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보고 놀랐다. ‘손석희 거짓말’ ‘변희재의 의혹제기’ ‘태극기 집회 몇 백만 참가’ 이런 뉴스들이 떴다. 촛불집회 참가자와는 완전히 다른 뉴스를 보고 있었다.”

나의 페이스북에는 어느 언론사의 뉴스가 가장 많을까? 청년들이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과정에 참가한 청년들은 메디아티(스타트업 미디어 지원기관), 중앙일보와 함께 해외에서 논란이 된 SNS의 ‘필터버블’이 한국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파악하는 기획기사를 선보였다.

필터버블은 개인화된 알고리즘을 통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돼 생기는 확증편향 현상을 말한다. 개발팀 한소영(27), 신동민(24), 박솔(27), 박상현(29)씨를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장충동 메디아티 사무실에서 만났다.

▲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중앙일보팀. 왼쪽부터 한소영(27), 신동민(24), 박솔(27), 박상현(29).
▲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중앙일보팀. 왼쪽부터 한소영(27), 신동민(24), 박솔(27), 박상현(29).

필터버블 기획기사는 3가지로 나뉜다. 자신의 페이스북 뉴스피드에 어떤 언론의 기사가 주로 뜨는지 보여주는 콘텐츠가 간판이다. 신동민씨는 “어떻게 하면 필터버블 문제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을 했는데 정치적 스탠스가 분명하지 않거나 필터버블의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내 얘기’가 아니면 공감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뉴스피드 분석’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2일 오픈한 ‘뉴스피드 분석’서비스는 페이스북 뉴스피드 게시물을 최대 200건 추출해 △뉴스피드에서 기사가 차지하는 비율 △상위 3개 언론 이름 △나와 같은 언론을 받아보는 친구가 누구인지 보여준다.

처음부터 ‘필터버블’ 분석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원래는 ‘가짜뉴스’ 이슈로 기사를 만들 계획이었다. 신동민씨는 “처음 공부를 할 때 메디아티에서 보여준 주제 리스트 중 ‘가짜뉴스’가 있어 흥미를 갖게 됐다”면서 “원래 하려던 아이템은 ‘아이폰이 갤럭시보다 낫다는 걸 삼성이 공식인정했다’는 내용의 가짜뉴스를 직접 만들고 뿌린 다음 유통경로를 추적해 지도로 만들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글과 중앙일보는 가짜뉴스를 직접 만드는 건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아이템으로 채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동민씨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와 기획이 엎어진 다음 가짜뉴스가 전파되는 유통구조에 집중해 필터버블 문제를 다루게 됐다”고 말했다. 박솔씨는 “기존에 기획한 기사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어 좀 더 고민하게 된 결과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중앙일보팀의 필터버블 기획기사 갈무리.
▲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중앙일보팀의 필터버블 기획기사 갈무리.

필터버블 두 번째 기사 ‘우리가 살고 있는 반쪽짜리 세상’은 미국 대선에서 나타난 필터버블 사례를 지적하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존과 마이클이 미국 대선 과정에서 전혀 다른 뉴스를 보고 판이하게 다른 생각을 하는 내용이다.

현재 제작 중인 세 번째 기사 ‘버블에 갇힌 사회’는 한국 상황을 조명한다. 미국에서 지난 대선 기간 필터버블 문제가 대두됐다면 한국에선 탄핵 정국에서 같은 문제가 벌어졌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태극기 집회와 촛불집회 참가자의 뉴스피드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짚는다.

취재 결과 한국도 미국처럼 ‘필터버블’이 심각했을까. 개발팀은 확신하기 힘들다고 밝히면서도 심각성을 알게 됐다. 박상현씨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을 취재할 당시 “JTBC에서 가짜보도를 한다”면서 “우리 목소리를 카메라에 담아 달라”는 하소연을 들었다. 그는 “18일 집회 때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가 더 많아 보여서 놀랐다”면서 “저 스스로도 어느 정도 필터버블에 갇혔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신동민씨는 “필터버블이 있는지 조사하는 단계에서 익명의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극우에 가까운 페이지들에 ‘좋아요’를 해 보니 생전 받아본 적 없는 뉴스가 뜨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소영씨는 “사안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필터버블이 미국처럼 심각하다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쉽게 휘둘리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중앙일보팀의 '뉴스피드 분석기'.
▲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중앙일보팀의 '뉴스피드 분석기'.

콘텐츠 고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용자가 접속한 시점의 뉴스피드 게시물을 추출하기 때문에 조사를 할 때마다 순위가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나곤 한다. 신동민씨는 “운영 과정에서 문제점들이 발견됐다. 시간에 따른 변수도 있었고, 이 기사가 중앙일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유되니 당연히 ‘중앙일보 좋아요’를 누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처럼 편향된 데이터는 지속적으로 보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크롬에서만 분석이 가능한 점은 한계다. 신동민씨는 “막상 해보니 페이스북에서 직접적으로 정보 제공을 해주지 않아 크롬이 복사한 정보를 순간적으로 가져오는 방식”이라며 “다른 브라우저에서는 작동되지 않는다. 대신 크롬 설치 안내를 연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팀은 이용자들의 테스트 결과를 취합해 분석자료도 준비하고 있다. 신동민씨는 “개인별로 분석기를 돌린 정보를 통계로 가공할 수 있다. 어느 언론이 가장 많은지 알 수 있고, 매체별로 얼마나 유사한 성향으로 묶이는지 ‘클러스터링’을 통해 필터버블을 시각화해 바라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가 신선하지만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만 회자되고 정작 일반 이용자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개발팀 역시 그 점을 아쉬워했다. 박솔씨는 “뉴스피드 분석기가 생각보다 활성화되지는 않았다”면서 “3번째 기사에서 일반인들이 더 공감할 수 있는 구성을 통해 ‘분석기’에 대한 관심을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발팀은 협업 중심의 프로세스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보탬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개발팀 4명의 역할은 개발, 영상, 기획, 디자인으로 나뉘었지만 기본적으로 기획 역할을 겸하는 ‘협업’을 했다. 기획팀이 실무팀에 ‘지시’하는 구조인 기존 언론과는 다른 방식이다. 이는 언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동민씨는 “개발자는 개발자끼리만 소통할 것 같았는데 여기는 디자이너, 영상, 기획파트가 서로 협업을 했고 개발자라고 해도 기획에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박솔씨 역시 “영상은 영상만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디자인되고, 어떤 기획에 적합한지 등을 함께 논의하는 게 중요했다. 기존 언론은 이 점을 아직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9주라는 기간 내에 달성해야 하는 프로젝트다보니 시간에 쫓기거나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솔씨는 “2월28일 프로젝트가 끝나지만 우리 팀은 3월 중에도 작업을 더 할 계획”이라며 “두달이라는 기간이 촉박해 콘텐츠를 만들기 힘들다”고 아쉬워했다.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은 구글코리아가 기성 언론과 청년을 9주 동안 연결해 미디어 혁신에 관련된 교육, 체험, 뉴스 제작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달 28일 뉴스랩 2기 활동이 종료됐으며 메디아티가 운영진으로 참여했다. 2기 참가자들은 KBS, 중앙일보, 매일경제, 시사IN, SPOTV와 협업을 진행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