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그림을 가까이한 어린 시절을 보냈었고, 지금은 출판업계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제 평범한 인생에 책과 그림은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주고, 심심할 땐 놀아주고, 힘들 땐 아지트가 되어주는 친구입니다. 책의 경우 이 친구의 외적인 면을 더 좋아한다고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합니다. 손에 잡히는 느낌 하며,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 나는 소리, 손가락 끝에 종이가 닿는 감촉이 참 좋습니다. 책마다 책장 넘기는 소리와 손끝에 닿는 감촉이 다르다는 걸 눈치채신 분이 있나요? 종이 회사에서는 실제로 이런 것도 연구한다고 합니다. 책에 쓰이는 종이와 그림을 그리는 종이에는 가벼운 종이, 촉촉한 종이, 빳빳한 종이, 오돌토돌한 질감이 있는 종이, 물을 많이 먹어도 끄떡없는 종이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현재 종이 종류는 1천 종이 넘는다고 하며, 여기에 색을 입히거나 코팅을 하는 등의 가공을 해서 더 다양한 종이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종이 덕분에 놀고먹은 시절을 보냈고, 보내고 있고, 앞으로도 보낼 것이기에 고마운 마음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평범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희생된, 희생되고 있는, 앞으로도 희생될 나무를 위해 종이 사용량을 줄이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종이가 귀한 것도 아닌데 왜 사용량을 줄여야 하는지 의문을 품는 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 어디에서나 쉽게 쓰고 버리는 종이 때문에 지구가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을 아시나요?

2015년 15개국의 연구자들이 실측 조사와 위성 사진을 분석하여 지구에 3조 400억 그루의 나무가 있다는 것을 추산하였습니다. 많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이 수는 인류 문명이 시작한 이래로 46%가 줄어든 수치입니다. 매년 150억 그루의 나무가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데, 이대로라면 우리가 쓸 수 있는 나무는 20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숲은 산소발생기이자, 분진을 흡수하는 공기청정기이기도 하며, 빗물을 모아두는 천연 댐입니다. 또한 수많은 동물의 집이고, 숲과 인접해 사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식재료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자산이기도 합니다. 이런 숲이 파괴되는 대부분의 이유는 당연히 사람의 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원목의 42%가 종이의 원료인 펄프로 사용되고 있고, 대부분 러시아, 캐나다, 인도네시아 등의 원시림 나무로 만들고 있습니다. 원시림은 자연 상태 그대로인 몇백 년, 몇 천 년 된 숲을 말하는데, 이제 전 세계에 35%밖에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고, 말 그대로 아낌없이 쓰다가는 수십 년 뒤에 초록색 지구별이 황토색 지구별로 전락할까 두렵습니다.

종이의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서 내가 언제 종이를 사용하고 얼마나 사용하는지 파악해보았습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에서 복사용지를 사용하는 것이 제일 많았고, 매일 마시는 커피를 담는 종이컵이 그다음을 이었습니다.

 

먼저 사무실 복사용지를 줄이기 위해서 프린트물을 출력할 때 출력 실수를 줄이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면지를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뒷면을 사용했습니다. 한 달만 지나도 출력해서 한 번만 보고 버리는 종이가 제법 많이 쌓이더군요. 일반 사무실에서도 사무용지의 45%가 출력한 그 날 버려진다고 합니다. 나무 입장에서는 ‘하루살이도 아니고 이러려고 종이 됐나’ 자괴감이 들지 않을까요? 사무용의 하얀 종이는 질이 좋은 종이에 속합니다. 전국에 이 사무용지만 따로 모아서 재생용지를 만들어 사용한다면 한 해에 수백만 그루는 베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쓰고 있는 복사지 중 10%만 재생용지로 바꿔도 해마다 27만 그루의 나무를 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40%의 기업이 복사용지와 사무용지의 80% 이상을 재생용지를 선택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수요가 많은 만큼 재생용지를 많이 만들기 때문에 일반용지보다 가격이 더 저렴하다고 합니다. 재생지는 만들 때도 일반 종이를 만들 때보다 에너지와 화학물질을 더 적게 씁니다. 또 강한 흰색이 아니므로 눈의 피로감도 적습니다. 여러모로 재생용지를 사용하는 편이 더 좋은 것 같지 않나요? 우리도 독일처럼 재생용지의 상용화가 잘 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종이컵을 줄이기 위해서 한 것은 마음에 드는 텀블러를 사기 위해 2~3군데의 매장을 순회했던 것입니다. 전에도 텀블러를 들고 다니려고 몇 번 시도했었는데, 마음에 드는 텀블러를 사니 비로소 습관으로 정착된 것 같습니다. 텀블러를 사용한 후 매일 2~3개의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2008년 3월 20일에는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사용한 일회용 컵을 가져오는 고객에게 50~100원을 돌려주던 보증금 제도가 폐지되었습니다. 또 2008년 6월 30일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의 시행규칙이 개정됨에 따라 일회용 종이컵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개정되기 전에는 학교, 병원, 기숙사 등 식품접객업이나 집단급식소(1회 50명 이상에게 식사 제공)에서는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할 수 없었는데 말이죠. 이 결과 일회용 종이컵과 합성수지재질의 일회용 컵 사용량이 증가한 것은 불 보듯 뻔한 것이겠죠. 2010년 우리나라 연간 종이컵 사용량은 150억 개였습니다. 그 후 현재는 정확한 통계를 환산해 내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이곳저곳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이컵이 재활용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종이컵 안쪽에 방수하는 가공을 하면서 재활용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2020년부터 커피숍에서 종이컵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거라고 합니다. 우리도 종이컵을 대신 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휴지와 물티슈 사용량 줄이기. 손수건 사용하기, 종이 고지서 온라인으로 받기. 읽지 않는 월간지 해지하기. 노트, 메모지 충동구매하지 않기. 시장, 서점 갈 때 에코백이나 봉투 준비해 가기 등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종이를 아끼는 방법이 꽤 많이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잊어서 하지 못한 날도 있고, 주변에서 그렇게까지 하냐고 가벼운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종이를 사용할 때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거나 종이를 사용하지 말자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종이로부터 받는 고마움이나 즐거움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조금의 편리함을 내려놓으면 나무를 한 그루라도 덜 베게 되고, 숲에 사는 동물들의 집도 빼앗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종이 소비를 줄이는 것에 대한 제도와 인식이 부족해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http://change2020.org/) 에서 이와 관련한 카드뉴스를 미디어오늘에 보내왔습니다. 바꿈은 사회진보의제들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고 시민단체들 사이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2015년 7월에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 본 칼럼은 ‘작은것이 아름답다’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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