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이 검찰과 법원을 주목하고 있다. 박영수 특검의 수사 기간이 끝나면서 검찰은 특검팀이 완료하지 못한 수사를 이첩받는다. 동시에 특검은 유죄 선고를 이끌어내기 위한 공소 유지에 돌입한다. 기존 검찰 지휘부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과연 검찰이 수사 의지를 갖고 국정농단 사건 관련자를 끝까지 추적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될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진상을 조사해 온 박영수 특검팀은 지난달 28일 수사를 종료했다. 지난해 12월21일 수사를 개시한 지 70일에, 수사 준비 기간 20일을 더하면 90일 만이다. 특검팀은 수사를 완료하지 못했거나 시작도 하지 못한 대상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수사 기간 30일 연장을 요청했으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 박영수 특검(가운데).
▲ 박영수 특검(가운데).

‘30명 싹쓸이 기소’ 전례없는 특검

박영수 특검에 대한 법조계의 평가는 후하다. 수사 기간 90일, 파견검사 20명 등 제한된 조건에 비춰 특검이 13명을 구속시키고 30명을 기소한 것은 놀라운 성과라는 평가다. 악조건에도 △삼성그룹-박 대통령 및 최순실 간 뇌물 거래 수사 △‘문화계 블랙리스트’ 수사 △이화여대 학사 농단 수사 △'비선진료' 의료법 농단 수사 등 폭넓게 수사를 진행했다.

과거 특검과 비교하면 박영수 특검의 성과는 더욱 뚜렷하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특검(이광범 특별검사)의 경우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나머지 배임 혐의 피의자는 불구속 기소에 그쳤다.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주가조작 등에 관한 ‘BBK 특검’(정호영 특별검사)에서도 피의자 전원이 무혐의 처분을 받아 특검 무용론이 제기된 바 있다.

성역없는 수사를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도 있다. 특검이 ‘치외법권’이라 알려진 삼성그룹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부터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비롯한 전·현직 장차관급 공무원을 구속했기 때문이다. 이재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우병우·김기춘을 비롯해 검찰이 손대지 못한 전현직 장관들에 과감히 메스를 댔고 이 점이 의미가 크다”며 “삼성 일가는 70년 동안 정경유착의 핵심이었는데 검찰은 단 한번도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못했다. 박영수 특검팀이 아니었으면 해낼 수 없는 것”이라 평가했다.

특검팀은 수사 종료 시일인 28일에 그동안 기소하지 않은 피의자 19명(추가 기소 포함)에 대해 ‘싹쓸이’ 기소 처분을 내렸다. '비선진료' 의료법 농단 관계자 4명, 정유라 학사 비리 관련자 7명, 삼성그룹-최순실 간 뇌물 비리 관련 5명, ‘대포폰’ 개설자 이영선 등 기타 피의자 3명 등이 재판에 넘겨졌다.

우병우 수사는 왜 특검 앞에서 멈췄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유난히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특검이 강제력을 동원했다면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수수색이 가능했다는 점에서다. 법 원칙에 따르면 필수 증거를 눈 앞에 둔 상황에서 압수수색 강제 집행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특검은 행정소송을 동원하는 등 우회로를 택했다는 것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조사를 받기 위해서 소환되고 있다. 자료사진.ⓒ민중의소리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조사를 받기 위해서 소환되고 있다. 자료사진.ⓒ민중의소리

법조계 일각에선 특검이 대통령 불소추 특권을 필요 이상으로 확대해석했다고 본다. 이재화 변호사는 “불소추 특권은 수사는 할 수 있고 기소를 못한다는 것”이라며 “청와대가 몇 차례에 걸쳐 소환에 불응했는데 (피의자 조사는) 피의자와 협의하는 문제가 아니라 수사기관이 알아서 할 문제다. 결국 수사에 불응한 것인데 체포영장을 발부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수사 기록 전체가 검찰에 이첩될 ‘우병우 전 민정수석 수사 건’이다. 특검이 아니면 제대로 수사할 수 없는 부분이었음에도 그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이재화 변호사는 “(수사 우선 순위와 관련해) 적어도 김기춘 수사 때 병행해서 해야 했다”면서 “검찰이 수사 의지를 보일 거라 하지만 검찰총장, 중앙지검 인사 등 각종 요직 인사를 우병우 사단이 장악하고 있다는 건데 팔이 안으로 굽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 회장은 특검이 2014년 ‘정윤회 문건 사태’ 당시 우 전 수석의 수사 개입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것을 오점으로 꼽았다. 당시 문건 사태가 비선실세 수사가 아닌 청와대 문건 유출 수사로 선회해 마무리된 후 황교안 당시 법무부장관은 총리로, 김수남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으로 ‘승진’했다. 백 교수는 이렇게 조성된 ‘우병우 라인’을 손보지 않으면 현재 검찰에서 수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고 지적했다.

남은 과제는 유죄 선고, 특검 ‘매머드급’ 변호사와 맞붙는다

특검에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공소 유지’다. 특검은 ‘매머드급’ 변호인단을 기용할 수 있는 거물 인사를 기소한 데다 최종 기소자 수만 30명이다. 이규철 특검보는 "특검보 혼자서 (삼성 측) 변호사 수십 명과 상대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법무부는 파견검사 8명을 특검팀에 남기기로 결정했다. 수사팀장 역할을 맡았던 윤석열 대전고등검찰청 검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파견검사와 더불어 수사관 5명도 특검에 당분간 남아 공소 유지를 도울 예정이다.

공소 유지 역할을 부여받은 특검 및 특검보 5인은 특검법 제14조에 따라 “판결이 확정돼 보고서를 제출한 때에 당연히 퇴직”한다. 판결의 확정은 최대 7개월 정도가 걸릴 수 있다. 특검법은 특검이 공소제기한 재판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제기일부터 3개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선고일부터 각각 2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고 정한다.

국정농단 부역자들의 무죄 선고 가능성을 배제할 수없는 상황에서 특검은 공소 유지에 총력을 다할 전망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경우 김기수 전 검찰총장을 비롯해 헌법재판관 출신인 김문희 법무법인 신촌 대표 변호사, 이종찬 전 서울북부지법원장등 전관 출신 변호사들을 대거 선임했다. 특검 수사 종결 이후를 더 주목해야 할 이유다.

탄핵 후 박 대통령 수사 분수령… 검찰의 우병우 수사, 국민이 보고있다

남은 수사 과제는 크게 △박 대통령 ‘뇌물혐의’ 등 수사 △우 전 민정수석 직권남용·개인비리 등 수사 △삼성 외 대기업 수사 △이재만·안봉근 비서관 등 남은 주범 수사 등이다. 특검법 제9조에 따라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장, 즉 서울중앙지검장이 특검으로부터 이첩받을 수사 대상이다.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월21일 오전 10시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치열기자
▲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월21일 오전 10시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치열기자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은 수사 향방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탄핵이 기각되면 박 대통령은 즉각 복권돼 검찰청, 법무부를 비롯한 정부 조직 인사권을 휘두를 수 있다. 수사 의지가 위축될 뿐더러 수사 가이드라인이 내려와 수사 자체가 축소될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에 대한 강제 소환 조사가 불가능해지면서 최씨 등의 국정농단 사태 및 박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규명할 수 없게 된다.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는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난항을 겪을 수 있다. 특검조차 ‘검찰을 건들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는데 검찰이 자기 ‘식구’를 수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박영수 특검팀은 우 전 수석의 이석수 특별감찰관 수사 방해 혐의에 연루된 법무부 및 민정수석실 내 검찰공무원들을 수사하지 않았다.

특검팀은 우 전 수석의 개인 비리 혐의를 비롯해 보강 수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우 전 수석 수사 건을 검찰에 이첩하기로 했다.

롯데그룹, SK그룹, CJ그룹, 부영 등은 수사 연장이 될 경우 특검 수사 제1순위 대상이었다. 이규철 특검보(대변인)는 “수사기간이 연장되면 다른 대기업 수사를 할 것”이라며 “아직 수사하지 않은 나머지 대기업 수사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특검팀이 같은 취지로 의견서를 전달할 것으로 보여 서울중앙지검도 대기업 수사에 적극 나설 여지가 있다.

이화여대 학사 농단의 경우 정유라를 제외한 피의자 전원이 기소됐다. 정씨만 귀국하면 학사 농단 수사는 완료된다. 덴마크 법원은 오는 3월22일까지 정씨에 대한 구금연장을 결정했다. 정씨는 법원의 송환 결정에 항소할 계획이어서 강제 송환까지 3개월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불법 체류 등의 혐의로 현재 덴마크 올보르 구치수에 수감돼있다.

서울중앙지검이 최씨의 공소장을 어떻게 변경할 지도 쟁점이다. 특검은 최씨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를 적용했다. 최씨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특검은 최씨에게 정씨 학사비리와 관련해 업무방해·공무집행방해·사문서위조죄 혐의를, 그 밖에 범죄수익은닉에 관한 법률 위반, 알선수재 등도 적용해 28일 추가 기소했다. 최씨에 대한 공판이 원만하게 진행되려면 서울중앙지검장의 공소장 변경 지휘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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