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산주의가 무너지게 하옵소서. 공산주의를 따라오는 사람이 없게 하옵소서. 자유민주주의의 기반 하에 남북이 통일되도록 하옵소서.”

날이 흐린 3월1일 서울 광화문 광장, 태극기를 든 시민들은 하나님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3.1절은 약 100여년 전인 1919년 3월1일 일본의 강제점령에 맞서 태극기를 분연히 들어올렸던 순국선열을 기리는 날이다. 100여년 이후 오늘, 일부 국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북한을 규탄하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기도회에 나섰다.

오전 11시부터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이 주최한 3.1만세 운동 구국기도회가 열렸다. 대한독립만세 삼창과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 등이 이어졌다.

이날 구국기도회는 나이가 지긋한 50대 이상 어르신들이 다수였지만, 20~30대 젊은 층도 적지않게 눈에 띄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엄마들과 아이를 어깨에 무등태운 젊은 아빠들, 머리에 태극기 무늬의 헤어밴드를 한 꼬마아이까지 기도회에서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었다.

▲ 3월1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열린 구국기도회에 참석한 시민들. 사진=차현아 기자.
▲ 3월1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열린 구국기도회에 참석한 시민들. 사진=차현아 기자.
10대 청소년들도 무리지어 기도회에 참석했다. 이번에 중학교 3학년이 됐다는 이아무개양(16세)은 친구와 함께 기도회에 참석했다. 이양은 “나라를 위해 기도하러 왔다”며 “다니는 교회에서 같이 가자고 했다.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족과 함께 나온 김순호(37세)씨도 “특검도 그렇고 언론도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갔다. 탄핵 전 죄가 발각되고 가야 하는데 박 대통령은 무조건 물러나야 한다는 전제가 다 돼있지 않았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자신을 크리스찬이라고 밝힌 김씨는 “태극기 집회에는 처음 나왔다”며 “SNS를 봤는데 언론도 너무 촛불집회만 부각하는 모습”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거짓과 분열이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반대를 외치는 이들의 말 속에 서린 분노도 그저 확신없이 터트린 분노라고 치부할 수는 없었다. 김씨는 기자에게 “태블릿PC가 조작됐다는 의심은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손석희 앵커의 해명도 봤지만 다른 경로로 조작됐을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면서도 “태블릿PC에 담긴 자료를 보면 국가 기밀문서가 노출된 건 맞는 것 같다. 그건 문제”라고 답했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찬송가를 따라부르고 단상 위의 목사 설교에 일제히 아멘을 외쳤다. 그러나 구국을 위해 모인 이들의 바람에는 3.1운동과 호국선열의 뜻을 기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내용만 담기지 않았다. 참가자들의 손에는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얼굴이 인쇄된 '과거'의 깃발이 함께 들려있었다. 이스라엘의 국기를 들고 있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 한 구국기도회 참가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있다. 사진=차현아 기자.
▲ 한 구국기도회 참가자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있다. 사진=차현아 기자.
집회가 진행되는 곳곳에서 박근혜 대통령 얼굴이 인쇄된 깃발들이 보였다. 기도회가 진행되는 주변에서는 ‘황교안 2017’, ‘울지 마세요 박근혜’ 등의 책을 파는 상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이영훈 한기총 대표회장은 “공산주의는 절대 안된다”며 “불의와 공산주의는 안된다. 공산당은 망해야 한다”고 외쳤다. 기도회에 참석한 이들은 “아멘”이라며 이에 답했다. 이 회장은 “자유주의 기반 하에 남북통일이 되도록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참석자들은 역시 이에 “아멘”이라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정치권에 대해서도 국론 분열을 해결하고 사회 통합을 위해 힘써줄 것을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아멘”이라며 화답했다.

국론 분열을 막아 대한민국을 구원해야 한다면서도 일부 참가자들이 쏟아낸 말에는 한결같이 척결과 축출 등 같은 국민들을 힘껏 다른 쪽으로 밀어내려는 배타적인 어휘들이 짙었다. 3.1운동의 뜻을 기린다며,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특정 세력에 대한 분노와 함께 국가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짐짓 결연한 의지도 엿보였다.

▲ 3월1일 구국기도회에서 한 참가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그려진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차현아 기자.
▲ 3월1일 구국기도회에서 한 참가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그려진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차현아 기자.
시청에서 사전 집회를 마치고 구국기도회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 방향으로 행진하는 시민들의 사진을 찍으려 가까이 다가가자 한 50대 여성이 기자에게 다가왔다. 기자에게 “당신 스파이가 아니냐”며 기자의 휴대폰 사진을 보자며 떼를 썼다. 기자는 “같은 시민인데 여기 어디에 스파이가 있느냐”며 항변했다. 기자는 왜 집회에 참여했는지를 물었다.

“나는 (기자를 가리키며) 젊은 사람들을 위해 나왔어. 너네 위해 나는 저 광장에서 죽을 수도 있어. 우리가 무슨 힘이 그렇게 있다고 여기까지 나왔겠어. 지금 나라 위기야. 3.1절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 지금 젊은 세대들은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잘 모르고 있어.”

기자 근처에서 광화문 광장을 향해 걷던 한 이아무개씨(32세)에게 확성기를 들고 행진하던 집회 참가자는 “당신 어디서 나왔냐”며 신분을 따져물었다. 이씨는 “지나가는 시민”이라고 답했다. 집회 참가자는 “당신은 태극기를 들고 있지 않다”며 미심쩍은 눈으로 이씨를 훑었다.

▲ 3월1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기총과 한국교회연합 등이 주최한 구국기도회가 열렸다. 사진=차현아 기자.
▲ 3월1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기총과 한국교회연합 등이 주최한 구국기도회가 열렸다. 사진=차현아 기자.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74세 남성은 “박근혜는 전혀 잘못이 없다. 있긴 하지만 탄핵감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남성은 “지금 이 상태에서 탄핵되면 내전이다. 황 총리가 특검 연장을 막은 것은 큰 공이다. 앞으로도 그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설명했다.

기도회가 진행될수록 '00교구' 라는 팻말을 앞세운 무리들이 줄지어 합류하면서 인파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오후 2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태극기집회는 서울 도심 곳곳으로 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오후5시부터는 촛불집회도 예정돼있어 대규모 행진으로 인한 충돌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3.1절을 맞은 대한민국 3월1일의 날씨는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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