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계, ‘내부비판’ 못했던 ‘비판자’

“언론학계라면 내부의 문제에 대한 비판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얼마 전 MBC 해직 PD가 공영방송 이사로 참여하는 교수들을 거론하며 학계에 던진 쓴소리다. 다른 해직 기자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인 교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쓰기도 하였다. 그들은 방문진 이사를 지낸 교수들만 언급했지만, 방송사에 경찰을 불러들이고 감사원과 검찰을 앞세워 정권에 비판적인 사장을 불법으로 내쫓은 뒤, 정권의 낙하산 사장을 앉힌 KBS 이사장, MBC를 망가뜨린 특등공신 김재철 체제에서 ‘조인트 발언’으로 유명해진 방문진 이사장도 언론학 교수 출신이었다. 모든 지식인은 비판적 사고를 지향하지만 언론학은 특히 더 치열하다. 언론의 자유와 정치적 독립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권력과 자본에 비판과 견제 그리고 감시를 본질적 가치로 내면화한다. 공정성과 독립성은 언론학 존립의 기반이며 핵심적 속성이다. 언론학자라면 정치권력에 굽신대지 않는 비판의식이 체질화되었음 직도 하다.

▲ MBC를국민의품으로!공동대책위원회와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는 지난 7일 방송문화진흥회가 위치한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과 여당 추천 이사들은 공영방송 MBC를 박근혜 정권의 대변자로 전락시킨 방송 농단의 주범”이라며 차기 MBC 사장 선출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MBC를국민의품으로!공동대책위원회와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는 지난 7일 방송문화진흥회가 위치한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과 여당 추천 이사들은 공영방송 MBC를 박근혜 정권의 대변자로 전락시킨 방송 농단의 주범”이라며 차기 MBC 사장 선출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동안 언론학계는 언론과 언론인을 향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을 퍼부으면서도 내부 쪽으로는 뒤에서 겨우 수군거리는 정도였다. 어지간하면 서로 얼굴을 알고 있거나 학연을 비롯한 이런저런 끈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학계는 언론현실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이 없는 듯이 정권 탓, 자본 탓, 언론인 탓 타령만 늘어놓는 유체이탈 화법에 머물기 일쑤였다. 그런데 조금 반성을 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해 11월 한국언론학회·한국방송학회·한국언론정보학회 소속 학자들은 공동 성명에서 “정권에 장악된 공영방송은 국민의 입과 눈이 되기보다는 권력의 호위병으로 기능했다”며 “공정하고 책임 있는 언론 구조를 견인해내지 못한 책임을 우리 언론·방송학자들 역시 깊이 통감한다”고 선언했다.

‘훈수꾼’에서 ‘선수’로 뛰어든 언론학자, MBC 사장선임에 대해 해명하라

그러나 방문진은 학계의 선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권력의 호위병이 되어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유린하는데 맨 앞에 섰다는 지적을 받는 인물을 새 사장으로 뽑고 2012년 MBC ‘공정방송’ 파업 당시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를 ‘증거 없이 해고했다’고 실토한 인물을 부사장으로 선임하는 결정을 하였다. 이사인 학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계의 성명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함께 연구하고 언론현실을 고민하던 대다수의 학자들의 견해와 달랐다. 그렇다면 결정의 정당성이나 불가피성을 설명할 책임을 느껴야 마땅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바깥에서 섣부르게 성명서 따위나 내는 얼치기 학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일깨워 주어야 한다. 그래야 싸잡아서 비난받는 학문적 동료들도 어디 가서 구차하게나마 둘러대기라도 할 것 아닌가.

▲ MBC 김장겸 신임 사장이 2월27일 오후 방문진 이사회에 보고를 마치고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MBC 김장겸 신임 사장이 2월27일 오후 방문진 이사회에 보고를 마치고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대개의 학자들이 그렇듯 언론학자들은 현실에 대한 비판과 훈수꾼 노릇을 했다. 언론의 보도나 행태에 대해서 그럴듯한 이론과 논리를 들이대면서 평가했고 그게 학계의 몫이라고 치부해왔다. 현실에 어두운 책상물림의 한가한 소리일망정 학자들이 가진 사회적 권위 때문인지 언론인들이 맞대놓고 반박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 때문에 학자들은 자기도취의 오만함에 젖어 들어갔다. 그 한계는 심판자에서 현장의 선수나 감독으로 뛰어들었을 때 드러났다. 언론 현실은 책에 나오는 이론적인 환경이 아니라 갖가지 조건을 고려하여 판단하고 결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실은 이상이 아니기 때문에 차선 아니면 때로는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왜 자신이 쓴 책이나 글에서의 주장과 다르게 했냐고 따져 물을 때 대답이 궁색해질 수도 있다.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뾰족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애초에 진흙탕 근처에 얼씬거린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학자들은 고고한 체 고담준론만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연구한 언론이론을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는 존중받아야 한다. 적어도 자리나 잇속 또는 권력이 탐나서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거수기 비판받은 언론학 교수들, 현실 참여 행위에 공개적 평가 받아야

정부 여당이 추천하여 공영방송이사나 방송통신심의위원이 된 언론학 교수들이 오로지 진영의 논리에 휘둘려서 거수기를 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정치세력의 지침에 따라 패거리처럼 움직이는 꼭두각시 노릇을 한다는 모욕도 들었다. 언론학 이론에 대한 철학과 소신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상식조차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들에 대한 엄정한 평가는 나중에조차 이루어지지 않았고 한마디의 해명도 없이 슬그머니 학계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고는 또 현실에 참여하려고 이리저리 줄을 대려는 볼썽사나운 소식이 풍문에 들려온다. 누린 달콤함을 잊지 못한 때문이라고만은 하고 싶지 않다. 못다 이룬 언론 현실 개선을 마저 실현하려는 선한 의지로 받아들이고 싶긴 하다. 하지만 선한 의지의 진정성은 확인이 필요하다. 자신의 현실 참여 활동과 행위에 대하여 공개적인 논의와 토론을 통하여 평가받을 자세는 보여야 한다. 어쩌면 억울한 오해를 풀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 자칫하면 권력에 빌붙어서 그저 알량한 자리만 탐내는 사람들로 길이 남을지도 모른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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