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진술로 국민들을 우롱한 ‘최순실 게이트’ 부역자들이 무더기 재판에 넘겨졌다. 사회지도층으로서 국정농단 사태를 조장했음에도 진상 규명을 방해하면서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괘씸죄’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를 수사해 온 박영수 특검팀은 90일 수사 끝에 장·차관급 공무원, 교수, 의사 등 고위직 인사 13명을 위증(국회에서의증언·감정등에관한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모두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1월까지 진행된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이하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거나 최순실씨를 모른다고 일관한 인사들이다.

▲ 지난 2월20일 박영수 특검이 출근하는 모습. ⓒ포커스뉴스
▲ 지난 2월20일 박영수 특검이 출근하는 모습. ⓒ포커스뉴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이례적인 기소가 특검의 수사 의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지적한다. 위증죄는 '사실과 다른 진술'이 아니라 ‘증인의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했을 때 성립하기 때문에 명백한 정황이 포착되지 않는 이상 유죄 선고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그만큼 이번 특검이 사회지도층의 관성적인 범죄 은폐에 엄벌 의지를 표했다는 뜻이다.

특검이 기소한 13명은 △장·차관 등 고위공무원(6명) △학자(3명) △의사(3명) △재벌총수(1명) 등이다. 모두 정치적·사회적·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엘리트층’이다.

고위 공무원의 대부분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지원배제명단)’ 작성 및 집행 사실을 전면 부인한 피의자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해 12월7일 국조특위 청문회에 출석해 "블랙리스트니 뭐 좌파를 어떻게 해라 그런 얘기한 일이 없다" ""블랙리스트는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며 혐의를 부정했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또한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를 한 후 "블랙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 “나는 작성 경위와 누가 작성을 하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지금도 모른다" 등의 증언을 내놨다.

특검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및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에 대해서도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적용 사실을 부인했다는 위증 혐의를 적용했다.

최순실씨 비서 역할을 했던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은 지난 1월12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증인으로 나와 “최순실을 데리고 청와대에 출입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 바 있다. 특검이 위증죄를 적용한 증언이다.

장관·재벌 총수도 "그런 적 없다" 국민 우롱

나머지 한 명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특검은 그가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안에 대해 찬성 의결을 하도록 보건복지부 담당 공무원 등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이 있음에도 지난해 11월30일 청문회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고 보고 있다. 문 전 장관은 강요 혐의에 대해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그런) 보고를 받지 않는다”고 잡아 뗐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증인들이 2016년 12월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1차 청문회 산회 뒤 회의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 증인들이 2016년 12월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1차 청문회 산회 뒤 회의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 및 최순실씨에게 433억 원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유일한 재벌총수 출신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6일 청문회에서 “박 대통령과 독대 때 삼성물산 합병이나 기부금 출연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다” “(최씨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뒤에야 알았다” 등으로 진술했다. 위증 혐의가 적용된 대목이다.

최순실 말 잘 들은 ‘지식인’ 자기 혐의 감추기에만 급급

학자 출신 3명도 ‘거짓말 괘씸죄’에 걸렸다. 모두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입학·학사 특혜를 주도적으로 제공하고도 혐의를 부인한 이화여대 전·현직 교수다.

특검은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이 “최순실과 2015년 9월 경부터 수회에 걸쳐 만나면서 친분관계를 맺어 왔고, 위와 같이 정유라의 부정입학을 지시한 사실이 있음에도,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관련 사실에 대해 위증했다”고 밝혔다.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은 지난해 12월15일 청문회에서 △남궁곤 당시 입학처장에게 정유라씨의 2015학년도 수시모집 체육특기자전형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린 적 △제3자를 통해 정씨의 합격을 도와달라는 최순실씨의 부탁을 받은 사실 △정씨의 수강 과목 교수들에게 정씨 학점을 부여하라고 지시한 사실 등이 없다고 증언했다. 특검은 수사 결과 이 증언이 모두 허위라고 판단했다.

남궁곤 전 입학처장도 “정씨의 이화여대 입지 지원 사실을 전해 들은 바가 없다” “면접 과정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정유라)를 뽑으라 지시한 적 없다”는 취지로 증언한 바 있다. 특검은 이를 “피고인의 기억에 반하는 허위 진술”이라 밝혔다.

최씨의 측근이자 박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인 김영재 원장(김영재 의원 대표)·정기양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이임순 순천향대 교수 등 3인에게도 위증죄가 적용됐다.

김 원장과 정 교수는 대통령을 직접 시술했음에도 “한 적이 없다”고 잡아 뗀 의사들이다. 특검 수사 결과 김 원장은 2014년 5월부터 2016년 7월까지 대통령에게 5회 가량 보톡스 등을 시술했다. 정 교수는 2013년 3~8월 동안 대통령에게 필러 등 3회의 성형시술을 했고 ‘뉴 영스 리프트’ 시술을 계획했다.

이임순 교수는 김 원장의 부인인 박채윤 와이제이콥스메디칼 대표를 모른다고 잡아뗐던 의사다. 이 교수는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박채윤 대표를 "전혀 모른다"고 부인했으나 특검은 이 교수가 서창석 서울대학교병원 병원장에게 박 대표를 소개시켜 준 사실을 파악했다.

서창석 서울대학교 병원장은 박 대표의 회사가 개발한 봉합사(절개된 조직을 꿰매는 실)가 병원에 납품될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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