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다고 해서 욕하고 저주할 일인가요?”
지난달 3일 ‘연합뉴스’의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말이다. 연합뉴스 트위터는 어쩌다 독자에게 이런 트위터를 보내게 됐을까. 

지난달 3일 연합뉴스는 '남편 출근하자 "택배요"50대 주부 잔혹 살해 고교생 징역 18년'이라는 뉴스를 올렸다. 이에 한 트위터 사용자는 "연합뉴스 기자XX야, 여긴 왜 OO男 안붙이냐, 살인남고생, 살인남 많잖아"라고 공격했다. 이에 연합뉴스가 "그런다고 그렇게 화내고 저주할 일인가요?"반박한 것이다. 

다소 과격한 비꼼에도 트위터 여론은 연합뉴스의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연합뉴스가 공식 트위터로 한 답에 비판이 일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트위터리안이 연합뉴스 트위터로 "OO女를 기사 제목으로 사용하지마라"고 쪽지를 보냈으나 계속 무시한 탓이다. 한 트위터리안은 "그동안 연합뉴스에서 하고있는 여성차별에 대한 지적을 전부 보면서도 무시해놓고 남성에 OO男을 안붙인다고 비꼬니 바로 반응이 온다"고 비판했다.

▲ 연합뉴스 공식 트위터.
▲ 연합뉴스 공식 트위터.
1.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여성혐오 프레임

뉴스에서의 ‘OO女’표기는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여성혐오 프레임이다. 살해女, 채팅女, 동거女, 게임女, 워터파크몰카女부터 ‘용의女’라는 어색한 말까지 나왔다. 

이러한 제목 짓기 외에도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기사는 하루에도 수백건씩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정치·사회·경제·문화·연예·스포츠 등 뉴스가 다루는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각 분야별로 대표적인 여성혐오 기사를 꼽아본다면 다음과 같다. 정치면에서는 정치인이나 사회적으로 권력을 가진 이가 여성인 경우, 그 업적보다 외모나 패션, 장신구 등을 강조하는 보도다. ‘최순실 게이트’ 보도 당시 조윤선 전 장관의 화장 전후 모습을 보도하거나 최순실씨가 검찰 출석 당시 ‘프라다 신발’을 신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보도들이 대표적이다.

(관련기사: 지금까지는 남자들이 나라를 망쳤나?)

▲ 중앙일보의 ‘갈수록 초췌해지는 조윤선, 8일 사이 변화’, ‘'너무 다른' 조윤선의 화장 전후 모습’ 등 조윤선 전 장관의 화장 전후를 비교하는 기사.  이 기사들은 공직자가 아닌 ‘여성’으로서 조윤선 전 장관을 비하하고 있으며 중요한 사안이 아닌 외모를 부각시켰다. 여성인 공직자들에 대해 업무 외적인 외모나 의상들을 지적하는 전형적인 여성혐오 보도다.
▲ 중앙일보의 조윤선 전 장관의 화장 전후를 비교하는 기사.
이 기사들은 공직자가 아닌 ‘여성’으로서 조윤선 전 장관을 비하하고 있으며 중요한 사안이 아닌 외모를 부각시켰다. 여성인 공직자들에 대해 업무 외적인 외모나 의상들을 지적하는 전형적인 여성혐오 보도다.
사회면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OO女’외에도 성폭력 사건을 ‘몹쓸짓’으로 표현하는 등 성범죄를 죄질이 가벼운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제목들이다. 여성이 사건 피해자인 경우 자극적이거나 힘이 빠진 피해자의 모습을 부각하는 일러스트, 사진 사용 등도 문제다.

연예매체나 스포츠 기사에서의 여성혐오는 필수요소로 보일 정도다. 연예매체 대부분의 기사가 여성 연예인의 몸매를 부각한 사진 기사다. 여성 연예인이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몸매가 좋은지, 얼마나 자극적인지를 설명하는 기사가 대다수다. ‘여성혐오’개념에는 여성을 비하하는 것뿐 아니라 여성을 숭배하거나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 모두가 포함된다. 이러한 기사들은 여성의 몸을 ‘감상하는 몸’으로 만들고 끊임없이 여성들에게 획일된 미의 기준을 강요하는 결과를 낳는다. 스포츠 기사에서도 여성 스포츠인은 실력과 관계없이 ‘흑진주’, ‘섹시 여전사’ 등의 표현에 쌓여 눈요기 거리가 된다.

이민경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작가는 “남성이 인간의 기본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굳이 기사제목에 ‘女’라고 붙이는 이유를 알 수 없다”라며 “또한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고 선정적인 사진을 넣거나 힘이 빠져있는 피해자의 모습을 부각하는 경우, 뉴스를 보는 사람들은 피해자의 모습에 고정관념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언론은 성폭행 사건에 가해자 남성이 아니라 피해자 여성의 이름은 붙이기도 한다. 나영이사건으로 불린 조두순 사건. 사진=포털사이트 다음 검색 결과 캡쳐
▲ 언론은 성폭행 사건에 가해자 남성이 아니라 피해자 여성의 이름은 붙이기도 한다. 나영이사건으로 불린 조두순 사건. 사진=포털사이트 다음 검색 결과 캡쳐
이외에도 방송 뉴스에서 메인 앵커가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과 중년 남자 기자와 젊은 여성 아나운서라는 조합도 눈여겨봐야 한다. 여성 앵커는 남성 앵커와 달리 외모적인 면이 뛰어나다. 남성앵커는 정치뉴스나 사회뉴스를 전하지만 여성앵커는 이를 보조하거나 경제뉴스 등을 전한다. 기상캐스터의 역할 역시 지적할 수 있다. 방송사 메인뉴스의 기상캐스터는 대부분 여성이다. 외모가 뛰어난 기상캐스터가 몸에 밀착되는 옷을 입고 날씨를 전하는 모습이 전형적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한 토론회에서 “뉴스에서 남성 앵커와 여성 앵커의 역할론도 지나치게 구분되어 있다”라며 “왜 ‘여성 손석희’는 나오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남성 앵커는 주요 뉴스를 보도하고 여성 앵커는 보조하는 식의 역할을 하는데 마치 뉴스 프로그램에서조차 여성이 ‘꽃’으로만 기능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고 분석했다.

2. 예능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여성혐오 프레임

뉴스에서 제일 쉽게 찾을 수 있는 여성혐오가 ‘OO女’라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여성 연예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여성이 예능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왜 여성혐오냐, 여성 예능인의 실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시청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예능프로그램에서 여성 예능인이 나올 수 없는 것은 ‘유리천장’ 현상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기 프로그램에서 여성 연예인은 보조적인 역할, 남성 연예인과 짝을 맞추는 역할로만 소비된다. 여성이 미디어에서 2등시민 취급을 받고있다는 것이다.

잡지 ‘GQ’ 2월호에서 칼럼니스트 복길은 ‘2017년 TV는 한국 남자를 싣고’에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모든 예능을 남성이 장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요일 ‘냉장고를 부탁해’(JTBC)는 김성주와 안정환이 MC를 보고 대결하는 셰프들 모두 남성이다. ‘냉장고를 부탁해’이후 방영되는 ‘비정상회담’에서는 12국가의 ‘남성’외국인들이 나와 토론을 벌인다. 유세윤, 성시경, 전현무 등 세명의 MC 모두 남성이다.

▲ JTBC 비정상회담의 패널 구성. 전부 남성이다.
▲ JTBC 비정상회담의 패널 구성. 
화요일 ‘살림하는 남자들’(KBS2)에는 백일섭, 정원관, 일라이가 살림하는 모습을 칭찬하는 프로그램이다. ‘뭉쳐야뜬다’(JTBC)는 김용만, 김성주, 안정환, 정형돈이 진행을 맡는다. 수요일 MBC의 장수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역시 김국진, 김구라, 윤종신, 규현 모두 남성이다.

목요일 ‘해피투게더’는 유재석, 박명수, 전현무, 조세호, 엄현경이 진행을 맡는다. 엄현경이 여성 진행자이긴 하지만 그의 역할은 게스트가 나오는 당시 ‘짝짓기’의 대상이 되는 식이었다. 금요일 JTBC의 ‘아는형님’ 역시 강호동, 서장훈, 김영철, 이수근, 김희철, 민경훈, 이상민이 출연한다. 예외없이 모두 남성이며 이 프로그램은 게스트로 출연하는 여성들을 짓궂게 놀리고 남성끼리 낄낄대는 식의 연출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 JTBC '아는형님'
▲ JTBC '아는형님'
주말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무한도전’(MBC), ‘1박2일’(KBS), ‘런닝맨’(SBS), ‘슈퍼맨이 돌아왔다’(KBS2), ‘어쩌다 어른’(tvN), ‘문제적 남자’(tvN)…모두 남성 출연진들 위주의 프로그램이다.

복길 칼럼니스트는 GQ의 칼럼에서 “여성들은 예능에서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여자친구로 등장(‘우리 결혼했어요’, ‘최고의 사랑’,‘신혼 일기’,‘엄마가 뭐길래’)하거나 기존 남성예능의 하위버전 프로그램(‘무한걸스’,‘비디오스타’)에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복길 칼럼니스트는 “같은 연차의 남성 연예인들만큼 영역이 보장되지 않은 여성 연예인들은 그에 따라 자신의 재능을 대중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고, 그렇게 제외된 시간만큼 역량이 도태되는 것이 과연 공평한가”라고 제작진의 입장에서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 드라마에서 보이는 여성혐오 프레임

드라마도 여성혐오의 주체에서 예외는 아니다. ‘데이트 폭력’을 낭만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또오해영’(tvN)에서는 남자주인공이 여성주인공을 차에 태우고 차창을 격파하는 장면이나 ‘벽치기 키스’를 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우리갑순이’(SBS)에서도 여성이 남성에게 이별을 선언하자 남성이 여성을 골목길로 끌고가서 벽에 밀치고 키스를 한다. ‘우리갑순이’의 경우 시청자의 민원이 제기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됐지만 ‘문제없음’ 의견이 나왔다. 데이트폭력을 미화하는 드라마의 역사는 길다. ‘미안하다 사랑한다’(KBS2,2004)에서 소지섭은 여성을 차에 태우고 “나랑 사귈래, 나랑 죽을래?”라며 거칠게 차를 몰았다. 이후 시크릿가든’(2010, SBS)에서도 여성이 스킨십을 거부해도 강행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 SBS '우리갑순이'
▲ SBS '우리갑순이'
한편 JTBC의 ‘청춘시대’의 경우, 이런 데이트폭력이 문제라는 점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전략을 사용했다. 폭력적인 남성에게 이별을 고한 여성 주인공은 감금을 당하고, 입에 청테이프까지 붙이고 폭행을 당한다. 폭력을 낭만화하지 않고 사회문제로 인식할 수 있도록 보여준 것이다. 이외에도 △가부장적 성역할 강조 △외모비하적 발언 △‘여적녀’(여자의 적은 여자)구도를 의식한 삼각관계 강조 등도 드라마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여성혐오 프레임이다.

대중문화매거진 ‘아이즈’는 지난해 미디어에서 보여준 여성혐오 사례 32개를 모아 ‘2016 여성혐오 엔터테인먼트’라는 책을 발간하기까지 했다. 이 책은 “신데렐라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드라마 속에서, 여성에게 ‘낮에는 정숙하고 밤에는 요부’가 될 것을 원하는 노래 가사에서, 여성의 외모를 조각내 품평하는 대중의 반응 속에서 여성혐오는 수없이 존재했다”고 지적했다. 

이책은 “스스로를 멋진 남성으로 포장하기 위해 여성을 비하하는 일은 멋진 것이 아닌 폭력적인 것이며,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성들이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는 일 역시 웃긴 것이 아닌 모욕이다”라며 “드라마부터 예능까지, 인디 밴드의 발언부터 래퍼의 가사까지, ‘엔터테인먼트’라 소개되는 모든 곳에는 여성혐오가 있다”고 책을 발간한 동기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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