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탄기국(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은 점점 더 격렬한 단어를 쏟아 붓고 있다.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은 “졸속 탄핵이 이뤄질 경우 참극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고했고, 박근혜 대리인단 소속 김평우 변호사는 “탄핵이 인용되면 아스팔트 길이 피와 눈물로 덮일 것”이라고 유혈사태를 경고했다. 최근 서울 평창동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 집 앞에는 새벽부터 집 주변을 배회하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태블릿PC조작진상규명위원회란 단체의 집행위원인 변희재씨는 지난 25일 태극기 집회에서 “태블릿PC조작을 보도하지 않는 무식한 기자들 때문에 손석희가 버티고 있다”고 주장하며 “손석희, 박효종, 강일원, 이정미는 빨리 (박근혜를) 탄핵 시켜서 문재인 정권만 세우면 자기들이 살 거라 착각하고 있다”, “당신들의 안위는 누구도 보장하지 못한다”, “탄핵 절차를 중단하고 손석희부터 구속하라”고 외쳤다.

변희재씨는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종북 주사파라고 했다가 2심에서 15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방송인 김미화씨에게 친노종북이라고 했다가 1심에서 8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방송인이자 정치인 문성근씨가 2013년 이아무개씨가 박근혜정부를 비판하며 분신한 사건을 사전 기획했다고 주장했다가 1심에서 3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당시 분신 사건이 친노종북의 조직적 행동이라고 했다가 1심에서 유족들에게 위자료 600만원 지급 판결을 받은 사람이다.

변씨는 방송인 낸시랭이 친노종북이라고 했다가 2심에서 4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이재명 성남시장을 종북·매국노라 했다가 2심에서 400만원 배상판결을 받았으며 김광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명예를 훼손해 1심에서 징역6개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받았다. 이런 가운데 변씨를 ‘또라이’라고 말한 탁현민씨는 얼마 전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렇듯 상습적인 ‘명예훼손유발자’ 변씨의 주장도 태극기 집회현장에서는 환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애국 제1지침’=고영태와 손석희를 물고 늘어져라

▲ 지난 9일 방송회관 앞에서 자유통일유권자본부의 '왜곡·선동 언론 규탄' 집회의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9일 방송회관 앞에서 자유통일유권자본부의 '왜곡·선동 언론 규탄' 집회의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광장을 혐오의 공간으로 만든 탄기국의 주요 주장은 “박근혜·최순실은 고영태 일당이 기획한 국정농단사태의 피해자이며 그 증거는 고영태 녹취록이다”와 “주류언론의 조작·과장보도로 촛불이 일어나 대통령이 탄핵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보도’와 일명 ‘고영태 녹취록’에 집착하고 있다. 내부 폭로자인 고영태를 사건의 기획자로 둔갑시키고 국정농단 스모킹건이 된 JTBC보도가 조작이란 프레임은 이미 헌재에서 ‘기각’됐으나 태극기집회에선 여전히 강력한 ‘주술’이다.

고영태 녹취록으로 불리는 2391개의 파일을 모두 분석한 JTBC ‘스포트라이트’ 보도에 따르면 녹취록 대부분은 녹음자인 김수현의 개인적 통화내역이고 업무 관련 파일은 1083건, 그 중 고영태가 등장한 파일은 252건이었다. 탄기국의 주장은 이 녹취록에 내란 음모가 담겨있다는 것인데 녹취에서 집중 거론되는 것은 내란 음모가 아닌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도사리 842번지 땅이었다. 이 땅의 주인은 최순실·정유라다. JTBC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이 땅이 규제프리존이 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었다. 규제프리존 특별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최순실이 산악관광특구로 재미를 보려했던 대목으로, 또 하나의 국정농단 증거였다. 녹취에 따르면 고영태의 불만은 대형 프로젝트를 독점하던 차은택에 집중돼있었다.

2016년 10월24일 JTBC가 보도한 최순실 태블릿PC가 실제 최순실의 것이라는 사실은 검찰이 확인하고 특검이 인정하고 최순실 게이트 연루자가 증언해도 믿지 않고 있어 상식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검찰은 “다른 증거로 최순실 국정 농단이 충분히 입증된 만큼 태블릿PC 관련 논란은 사안의 본질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헌재도 태블릿PC 감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최순실과 정호성 전 비서관 등에게 압수한 휴대전화와 컴퓨터, 이메일 송수신 내역에 수많은 국정농단 증거가 있고, 특검이 장시호를 통해 최순실의 또 다른 태블릿PC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론의 조작·왜곡보도로 대통령이 탄핵됐다는 주장은 ‘신의 한 수’, ‘정규재TV’, ‘참깨방송’, ‘애국채널 SNS TV’, ‘최대집의 지하통신’ 등 친박·극우성향 유튜브 방송의 활성화와 종이신문형태의 가짜뉴스 확산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있다. JTBC뿐만 아니라 조선일보 같은 보수신문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이들은 직접 미디어가 됐다. 월간조선 보도에 따르면 ‘신의 한 수’ 구독자는 5만 명 수준이며, ‘정규재TV’는 박근혜 인터뷰 이후 하루 평균 24만 명이 시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보수매체 조갑제닷컴은 “조선일보는 촛불시위 주도단체의 위험성을 덮어 미화해주고 언론에 대한 상호비판과 검찰에 대한 견제를 포기했다”고 비판한 뒤 “적개심보다 더 강한 건 배신감이다. 이념적 배신은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도 용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월간조선 전 편집장 조갑제씨는 “한국 언론을 쓰레기라고 하는 것은 극존칭이다. 쓰레기는 재활용할 수 있지만 언론 조작은 정신적 독극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태극기 군중들에게 언론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 서울 시청앞 태극기 집회.  ⓒ 연합뉴스
▲ 서울 시청앞 태극기 집회. ⓒ 연합뉴스
태극기 집회에 가득한 허위주장과 가짜뉴스

조중동을 포함한 대다수 주류언론이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과격한 주장과 영화나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고영태의 거대한 국정농단기획설을 믿게 만드는 건 허위주장과 가짜뉴스다. 예컨대 대통령 대리인단 서석구 변호사가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명령에 따라 남조선 인민들이 횃불을 들었다고 보도했다”고 주장했으나 통일부 확인 결과 가짜뉴스에 기반 한 허위주장이었다. 서 변호사는 “대규모 촛불 집회에서 경찰 113명이 부상당했고 50대의 경찰버스가 부서졌다”고도 주장했으나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때 일을 이번 촛불집회 때 있었던 일처럼 발언했다”며 비판했다.

해외 유명 정치학자들이 탄핵을 비판하고 있다는 뉴스도 확인 결과 학자들의 이름이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들로 나타났다.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박근혜 탄핵소추는 위헌이라고 발언했다는 뉴스도 앞선 사례와 마찬가지로 기사형식을 빌린 가짜뉴스였다. ‘서울시장의 탄식, “차라리 관광명소인 스케이트장이나 개장할 걸…”’이란 제목의 가짜뉴스도 있었다. 박원순 시장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가짜뉴스도 공유를 거듭하다보면 어느덧 진실이 된다.

가짜뉴스는 누구나 뉴스를 만들어 배포하고 공유할 수 있는 기술과 인터넷·SNS·스마트폰 고유의 속성에 따라 쉽게 전파되고 있으며,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알고리즘과 필터버블은 가짜뉴스의 진위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그 결과 ‘태블릿 사기조작에 놀아난 언론·국회·촛불들’이란 허위주장이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 가짜뉴스의 생산과정을 추적한 JTBC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 가짜뉴스의 생산과정을 추적한 JTBC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물론 최근의 대규모 태극기집회 현상은 가짜뉴스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미국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과 유사한 갈등을 겪고 있는데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지난 18일자 기사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트럼프에 대한 맹목적 비난에 오히려 반감이 생겨 트럼프를 더 지지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독재에서 정체성을 형성한 사람들은 박근혜에 대한 공격을 자신의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며 태극기집회에 나오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박정희에 대한 공포와 그리움을 내면화 한 가운데 독재에 대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정희·박근혜에 대한 맹목적 숭배, 소위 ‘종북’에 대한 강한 적대감, 과도한 폭력성 등의 흐름은 세계 대공황(1929) 이후 도래한 파시즘적 대중심리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15%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언론

한국갤럽이 2월7일~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탄핵 반대’는 15%, ‘탄핵 찬성’은 79%였다. 헌법재판소의 탄핵결정이 가까워질수록 15%는 그 어느 때보다 결집을 드러내고 있다. 15%의 목표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50%로 포장하고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는 80%의 목소리를 50%로 낮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광장에 ‘극단’이라는 깃발을 꽂고 가짜뉴스를 확산시켜 광장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주요언론은 친박·극우세력의 의도대로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를 5대5로 보도하는 것을 넘어 ‘극단의 광장’을 우려하며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지지자들에게 시위 중단을 호소해야 한다”, “모두가 자중할 때”(조선일보 2월28일자 사설)라며 아예 촛불집회·태극기집회가 벌어지는 광장의 퇴출과 침묵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모니터담당 배나은 활동가는 “2016년 11월12일 3차 촛불집회부터 박사모의 맞불집회가 시작됐고 2월11일 15차 촛불집회까지 언론은 양쪽 집회를 보도하며 기계적 균형에 집중했다. 이후에는 양쪽의 충돌이 우려된다, 양쪽 모두 헌재 결정에 불복할 것이라며 정치권에 해법을 요구하는 논조로 변했는데 사실상 대통령은 자진사퇴하고 정치권은 (박근혜에게) 사법처리 면책조건을 줘야한다는 논조”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중앙일보는 2월27일자 사설에서 “여권 일각에선 박 대통령 즉각 하야를 전제로 탄핵과 사법처리를 중단시켜 파국을 막자는 움직임도 있지만 청와대와 야당 모두 부정적 입장을 보여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라고 밝혔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인터넷엔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살해 협박 글까지 올랐다.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헌재 결정 외에 다른 선택은 정말 없는지 대통령부터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이 촛불과 태극기의 갈등을 부각시키는 건 대통령에게 사법처리 면책권을 주는 타협을 강조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5%’는 ‘79%’의 냉소와 달리, 정말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