자’로 몰아붙이면서도 ‘태극기 집회’에서 ‘탄핵은 쿠데타’ ‘내란’ 등의 막말을 퍼부은 자유한국당 의원 김진태, 전 경기도지사 김문수 등의 행태는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여기서 결론적으로, 탄핵 국면에서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오해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사실들을 지적하겠다. ‘촛불집회’를 통해 ‘주권자혁명’의 주역으로 등장한 시민들은 ‘태극기 집회’ 주도자들이 주장하듯이 ‘종북 좌빨’도 ‘반미주의자들’도 아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듯이, 하루에 최대 232만명까지 토요촛불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는 진보와 중도, 보수가 어우러져 있다. 그들은 최순실과 함께 국정농단을 일삼음으로써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온 박근혜를 헌재가 탄핵하기를 염원하고 있을 뿐이다. 조·중·동이 명백한 근거도 없이 ‘탄핵심판 이후의 파국’을 걱정하고 있는 까닭은 그들이 친일·매판적 정권들과 함께 오랜 세월 누려온 기득권이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 속절없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리라. 역사적 혁명 과정에 동참하고 있는 시민들이 세 신문의 그런 속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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